퇴직이후 여행기/조선왕릉탐방기

선정릉 탐방(2025. 3. 12)

恒照 2025. 3. 14. 07:54

 

추운 겨울 동안 조선왕릉 탐방을 멈추었는데 봄이 시작되는 3월에 다시 재개하였다.

오늘은 아마도 가장 고가인 땅값을 가지고 있을 강남 선정릉 탐방이다.

선정릉은 조선 성종과 정현왕후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이 있는 곳이다.

선릉역 10번출구가 선정릉 입구에 접근하기 가장 가까운 위치이다.

탐방은 입구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역사문화관, 선릉 그리고 정릉순으로

돌아본다.  소나무 숲이 잘 조성되어 있다.

 

宣陵 ( 조선 9대 성종과 세번째 왕비 정현왕후의 능)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은 세조의 손자이다 왕으로 추존된 덕종

(의경세자)과 소혜왕후(인수대비) 한씨의 둘째 아들이다. 1461년(세조7)

잘산군(자을산군)에 봉해졌고, 1469년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정희왕후의

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과 대전속록,

국가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 를 완성하여 반포하였고, 선비들을 등용하여

기존의 훈구세력과 국정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38세의 나이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형왕후 윤씨는 영원부원군 윤후의 딸로 1473년(성종4) 성종의 후궁(숙의)이

되었고 1479년 왕비였던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왕비로 책봉

되었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자순왕비가 되었으며 1506년 중정반정때

왕대비의 권한으로 연산군을 폐위하고 친아들 중종의 즉위를 허락하였다.

69세의 나이로 경복궁 동궁 정침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릉은 능역안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각각 성종과 정현

왕후 능을 조성하였다.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때 서쪽 언덕이 성종의

능, 동쪽 언덕에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은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만들어졌는데 원래 이곳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 묘역이었으나

성종의 능자리로 정해지면서 광평대군의 묘를 다른 곳으로 옮긴 후 선릉을

조성하였다. 선릉은 정릉과 함께 1592년 임진왜란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치고

재궁(관)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靖陵(조선 11대 중종의 능)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로 1494년

(성종25)에 진성대군에 봉해졌고, 1506년 반정으로 이복형 연산군이 폐위

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연산군 시절의 잘못된 정치와 제도를

바로 잡았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유교적 향촌 질서를 자리 잡게

하였으며 서적편찬 사업도 활발히 진행하여 인쇄술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57세의 나이로 창경궁 환경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 고양시 서삼릉에 위치한 두번째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고, 능을 이름을 정릉으로 바꿨다.

그러나 1562년(명종 17) 중종의 세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뜻으로 중종의

능만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는 문정왕후 본인이 사후 중종과 같이 묻히

고자 했기 때문이었으나 정릉을 옮겨 온 현재의 자리가 비가 오면 침수되는

일이 잦자 문정왕후는 현재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종과 세 왕비(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 능은 모두 흩어지게

되었다.  정릉은 선릉과 함께 임진왜란시 위와 같은 수모를 당했다.

안내도
입구에서 좌측으로 역사문화관, 선릉, 그리고 위로 돌아 나오면서 정릉을 탐방
매표소
역사문화관쪽 방향 탐방로
복수초를 봤다.
조선왕릉 위치 안내도
선릉.. 성종 봉분
성종 봉분
정현왕후 봉분
정릉 묘역

 

정릉 봉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