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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열국지시리즈

열국지 71-80

by 恒照 2020. 2. 20.

 

# 列國誌 71

 

 

**人間白丁 項羽

 

 

項羽는 玉璽를 손에 넣자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그때부터는 鴻門에 버티고 앉아 본격적으로 <關中王> 행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때부터는 范增의 諫言을 역겹게 여겨 오히려 張良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項羽가 重臣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매우 노여운 어조로

"秦나라의 玉璽가 내 손에 있으니, 이제부터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나로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온 지 달포가 넘도록 秦王이었던 '자영'이라는 자가 아직도 沛公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채로 나에게 항복식을 하러 오지 않고 있으니, 이럴 수가 있느냐 ? 속히 沛公에게 사람을 보내 '자영'을 당장 나에게 보내도록 하라 ! "

 

項羽의 명령을 어느 누가 감히 거역할 수가 있으랴.

항우의 이름으로 유방에게 서한이 도착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沛公과 함께 秦나라를 정벌하고, 이 나라의 주인이 된 지 이미 달포가 넘었소. 그런데 沛公은 三世皇帝였던 <자영>을 휘하에 놓고 나에게는 항복의 예를 갖추러 보내지 않으니, 혹시라도 그대가 나에게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오 ? 이 나라에 통치권을 가진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나 뿐이오. 그대가 만약 나에게 다른 뜻을 품고 있다면 나는 武力으로 다스릴 결심이니, 다른 뜻이 없다면 <자영>을 속히 항복하러 보내시오.>

 

그야말로 협박장과 다름없는 공갈 서한이었다.

劉邦은 書翰을 받자, 즉시 중신회의를 열었다.

 

"항우는 <관중왕>을 자칭하면서, 자영을 자기에게 항복하러 오게 하라고 강요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 만약 자영을 보내주지 않으면 항우와 싸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오. 그를 보내주면 항우를 關中王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니,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게소?."

 

그러자 簫何가 대답한다.

"項羽의 勢가 지금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도저히 싸울 형편이 못 되옵니다. 하오니 '자영'을 보내 주심이 可한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면 關中王의 자리는 완전히 빼앗기게 되는 것이 아니오 ?"

"그 점은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자영을 보내기만 하면, 項羽는 자영을 반드시 죽이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項羽의 惡名이 높아져서 천하의 民心이 主公께로 돌아올 것이니, 항우가 제 스스로 關中王이라고 허세를 부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사옵니까 ?"

 

劉邦은 簫何의 말이 옳다고 여겨 '자영'을 불러 말한다.

"項羽 장군이 그대에게 항복하러 오라는 서한을 보내 왔으니, 그대는 項羽를 찾아가 항복식을 해야될 것 같소."

그러자 '자영'은 얼굴빛이 파래지며 대답한다.

"저는 차라리 여기서 죽을지언정 項羽 장군에게는 가지 못하겠습니다."

 

劉邦은 '자영'을 의아스럽게 바라보며 묻는다.

"당신은 이미 나에게 항복한 일이 있는데, 項羽 장군에게 한 번 더 항복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게 있는 것이오 ?"

그러자 '자영'이 눈물을 흘리며 答한다.

 

"저는 인자하신 沛公에게 항복을 함으로써 목숨을 보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우 장군은 널리 알려진대로 그 성품이 포악하여 제가 찾아가 항복하면, 어떠한 구실을 만들어 반드시 저를 죽일 것입니다. 하오니 인자하신 沛公의 그늘을 떠나 어찌 죽음의 길을 가야하겠나이까 ?"

 

劉邦은 자영의 신세가 너무도 측은한지라 억지로 항우에게 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늙은 重臣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유방에게 아뢴다.

"만약 前 秦王(자영)을 보내 지 않으면 項羽 장군은 백만 대군을 몰고 쳐들어와, 이곳의 수십만 병사와 백성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자영'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劉邦에게 告한다.

"項羽 장군은 能히 그럴 수있는 사람입니다. 저로하여 수십만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면, 제가 어찌 그런 일을 감내할 수가 있사오리까? 차라리 제가 죽음을 각오하고 항우 장군을 찾아가 다시 항복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영은 그날로 항우를 찾아가 降伏狀을 올렸다.

항우는 龍床에 높이 올라앉아 '자영'을 굽어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너의 祖父는 六國 백성 들을 10 여 년 동안 괴롭혀 왔으니, 그 罪가 막중하도다. 그로 인해 너를 斬刑에 처할 터인데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느냐 ?"

 

'자영'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六國을 정벌한 사람은 제가 아니고 제 조부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장군께서 저를 죽임으로써 원한을 푸시고 백성들에게 善政을 베풀어 주신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무어라?

예끼 이놈 !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네가 감히 나에게 善政 云云하느냐? ! 여봐라 이 자리에서 당장 저놈의 목을 쳐라 ! "

그러자 옆에 대기하고 있던 英布가 한칼에 '자영'의 목을 날려 버렸다.

 

'자영'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땅 바닥 위에 떨어짐과 동시에 붉은 핏줄이 공중에 치솟아 올라 땅바닥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며,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실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살인극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피를 보고 태연히 웃으며 말한다.

"이제야 비로소 내 恨을 풀었다."

 

자영의 죽음이 秦나라 백성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측은한 마음이 발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項羽의 잔학성을 비난하였다.

 

"沛公은 德이 높고 仁자한데, 項羽는 잔학하기가 이를 데 없으니, 그렇다면 秦始皇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

 

항우에 대한 백성들의 비난은 날이 갈수록 높아갔다.

"民心이 天心"이라는 말도 있는바 항우의 횡포에 대한 백성들의 비난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가, 그 소리는 마침내 항우 의 귀에도 들어갔다.

 

項羽는 그러한 소문을 듣고 불같이 노했다.

"아니 그래, 劉邦은 明主이고 나는 惡君이라고 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

이는 필시 秦나라때 祿을 얻어 먹던 자들의 소행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야 하겠다."

 

項羽가 격노하자 范增이 말리며 말한다.

"沛公은 咸陽에 들어와 '約法三章'으로 민심을 수습했사온데, 主公께서는 항복해 온 '자영'을 죽이셨습니다. 이제 다시 백성들까지 죽이신다면 민심이 離叛되어 천하를 얻지 못하시게 되옵니다. 바라오니, 백성들은 죽이지 마시옵소서."

 

항우가 말한다.

"나는 秦나라의 無道함을 징벌하러 왔으므로 자영을 죽인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것을 가지고 백성들이 나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반역이 분명한데, 그런 놈들을 그냥 살려 두란 말이오 ?"

 

范增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그 옛날 魯나라의 왕은 죄없는 宮女 한 명을 죽였다가 9년간 가뭄을 겪은 일이 있엇습니다. 옛 말에 "한 사나이가 원한을 품으면 유월에 서리가 내리고, 한 계집이 恨을 품으면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사옵니다. 자영 한 사람을 죽인 것만으로도 怨聲이 이처럼 크온데, 이제 다시 백성들까지 죽여 버린다면 하늘의 노여움을 무엇으로 막아낼 수가 있사오리까 ? 백성들의 원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가라앉을 것이오니 主公께서는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項羽는 마지못해 4~5일 동안 화를 참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怨聲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項羽는 마침내 분통을 터트리며, 英布로 하여금 秦나라 王族 8 백여 명과 官僚였던 백성들 4천 6백여 명을 본보기로 잡아죽여 버린다.

 

이로 인해 咸陽 거리는 屍山血海를 이루어 눈 뜨고 다닐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項羽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또다시 백성들을 죽이려고 하자, 范增은 項羽의 발을 붙잡고 눈물로 호소한다.

 

"그 옛날 湯王은 오랫동안 가뭄이 들자 자기 자신을 제물로 삼아 祈雨祭를 지내려 하자, 하늘이 감동하여 많은 비를 내려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날 군주들은 이처럼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킬 각오까지 있었던 것이옵니다. 그러니 主公께서는 백성들을 측은히 생각하시사 그만 살륙을 멈추셔야 하옵니다."

항우는 이같은 范增의 간절한 諫言을 듣고서야 백성들에 대한 살륙을 멈췄다.

 

 

# 列國誌 72

 

 

** 楚覇王 項羽

 

 

項羽는 자영과 수많은 秦나라 백성을 죽여버린 後, 大軍을 거느리고 咸陽에 당당히 입성한다.

 

項羽 보다 劉邦이 먼저 함양에 入城했지만 劉邦은 項羽의 욕심과 행패를 피해 스스로 覇上으로 옮겼고, 項羽는 마치 자신이 咸陽을 처음 점령한 듯 당당하게 입성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자신이 <關中王>이 되기 위해서였다.

 

項羽가 咸陽에 入城하여 秦나라의 宮殿들을 돌아보니, 阿房宮을 비롯, 모든 궁전들이 눈부시도록 호화스러웠다,

"호오, 이같은 부귀를 남겨두고 亡해 버렸으니, 秦皇은 죽기가 얼마나 억울했을꼬? ! "

항우는 호화스러운 궁전들을 돌아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范增이 항우에게 아뢴다.

"秦나라가 亡한 것은 秦皇이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백성을 돌보지 않고 忠臣들의 諫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오래도록 번영해 가려면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고 적재적소에 人材를 배치하고 重臣들의 간언을 소중하게 들으셔야 합니다."

 

項羽는 그 말이 거슬렸는지 침묵으로 일관,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이윽고 本營으로 돌아오자 항우는 范增에게 의견을 묻는다.

"나는 咸陽을 점령하고, 秦의 玉璽도 손에 넣었소. 그러니 이제 정식으로 關中王에 즉위하고 싶은데, 軍師의 생각은 어떠시오 ?"

 

范增이 대답한다.

"主公께서 關中王에 즉위하시려면 彭城에 계신 懷王의 조명(詔命)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오니 팽성으로 使臣을 보내 詔命을 받아 오도록 하시옵고, 그동안 수고한 모든 將卒 들에게 戰功의 등급에 따라 論功行賞을 내리시옵소서."

"논공행상을 하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니니, 懷王에게 사신부터 보내기로 합시다."

항우는 하루라도 빨리 關中王이 되고 싶어 叔父인 項佰을 彭城으로 보내 懷王의 詔命을 받아 오도록 하였다.

 

그런데, 懷王은 項佰을 만나자 머리를 가로저으며,

"項羽 장군과 劉邦 장군이 출병할 때, 나는 두 분에게 <咸陽을 먼저 점령하는 사람에게 關中王으로 임명하겠다> 고 하였소. 내가 언약했던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오. 또한 咸陽을 먼저 점령한 사람은 項羽 장군이 아니라 劉邦 장군임은 天下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오. 그런데 내가 선포한 약속을 뒤집고 어찌 項羽 장군을 關中王으로 임명할 수 있겠소? 그것은 무리한 요구요."

 

그러자 項佰은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項羽 장군은 戰功이 지대했을 뿐만 아니라, 德望이 매우 높사옵니다. 게다가 劉邦 장군은 성품이 나약하여 王의 중책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오니, 부디 項羽 장군에게 關中王의 조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처럼 項佰이 무리한 요구를 해 오자 회왕은 怒氣띤 어조로 項佰을 꾸짖는다.

"장군은 무슨 이치에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게요? 人君은 信義를 어겨서는 안 되는 법.

나는 지난 날, 두 장군에게 분명히 선언한 바가 있는데, 그 언약을 뒤집고 항우 장군에게 關中王을 제수하라는 말이오? 그런 얘기라면 두번 다시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빨리 돌아가서 項羽 장군에게 내 말을 그대로 전해 주시오."

懷王의 결심은 확고 부동하였다.

 

項佰이 면목없이 돌아와 項羽에게 사실대로 告하니, 항우가 怒하여 펄펄 뛴다.

"懷王이라는 者는 우리 家門에서 받들어 모신 王이 아닌가 ? 그런데도 秦나라를 정벌하는데 제까짓 게 무슨 功이 있다고 關中王의 자리를 좌지우지 하겠다는 게야?

그 者가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없지.

내가 吉日을 택해서 내 뜻대로 왕위에 오르기로 하겠소 ! "

 

項羽는 자신의 힘이 커지다보니 이제는 楚懷王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투였다.

(큰일이다. 楚나라의 중심인 楚懷王을 무시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될 것인가 ?)

范增은 한숨을 쉬며 項羽에게 간곡히 諫한다.

"楚懷王은 어디까지나 楚나라의 大王이시옵니다. 그 분을 무시하고 법통을 유린하면 國法 질서가 파괴되오니, 그 점을 각별히 유념하셔야 합니다."

항우는 그제서야 자신의 언사가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알겠소이다. 아무리 그렇기로 關中王 자리를 劉邦에게 넘겨 줄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

"主公께서 關中王이 되셔야 한다는 것은 소신도 동감이옵니다. 그러나 주공께서 關中王으로 즉위하시려면 懷王의 格을 한 층 더 높여 帝位의 존칭으로 부르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의 法統이 세워지지 않사옵니다."

 

"내가 관중왕이 되는데 그런 법통이 꼭 필요하다면 그렇게 합시다그려. 그렇다면 나의 칭호는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소이까 ?"

범증이 다시 대답한다.

"왕의 존칭은 역사를 고려해 제정하는 것이 순리이고 경솔하게 정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옵니다.

다행히 역사에 밝은 張良이 지금 우리에게 머물러 있사오니, 그 사람의 의견을 한번 들어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그가 좋은 명칭을 제시해 주면 그대로 사용할 것이로되, 만약 나쁜 이름을 쓰도록 하면 우리에게 反心을 품고 있는 증거이므로, 그때에는 장량을 죽여 없앨 구실이 되옵니다."

 

范增은 張良이라는 존재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져, 어떤 수법을 써서라도 張良을 죽여 없앨 생각을 버리지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項羽는 范增의 말대로 張良을 불러다가 의견을 구한다.

"나는 이제부터 關中王에 즉위할 생각인데, 稱號를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려. 자방(子房: 장량의 號)은 역사에 밝으시니, 역대 帝王들의 尊號를 참작하여 나에게 좋은 칭호를 하나 지어 주기 바라오."

 

張良은 뜻밖의 부탁에 대뜸 의구심이 솟아올랐다.

(范增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중대한 문제를 무슨 이유로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인가 ?)

장량은 그런 의심이 들자,

"歷史는 저보다도 연륜이 깊으신 范增 軍師께서 더 밝으신데, 이처럼 중대한 문제를 어찌하여 저에게 부탁하시옵니까?"

하고 넌즈시 항우의 대답을 떠보았다.

 

그러자 항우가 대답한다.

"범증 軍師는 역사에는 자신이 없는지, 이 문제는 子方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군요."

張良은 그 말을 듣고 范增이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범증이 어떻게 해서라도 , 트집을 잡아 나를 죽이려고 존호를 제정하게 하라고 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책잡힐 대답은 해서는 안되지!.)

내심으로 이렇게 결심한 장량은 항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聖君으로 '三皇五帝'가 계셨습니다. 三皇이란 하늘에서 내려오신 帝王을 일컸는 존호이옵고, 五帝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 천하를 덕으로 다스린 임금님들을 부르는 존호였습니다. 그러므로 항우 장군께서는 마땅히 帝號로 부르셔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많은 백성과 병사들을 죽인 자기가 감히 %帝王'이라고 자칭하기에는 양심에 찔리는 바가 있어,

"굳이 제호를 쓰지 않아도 좋으니 다른 칭호는 생각나는 것이 없으시오 ?"

하고 물었다.

 

장량이 다시 대답한다.

"五帝이후에는 三王이라는 聖王들이 계셨습니다. 殷나라의 周王과 夏나라의 禹王), 周나라의 武王이 모두 그런 성군이었습니다. 그분들 역시 人義를 소중히 여기고, 백성들을 德으로 다스리셨습니다. 항우 장군께서는 그들의 聖德을 본받아 王號를 쓰셔도 무방하실 것이옵니다."

 

張良은 范增에게 트집을 잡히지 않고자 항우를 무조건 추켜세워 주었다.

항우는 장량의 말을 들을수록 기분이 째지게 좋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양심이 있는지라, 수많은 생명들을 죽인 주제에 자기 자신을 聖君으로 자칭하기에는 마음이 꺼려지는바라,

"삼왕 이후에는 왕들을 뭐라고 불렀소 ?"

하고 물었다.

 

張良이 다시 대답한다.

"王은 아니면서, 실질적으로 천하를 지배해 온 사람들 중에는 '五覇'라고 불리어 온 분들이 있었습니다. 齊나라의 桓公과 宋나라의 襄公, 秦나라의 穆公, 晉

나라의 文公, 楚나라의 莊公 같은 분들이 모두 그런 어른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비록 자신을 '王'이라고 자칭하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을 위해 暴政을 삼가하고 그 위엄을 천하에 떨쳤던 분들이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들 다섯분을 <五覇>로 칭송해 오고 있는 것이옵니다. 지금 항우 장군께서는 그 위세를 천하에 떨치고 있사오니, 장군께서는 '覇' 자에 '王' 字를 붙여 覇王이라고 부르게 하시면 어떠하겠습니까 ?"

 

(覇王? ... 覇王 이라!...그렇다면 , 나의 출신지인 楚나라를 덛붙여 '楚覇王'이라고 부르게 하면 어떻겠소? !

楚覇王 !...초패왕 ....그것 참 괜찮은 것 같은데?!)

 

項羽는 <覇王>이라는 말에 무릎을 치며 기뻐하며 말했다.

"단순히 '王'이라는 칭호는 너무 많이 쓰여져서 그런지 낡은 냄새가 풍기지만, 子方이 말씀하신 <覇王>이라는 칭호는 위엄도 있고 새로운 맛이 풍겨서 너무도 좋소이다. 나는 본시 楚나라 태생이니, 나를 <楚覇王>이라 부르고, 楚懷王은 한 계급을 높여서 <楚義帝>로 부르게 하겠소. 좋은 칭호를 알려 주셔서 대단히 고맙소이다."

 

項羽는 즉석에서 시종을 불러 <楚覇王>이라는 자신의 칭호를 만 천하에 알리도록 명령하였다.

그러자 范增이 그 소식을 듣고 항우에게 달려와 諫한다.

"主公께서는 關中王에 즉위하시더라도 <覇王>이라는 칭호를 쓰셔서는 아니 되시옵니다."

 

項羽는 范增의 반대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반문한다.

"나는 <覇王>이라는 칭호가 마음에 꼭 드는데, 軍師는 어째서 그 칭호를 써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오 ?"

범증이 대답한다.

"정치에는 王道가 있고, 覇道가 있는 법이옵니다. 王道라 함은 仁義로 다스려 나가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옵고, 覇道라 함은 인의를 무시하고 무력과 權謨術數로 功利만을 도모하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옵니다. 그러니 왕의 칭호를 어찌 <覇王>이라고 부를 수 있으오리까 ? 張良은 主公을 욕보이려고 일부러 그런 칭호를 권한 것이 분명하오니, 그자를 당장 처치해 버리셔야 하옵니다."

 

그러나 項羽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오히려 范增을 나무란다.

"軍師는 모르는 소리 그만하시오. <覇王>이라는 칭호는 내가 좋아서 결정한 것인데, 張良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를 처벌하란 말이오. 또 내가 무력으로 천하를 잡은 것은 사실인데, <覇王>으로 부르기로 뭐가 나쁘다는 말이오 ?"

 

項羽는 范增의 충고를 일축하고, 2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項羽' 하면 <楚覇王>이 떠오르는 이 칭호를 사용하기로 결심하였다.

<王道>와 <覇道>의 정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항우에게는 <覇王>이라는 칭호가 힘차게

느껴져서 좋았던 것이리라.

 

 

# 列國誌 73

 

 

** 項羽의 錦衣還鄕

 

 

項羽는 <楚覇王>에 즉위하고 난 後부터는 范增을 기피하고 주로 張良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王都를 咸陽이 아닌 다른 곳으로 定하고 싶었다.

遷都 문제에 대하여 范增이 의견을 냈다.

"王都는 반드시 要害地로 定해야 합니다. 이곳 咸陽은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外侵의 우려가 적은 유서 깊은 도읍지로 땅 또한 비옥하여 物産이 풍부하옵니다.

또, 타 지역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백성들의 부역과 國力의 소모도 클 것이니 재고하심이 좋을줄 아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나는 咸陽을 王都로 정할 생각은 없소."

"그러면 생각해 두신 다른 곳이라도 있사옵니까 ?"

"나는 郴州(침주)를 王都로 정할 생각이오."

너무도 뜻밖의 대답에 모든 중신들이 놀랐다. <郴州>라는 곳은 , 咸陽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僻地였기 때문이었다.

(*郴州 : 현재 중국의 湖南省과 廣東省 사이에 있는 도시)

 

范增도 깜작 놀라며 되묻는다.

"郴州는 너무나도 낙후된 벽지입니다. 어찌하여 그런 곳을 王都로 삼으려고 하시옵니까 ?"

항우가 대답한다.

"咸陽은 秦나라 땅이지만 郴州는 楚나라 땅이오. 楚覇王인 내가 楚나라 땅을 버리고 어찌 秦나라 땅에 도읍을 정하겠소 ?"

범증은 그 대답을 듣고, 항우의 옹졸한 생각에 아연 실색하였다.

 

그러나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어 다시 諫한다.

"물론, 咸陽은 옛날에는 秦나라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점령하신 지금에는 함양은 어엿한 楚나라 땅이옵니다. 그러하니 咸陽을 도읍지로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사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몸이 귀하게 되어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마치 錦衣夜行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이처럼 귀한 몸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어느 누가 나를 알아주겠소? 그런 이유로 나는 錦衣還鄕하고자 침주에 도읍을 定하려는 것이오."

 

范增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통탄해 마지 않았다.

(아! 이 사람은 大秦帝國을 滅하고서도 눈에 보이는 게 오직 楚나라뿐이구나. 이런 사람을 主公으로 받들고 천하를 도모해 보려는 내가 어리석은게 아닌가?! ...)

그렇다고 이제 와서 項羽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은가?

范增은 울분을 삼키며 항우에게 다시 물었다.

"郴州를 도읍지로 결정하시는데 있어, 대왕께서는 혹시 張良의 의견을 들어 보신 일은 없으십니까 ?"

 

范增이 느닺없이 張良의 애기를 물어 본 것은 혹시나 장량이 배후에서 항우를 부추켰나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에 項羽는,

"子房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도 역시 침주를 새로운 도읍지로 정하는데 찬성합디다."

"예 ? 그 사람이 무슨 이유로? ... "

"사람은 누구나 귀해지면 <錦衣還鄕하려는 본능>이 있는 법이니, 새 나라의 도읍지로서는 침주가 좋겠다는 거였소."

 

范增은 그 대답을 듣고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張良이 뒤에 숨어서 項羽를 亡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范增은 정색을 하고 다시 말한다.

"大王 殿下 !

張良이라는 자는 劉邦을 위해 대왕을 亡하도록 꾸미고 있는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者를 살려 두면 커다란 禍를 입게 되실 것이니, 국가의 百年 大計를 위해 그 者를 죽여 버리셔야만 하옵니다."

 

范增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項羽는 크게 怒하며 范增을 호되게 꾸짖는다.

"軍師는 어찌하여 사사 건건 子房을 헐뜯기만 하오. 내가 子房을 가까이한다고 妬忌 하시는 게요 .... ? 쯔쯧!...여자도 아닌 사내 대장부가 투기를 해서는 못쓰는 법이오."

范增은 項羽의 말을 듣고 너무도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문채 項羽의 앞을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리하여,

項羽는 도읍을 郴州로 옮겨 오자, 대왕으로서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모든 장수들에게 論功行賞을 크게 베풀기로 하였는데 그렇게 하려면 일시에 많은 재물이 필요하였다.

楚覇王 項羽는 范增을 불러 상의한다.

"모든 신하와 장수들에게 論功行賞을 하려면 막대한 財物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 재물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겠소 ?"

범증이 대답한다.

"함양에 있는 秦나라 창고에는 많은 금은 보화가 있을 것이오니, 사람을 보내 가져오면 되겠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함양으로 사람을 보내 금은 보화를 모조리 郴州로 가져 오라고 命했다.

그러나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와 항우에게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함양에 가 보았사오나, 秦나라의 창고는 모두가 텅텅 비어 있었사옵니다."

실상인즉, 전쟁에 승리하고 나자 項羽의 부하들은 秦나라 창고로 다투어 달려가 보물들을 모두 다 훔쳐갔건만 項羽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에 項羽는 크게 놀라며 范增을 불러 묻는다.

"秦나라 창고에는 금은 보화라곤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보이질 않터라던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范增에게는 금은 보화가 없어진 일 따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금은 보화를 산더미처럼 가지고 있은들, 劉邦에게 천하를 빼앗겨 버리는 날이면 보물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범증은 이 기회에 보물이 없어진 죄를 劉邦에게 뒤집어 씌워 그를 죽여버릴 계획을 또다시 세우고

항우에게 말한다.

"秦나라의 보물들이 모두 없어졌다면, 그것은 沛公이 가져 갔음이 분명합니다. 沛公이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그 보물에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는 沛公을 불러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시도록 하시옵소서."

"음 ...그렇다면 사람을 보내 沛公을 곧 오도록 하오. 만약 沛公이 나도 모르게 보물을 지맘대로 처분했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項羽는 크게 怒하며 劉邦에게 호출장을 보냈다.

張良이 그 사실을 알고 비밀리에 사람을 먼저 보내 劉邦에게 알렸다.

"項王이 沛公을 부른 것은 秦나라 창고에 있던 보물들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沛公은 호출장을 받으시는 대로 項王을 찾아오시옵소서. 그래서 보물에 대하여 묻거든 그 일은 張良이 잘 알고 있다고만 대답하시옵소서. 그러면 제가 모든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방은 장량의 사전 통고를 받고, 호출장을 받는 즉시 마음놓고 項羽를 찾아왔다.

 

項羽는 劉邦을 만나자 대뜸 큰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咸陽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내가 아니고 沛公이었소. 秦나라 창고에 가득 차 있던 金銀寶貨가 모두 없어졌다고 하는데, 沛公은 그 물건들을 어디다 갖다 두었소 ? 만약 그 물건들의 소재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나는 沛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오."

 

劉邦은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저는 軍務가 多忙했던 관계로, 보물 따위는 張良에게 점검해 보도록 일렀습니다. 마침 張良이 이곳에 체류하고 있으니, 그를 불러 물어 보도록 하시옵소서."

이에 項羽는 그 말을 듣고 즉석에서 張良을 불러 따져 묻는다.

"子房은 秦나라 보물의 소재를 잘 알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지금까지 그 일에 대해서는 나에게 일언 반구의 말도 없었소 ?"

 

그러자 張良이 대답한다.

"秦나라 보물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물어 보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는 아무 말씀도 여쭙지 않고 있었던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보물들이 어디 있는지 어서 말해 보오."

張良은 秦나라 보물들에 관해 설명한다.

 

"秦나라에서는 일찍이 孝王과 昭王 때부터 보물을 모으기 시작하여, 始皇帝 시대에 와서는 그 것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驪山에 자기 자신의 거대한 帝陵을 축조하는데 많은 재화를 소비하였고, 그가 죽은 뒤에는 나머지 보물들을 모두 副葬品으로 무덤 속에 넣어 버렸습니다."

項羽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하였다.

 

"아니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 엄청난 보물들을 송두리째 무덤 속에 넣어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 아니오. 상당수 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텐데 그것은 어디에 있단 말이오 ?"

張良이 다시 대답한다.

 

"대왕께서 물으신 대로 시황제의 부장품을 파묻고 나서도 보물들이 상당히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二世 皇帝의 생활이 워낙 사치스럽기 그지 없어서 그 역시 그 많은 보물들을 모두 탕진해 버렸고, 그가 죽은 뒤에도 많은 보물들을 역시 부장품으로 무덤 속에 넣었다고 합니다. 두 차례나 그런 일을 행하고 난 마당에, 지금 무슨 보물이 남아 있겠사옵니까?"

 

"그러면 지금 남아 있는 보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오 ?"

"地上에 남아 있는 보물은 거의 없사옵니다. 그러나 무덤 속에는 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므로 만약 대왕께서 보물이 꼭 필요하시다면 무덤을 파보도록 하시옵소서. 그러면 그 안의 모든 보물을 고스란히 손에 넣으실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項羽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서 范增을 불러 말한다.

"秦나라의 보물들이 모두 始皇帝의 무덤 속에 들어 있다고 하니, 무덤을 파헤쳐서 그 보물들을 꺼내 모든 신하 장수들의 論功 行賞때 나누어 주면 어떻겠소 ?"

范增은 그 말을 듣고 대경 실색한다.

 

"帝王의 능을 파헤친다는 것은 道義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자고로 부장품이란 죽은 사람이 생전에 애용하던 물건을 무덤 속에 함께 파묻는 것을 말하는 것이온데, 始皇帝의 무덤 속에 얼마나 많은 보물이 들어 있다고 무덤까지 파헤치려 하시옵니까 ?"

 

그러자 옆에 있던 張良이 웃으며 范增에게 말한다.

"軍師는 실정을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시황제의 무덤으로 말하면, 둘레가 80 里나 되고 높이가 50尺이 넘는 거대한 무덤입니다. 규모가 어떻게나 큰지 무덤 속에는 珠玉으로 북두칠성과 은하수도 꾸며져 있고, 보석으로 지하 궁전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하오. 그러하니 무덤을 파보기만 하면 온갖 금은 보화가 쏟아져 나올 것이 자명한 일이오."

 

項羽는 張良의 말을 듣고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范增에게 命한다.

"속히 병사들을 동원하여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들을 꺼내 오도록하시오."

 

范增은 氣가막혔다. 누구의 무덤을 불론하고 무릇 무덤이란 함부로 파헤쳐서는 안 될 신성한 것이 아닌가? . 하물며 여염집 사람의 무덤도 아닌 帝王의 무덤임에 있어서랴..

 

물론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면, 그 속에서 엄청난 보물들이 쏟이져 나올 것을 范增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보물에 눈이 어두워 帝王의 무덤을 파헤치면 백성들은 項羽의 몰지각한 행동을 얼마나 저주할 것인가?.

 

張良은 그러한 결과가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덤을 파헤치라고 項羽를 부추기고 있으니, 그것은 항우를 亡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항우는 張良의 그러한 음모를 전혀 알지 못하고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으니, 范增은 氣가 막힐 노릇이었다.

 

范增은 한숨을 쉬며 다시 諫한다.

"大王 殿下 ! 秦始皇이 비록 잔인 무도한 임금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무덤은 신성 불가침한, 帝王의 무덤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무덤을 함부로 파헤칠 수는 없사 옵니다. 만약 그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들을 꺼내시면 백성들이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저주할 것이옵니까? 대왕은 이번에 새로 즉위하신 어른이시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仁政을 베풀어 민심을 얻으셔야 하오니, 秦始皇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만은 삼가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일단 결심한 項羽에게 그러한 말이 먹혀 들어갈 리 없었다.

(范增군, 자네 입 아프지도 않니?^^)

 

項羽가 范增을 나무란다.

"軍師는 내가 단순히 보물이 탐이 나서 무덤을 파헤치려는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나의 뜻을 잘못 알고 하는 말이오. 진시황이란 자는 六國을 정벌하면서 수백만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죽였소. 게다가 소위 焚書坑儒로 천하의 良書를 모두 불태우고 선비들을 모조리 생매장시켜 버렸소. 그래서 나는 비록 秦나라를 滅亡시켰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恨이 가셔지지 않소. 그래서 무덤 속에서 그의 시체를 꺼내어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려는 것이니 여러말 말고 무덤을 파도록 하시오."

 

말할 것도 없이 '부관참시'는 이를 구실로 秦始皇의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꺼내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다시 꺼내 斬한다는 것이 어찌 명분이 서는 일이랴?

범증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아!, 大王이 되어 고작 한다는 일이 帝王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란 말인가?....! )

 

 

 

* 글 말미에 덧붙여.

 

列國誌(곧 전개될 楚漢誌 포함)를 비롯하여

三國誌 等, 중국의 역사서를 탐독하다보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列國誌에도 섭간(涉間), 소각(蘇角), 맹방(盟防),장평(章平) 等等 ..

 

中國은 땅도 넓고 사람도 많고 姓氏도 많다.

 

중국인 姓氏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으니 웃든지 마시든지 하시고 여하튼 참고하시기를.^^

 

예컨데..

涉間은, 건널

'섭', 사이 "間" ... 개울을 건너다가 다리 위에서 만들어 낳은놈이니 '섭간'이라 하고,

 

蘇角은, 깨어날 '소' 뿔 '각'... 새벽에 잠을 깨니 거시기가 뿔같이 일어나서 만들어 낳은놈이 '소각'이고,

 

盟防은, 맹세 '盟' 막을 '防'이니 결혼 약속을 맹세하고 미리 만든 놈이 '맹방'이다.

 

章平은 (글 '章' 평평 '平'이니, 글방에서 책 읽다가 평평한 방 안에서 만든 놈이 '장평'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일본의 姓氏의 由來를 살펴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다.

 

그것은,

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이 全國을 통일하자 그 과정에서 남자들이 너무 많이 죽어 인구 수가 줄어든지라 王命으로 모든 成人 女人들은 외출 할 때, 등에 담요 같은 것을 두르고 아랫도리 속옷은 절대로 입지 말고 다니다가 어디서든 남자를 만나게 되어 서로 뜻이 맞으면 그자리에서 언제든지 아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일본 여인들이 입고 다니게 된 기모노는 띠를 풀어 헤치면 그대로 깔개가 되고, 등에 두른 담요는 덮개가 되었다고...

 

덕분에 戰場에서 살아 돌아온 사내들은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나 서로 뜻이 통하게되면 어디서든 그 일을

할수 있게되었다.

그 결과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가 무수히 태어나게 되었는데, 이름을 지으려니 보통 고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애를 만들 때의 장소를 따서 姓氏를 짓게 되었다는데 그 덕에 세계에서 姓氏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는데 일본은 현재 약 10 萬 개의 姓씨가 존재한다고한다.

 

*木下 (목하: 기노시타) 나무 밑에서 ...

*山本 (산본: 야마모토) 산 속에서 ..

*竹田 (죽전: 다케다) 대나무 밭에서 ...

*村井 (촌정: 무라이) 동네 우물가에서 ...

*山野 (산야: 야마노) 산인지 들판인지 아리송한데, 그것은 두 사내하고 연이어 해서 ...

*川邊 (천변: 가와베) 그 일을 끝내고 고개를 들어보니 개천이 보여서 ...

*田中 (전중: 다나까) 밭 한가운데서 ...

 

일본인 들 성씨에 밭 전(田) 자가 많은 것은, 물이 질퍽한 논바닥에서는 아이를 만들 수가 없음으로

주로 밭과 숲에서 아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列國誌 74

 

 

** 秦始皇陵(驪山宮)의 발굴

 

 

다음날 아침, 范增은 項羽를 다시 찾아와 눈물로 諫한다.

"大王 殿下 ! 秦始皇의 무덤을 파헤치면 백성들의 저주를 막아낼 수가 없사옵니다.

하오니, 무덤을 파헤치는 것만은 거두시옵소서. 그래야만 大王 殿下의 앞날이 양양하실 것이옵니다."

 

백발이 성성한 范增이 이렇게 간곡히 諫하는 모습은 숙연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항우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軍師가 이토록 반대하신다면 단념하기로 하지요."

하고 말했다.

 

滅亡한 帝王의 무덤이라도 그것을 파헤친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것을 항우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 문제는 일단락이 되어 버린 듯이 보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項羽가 종일 政務를 보고 저녁 무렵에 內殿에 들어오니, 사랑하는 아내 虞美人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는 아내인지라, 항우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왕후는 어디 가셨느냐 ?"

"곧 찾아 모시겠사옵니다."

 

侍女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虞美人을 찾았다. 그러나 우미인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보이지 않으므로 항우는 매우 걱정이 되었다. 백년 가약을 맺은 그날부터 줄곧 생사 고락을 같이해 오던 아내가 아닌가? 그러니 항우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아내였다.

그토록 사랑하는 王后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項羽는 화가 치밀어 올라 侍女들에게 벼락 같은 호통을 질렀다.

"이것 들이 !..

王后가 어디 가셨는지도 모르고 너희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 왕후를 당장 찾아 오너라 ! "

 

마침 그때 王后가 빨래 광주리를 옆에 끼고 뒷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항우는 虞美人을 보자 허겁지겁 달려가 물었다.

"여보 ! 당신, 어디를 갔다 이제 오는 길이오 ?"

 

虞王后는 빨래 광주리를 내려놓고 미소띤 얼굴로,

"제가 가기는 어딜 가겠어요. 개천에 흘러가는 물이 하도 맑기에 빨래를 빨아 가지고 오는 길인걸요. 대왕께서 退廳하시기 전에 다녀온다는 게 조금 늦었네요."

하고 대답을 하는게 아닌가!?.

 

項羽는 그 대답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요 ? 빨래를 하러 갔었다고? ... 이 사람이...여보, 당신은 보통 여인이 아닌, 王后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 그런데 왕후가 무슨 빨래를 하고 다닌다는 말이오 ?"

 

虞美人은 빼어난 미인이었지만 마음씨는 얼굴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저는 왕후이기 전에 평범한 아내로 살고싶어요. 당신은 남자라서 잘 모르시지만, 여자들은 남편의 옷을 손수 빨아 드릴 때가 가장 행복한 법이예요."

 

귀엽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우직한 項羽는 여자들의 이같이 섬세한 감정을 이해할리 없었다.

"당신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게요. 나는 천하를 호령하는 楚覇王이고, 당신은 당당한 王后라는 사실을 알아야지, 세상에 어떤 왕후가 손수 빨래를 하느냔 말이요? 이제부터는 두 번 다시 빨래는 절대 손도 대지 말아요 ! "

그러나 우미인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빨래는 몰라도 당신 옷만은 제가 직접 빨고 싶어요. 그것 만은 말리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虞美人은 워낙 여성다운 성품을 타고난 터라 왕후로서 거들먹거리기 보다는 알뜰한 주부와 아내로서 사랑 받는 여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아내의 그러한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게요? 왕후는 왕후로서의 체통을 지켜야지 빨래를 하다니 그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요? ! "하며 정색을 하고 꾸짖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의 목을 보니,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는 싸구려 自然石 목걸이가 아닌가?

그 목걸이는 지난날 항우가 결혼 기념으로 사준 목걸이였다.

항우는 그때만해도 값진 보석을 살 돈이 없어서 파란 색의 자연석으로 된 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사정이 180도 달라져 있지 않은가?

項羽 자신은 <楚覇王>이고, 아내 虞美人은 <王后>가 아닌가 ?

"아니 그래, 당신은 왕후가 된 지금에도 그런 싸구려 목걸이를 걸고 다닌단 말이오 ?"

 

虞美人은 뜻밖의 말이란 듯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무슨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이 목걸이는 당신이 결혼 선물로 주신 것이에요. 따라서 제게는 어떤 값진 보석보다도 귀중한 선물인걸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구 ! 그때는 돈이 없어 부득이 그런 것밖에 줄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大王이 아닌가 ? 그런데도 일국의 왕후인 당신이 창피하게 어떻게 이런 싸구려 목걸이를 걸고 다니냔 말이오."

 

그러나 우미인의 생각은 항우하고는 달랐다.

"창피하기는 뭐가 창피스러워요? 王后가 되었든 말든 당신의 아내이기는 마찬가지인걸요.

남들이 뭐라 하거나 제게는 이 목걸이가 가장 소중한 보물이에요."

"허어 ....이것 참 정말 안 되겠는걸."

항우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문득 始皇帝의 무덤 속에 들어 있을 수많은 보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지 말고, 조만간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쳐서 기가막힌 보물을 선사할테니, 제발 그 싸구려 목걸이만은 벗어 버리도록 하라고 ! "

하고 말했다.

 

虞美人은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쳐 기막힌 보물을 선사하겠다>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하여 남편의 팔을 감싸 잡으며 묻는다.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項羽가 대답한다.

"始皇帝의 무덤 속에는 희귀한 보물들이 산더미처럼 들어있거든. 그 보물들을 모두 꺼내 가지고 그중에서도 가장 진귀한 보물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니, 그 싸구려 목걸이만은 이제 그만 벗어 던지란 말이오."

 

그러자 虞美人은 項羽의 팔을 두 손으로 움켜잡은채, 사정하듯 말한다.

"저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니, 제발 始皇帝의 무덤만은 파헤치지 마세요. 帝王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에요. 대왕께서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치면 백성들이 당신을 얼마나 저주하겠어요 ?"

 

"나는 이 나라의 절대 군주요. 내가 하는 일에 어느 누가 감히 반대를 하겠소 ?"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에요. 옳지 못한 일을 강행하면 하늘도 노여워 하는 것이래요. 저는 당신이 주신 이 목걸이만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제발 무덤만은 파지 마세요."

"알았소. 알았으니까 그얘기는 그만하고 잠이나 잡시다 ! "

 

항우는 적당히 얼버무리기는 하였지만, 속으로는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칠 결심을 굳혔 다.

아침까지만 해도 秦始皇의 무덤을 파헤치지 않겠노라고 范增에게 굳게 약속했던 項羽였다.

內殿으로 들어오기 직전까지도 그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의 목에 걸려 있는 싸구려 목걸이를 본 순간, 그의 결심은 산산 조각이 나고만 것이었다.

 

(나는 이 나라의 王이다. 절대 군주인 내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기 위해 무덤 속에서 보물을 파내기로 뭐가 나쁘단 말인가?! 자고로 부부는 一身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왕후를 기쁘게 해 주는 것은 왕으로서 나의 의무가 아닌가 ? )

그리고 또 생각한다.

 

(왕후가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을 좋지않게 여기는 것이지, 정작 진귀한 보물들을 가져다 안겨주면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다. )

항우는 자기 나름대로 단순하게 판단하고,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자 기어코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칠 결심을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항우는 范增과 虞美人의 반대를 뒤로하고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고자 1만 군사를 동원하였다. 그리하여 아침 일찍 군사들을 직접 인솔하고 시황제의 무덤인 여산궁(驪山宮)으로 향했다. 여산궁은 거창하고도 호화로운 방대한 陵宮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아름드리 巨木들이 햇빛조차 새어들지 못하도록 무성한 데다가, 울창한 수목 사이사이에는 호화롭기 그지없는 殿閣들이 산재해 있었다.

 

이처럼 전각이 들어선 밀림 지대를 20 리쯤 걸어 들어가니, 그곳에는 호랑이와 코끼리의 石像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다시 20리쯤 더 들어가자 鐵衣를 입은 文武百官들의 立像이 능침(陵寢)을 향하여 두 손을 감싸쥐고 左右에 도열해 있었다. 이렇게 시황제의 능침을 향하여 도열해 있는 문무 백관들의 입상은 무려 3천 개나 되어 그 거리만도 20리가 넘었다.

 

항우가 능침 앞에 이르러 정상을 올려다 보니 능침은 마치 하늘에 솟아오른 태산처럼 장엄하기가 짝이 없었다. 게다가 능침 기슭에는 수많은 기화 요초(奇花妖草)가 무성하였다.

"아! 참으로 엄청난 규모로구나. 始皇帝가 生前에 무덤을 호화롭게 꾸며 놓았다는 말은 들어 왔지만, 이처럼 거대한 규모인 줄은 정말로 몰랐도다."

 

앞장서서 걸어가는 항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황제의 陵寢의 규모와 거창함, 그 치밀함에 다시 한 번 놀랐던 것이다. 마침내 항우는 1만 군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무덤 속에는 수많은 보물이 들어 있으니, 어서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하라 ! "

 

항우는 1만 군사를 총동원한 후 2 교대로 나누어 晝 夜로 여산궁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산궁은 전체가 집채 같은 돌로 쌓아 올린 무덤인지라, 그것을 헐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만여 군사가 총동원 되었으나, 나무를 베어내고 殿閣을 헐어내고 돌을 추려 내고 흙을 파 옮기다 보니, 한 달이 지나도록 발굴 작업은 좀체로 진척되지 않았다.

 

이런 속도로 파내려 가면 몇 해가 걸릴지 모르는지라, 항우는 마침내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하다가는 안되겠다. 발굴 작업을 석달 안에 끝낼 수 있도록 10 萬 군사를 더 동원하라 ! "

그러나 좁은 지역에 사람만 많이 동원한다고 발굴 작업이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項羽는 지지 부진한 발굴 작업에 짜증을 내면서,

"보물을 어느 곳에 두었는지 그곳만 파 들어가면 될 터인데, 누가 그곳을 아는 사람이 없겠느냐 ?

賞을 크게 내릴 터이니, 그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여라."

 

그러자 英布가 달려와 아뢴다.

"지난날 小臣이 노역부로서 이 공사에 동원된 일이 있는 관계로, 보물을 넣어 둔 곳을 소신이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면 그대가 진두 지휘를 하여 그곳을 우선적으로 파헤치도록 하라. 보물이 나오게 되면 그대에게는 큰 賞을 주리라."

 

이번에는 英布의 진두 지휘로 무덤을 파헤쳐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英布가 지목한 곳으로 부터 5백 자쯤 파 들어가니, 홀연 백 평 가량 되는 널따란 廣場이 나왔다.

그 광장을 남쪽으로 50 步쯤 걸어 들어가니, 돌로 만든 누문(樓門)이 있었다.

돌문을 열어 제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부터는 기다란 복도였는데 복도에는 돌로 새겨진 龍들이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좌우로 도열해 있었다.

 

이런 복도를 千 步쯤 걸어가니 그제서야 분문(墳門)이 나온다.

그 분문을 열어제치자, 그 안에는 대전(大殿), 향전(享殿), 침전(寢殿)등 , 대궐을 옮겨다 놓은 것같은 삼궁 육원(三宮六院)이 있었다. 始皇帝의 시체가 들어 있는 石棺은 침전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석관 앞에는 60 萬 근이 넘어보이는 金銀寶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천하 일품의 보물들이었다.

 

項羽는 처음 보는 희귀한 보물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밖에 있는 보물들조차 이렇듯 뛰어난 것일진대, 棺속에 들어 있는 보물은 얼마나 귀한 것이겠느냐? 이왕이면 石棺도 때려 부수고, 그 안의 것도 꺼내도록 하여라."

 

그러자 英布가 뛸 듯이 놀라며 아뢴다.

"대왕 전하 !

석관을 건드렸다가는 큰일 나옵니다."

"무슨 큰일이 난다는 말인가 ?"

 

"석관 속에는 철포(鐵砲)와 대노(大弩)를 설치해 놓아서, 관을 부수면 철전(鐵箭 :쇠 화살)과 포석(砲石)등이 빗발치듯 쏟아져 나와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게 되옵니다. 그러니 석관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아니되옵니다.

"허어 ... ! 棺 속에 그런 무서운 장치가 되어 있다는 말인가 ? 그렇다면 石棺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두어라."

 

항우는 밖에 보이는 보물만 수습하도록 명령하고, 이번에는 寢殿 뒤에 있는 <地下 아방궁>으로 가 보았다. 지하 아방궁도 <地上 아방궁>과 똑같은 규모로 거대하고 정교하게 지어져 있었다. 項羽는 지하 阿房宮의 호화로움에 일종의 義憤을 느끼며,

 

"음, 국가의 재물을 이렇게 탕진했으니 秦나라가 亡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구나.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불을 놓아 송두리째 태워 버려라."

병사들이 곧 불을 놓아 지하 아방궁을 태워 버리기 시작했는데, 그 규모가 얼마나 방대했던지 지하 阿房宮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석 달이나 계속되었다.

 

咸陽 백성들은 그 광경을 보고 항우의 무지하고 잔학함에 모두들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항우는 백성들의 원성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아니 하고, 보물 중에서도 가장 값진 것을 골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한편, 항우의 여인 虞美人은 이날도 項羽 모르게 시냇가에서 빨래를 한 후, 일찌감치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의 옷을 직접 빤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일종의 책무 같은 것이었다. 맑은 물이 흘러가는 시냇가에서 사랑하는 님의 옷을 빨고있노라면, 전신에 행복이 충만해 오는 것만 같았다.

 

退廳한 항우가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오더니, 힘차게 포옹을 하더니 아내에게 묻는다.

"당신 오늘은 빨래질 하지는 않았겠지 ?"

"안했어요. 대왕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

虞美人은 양심이 찔렸지만, 남편의 꾸지람을 들을까 두려워 거짓말을 해 버렸다.

 

"음, 잘했어요. ! 당신이 내 말을 잘 들어 주었으니 오늘은 大王으로써 특별한 선물을 드리지."

항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들고온 꾸러미를 풀어 보석으로 된 목걸이를 꺼내더니,

"지금 당신 목에 걸려 있는 싸구려 목걸이는 왕후가 착용하기에는 좀 창피스러운 거니까 이제부터는 이것을 걸고 다녀요 ! "

라며, 낡은 목걸이를 풀어 내고 새 목걸이를 걸어 주는 것이었다.

 

項羽가 虞美人의 목에 걸어 주는 목걸이는 황옥,청옥, 벽옥(碧玉), 자정(紫晶), 호박(琥拍), 비취(翡翠)

옥수(玉髓), 홍보석, 녹보석, 황보석, 남보석(藍寶石), 담황옥(淡黃玉)등, 五色이 영롱한 열두 가지의 보석에 '十二支神像'이 정교하게 새겨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목걸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始皇帝의 무덤 속에서 파낸 목걸이였던 것이다.

虞美人도 여자인지라 항우가 걸어주는 호화 찬란한 목걸이가 싫을 리 없었다.

"어마나! 어디서 이런 진귀한 목걸이를 구해 오셨어요 ?"

虞美人은 뛸 듯이 기뻐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항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어때 ? 이만하면 마음에 드시는가 ? 당신은 내가 천하의 大王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 내가 구하고자 하면 무엇인들 못 구하겠어 ?.... 王后의 목걸이는 이정도는 되어야 체면이 서지. 오늘부터는 이것만 걸고 다녀요."

 

"그래도 제게는 처음부터 쓰던 자연색 목걸이도 소중한 것이에요."

虞美人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별안간 어떤 예감을 느꼈는지 일순간 웃음이 사라지며 항우에게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이 목걸이는 어디서 난 거예요 ?"

항우는 문제의 목걸이가 <무덤 속에서 파낸 목걸이>라는 것을 아내에게는 알려 주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아내 虞美人은 始皇帝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극력 반대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우는 재빨리 둘러대었다.

"諸侯들이 왕후인 당신에게 선사하기 위해각 지방의 특산물을 하나씩 모아 가지고 이같은 목걸이를 만들어 왔군그래. 그런 줄 알고 소중히 걸고 다녀요."

 

그러나 虞美人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감성이 예리한 법이어서, 虞美人은 모든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것은 始皇帝의 무덤 속에서 파내 온 것이 분명해요. 그렇지 않다면 왜 목걸이에 '十二支神像'이 새겨져 있어요? 속이려 하지마시고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虞美人이 워낙 진지하게 나오는 바람에 항우는 끝까지 속일 수가 없었다.

"무덤 속에서 파낸 물건이면 어떻다는 거야. 옛날에 皇后가 사용하던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야지. 어디서 났던지 간에 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임에는 틀림없으니까, 그런 줄 알고 걸고 다니면 될게 아닌가!?"

 

"비록 당신이 주시는 선물이라도 무덤 속에서 파낸 물건이라면 저는 싫어요. 이런 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귀신이 쫒아다니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우리가 불행하게만 될 것 같아요."

虞美人은 그렇게 말하며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벗어내려고 하였다.

 

그러자 항우는 버럭 화를 내며,

"못난 소리 그만 해 ! 나는 천하를 호령하는 楚覇王이야. 귀신 따위가 어찌 감히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가 있어!?. 잠꼬대 같은 소리는 이제 그만 하라구."

"이런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싫은 걸 어떡해요."

"못난 소리만 하고 있네."

"아무리 싫어도 목에 꼭 걸고 다녀야만 하겠어요 ?"

"물론이지 ! 내가 주는 선물을 싫다고 하면, 그것은 나에 대한 사랑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는 거야. 그러니 당신이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면 목을 쳐 버리지, 그냥 살려 둘 줄 아는가?!..."

 

사랑에 겨워서 하는 말이었지만, 농담치고는 너무도 섬뜩한 말이 항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虞美人은 항우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보석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면서,

"당신이 그토록 원하신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목걸이를 걸고 다니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결혼 선물로 받았던 싸구려 자연석 목걸이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그날부터 虞美人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떠나지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줄로 목을 감아오는 것만 같은 불안감 같은 것이었지만, 그것은 夫君인 項羽에게 조차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아픔이었다.

 

 

# 列國誌 75

 

 

** 論功行賞

 

 

秦始皇陵을 파헤쳐 그 안의 副葬品을 꺼낸 것은 항우의 큰 잘못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死者의 안식처로 지은 地下 阿房宮까지 불질러 태워버린 행위는 民心이 離反되기에 충분하였다. 백성들은,

"項羽는 秦始皇보다도 더 무서운 暴君이다 ! "

라는 말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더욱이 項羽가 楚覇王으로 등극하고 난 뒤에도 生과 死를 같이 넘나든 장수 들에게 論功行賞을 베풀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불만 또한 컸다.

范增은 그러한 불만 등을 알고 항우에게 諫한다.

 

"秦나라를 滅한 지도 상당한 시일이 흘렀사온데, 아직도 논공 행상을 하지 않으셔서 모두들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데, 大王께서는 그들을 侯伯에 封하시옵고 食邑을 下賜하사 각각 임지로 가서 나라의 변방을 튼튼히 지키게 하옵소서."

 

項羽는 范增의 충언을 옳게 여겨,

"옳은 말씀이오. 그러면 논공 행상을 하도록 합시다. 그런데 정작 논공 행상을 베푸는데 걸리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沛公 劉邦은 어떻게 處遇했으면 좋겠소 ? "

 

項羽는 <關中王>의 자리를 劉邦으로부터 빼앗아 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劉邦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范增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劉邦을 漢王으로 封하여 巴蜀으로 보내심이 좋을 줄로 아옵니다."

"劉邦을 巴蜀으로? "

"예, 劉邦을 지금처럼 覇上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하면, 군사를 모아 장차 어떤 짓을 할지 모르옵니다. 그러나 <漢王>이라는 명목으로 멀리 巴蜀으로 쫒아버리면, 감히 다른 짓을 할 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巴蜀으로 보내면 딴 짓은 못 할 것 같소이까 ?"

"물론입니다. 파촉은 워낙 첩첩 산중의 산간벽지라, 그곳은 사람도 적고 物産도 빈약하여 大軍을 양성하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군사가 없는데 어떻게 모반을 도모할 수 있사오리까? 하오니, 劉邦을 漢王에 封하여 巴蜀으로 보내 버리기만 하면 그는 어쩔 수없이 거기서 늙어 죽고야 말 것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참으로 기똥찬 계책이오. 劉邦만 힘을 쓰지 못하게 해놓으면, 천하는 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날게 아니겠소 ?"

"그러하옵니다, 大王殿下 ! 하오니 논공행상이라는 명목으로 劉邦을 하루속히 파촉으로 쫒아 버리도록 하시옵소서."

 

項羽는 范增의 말을 듣고, 劉邦을 비롯한 모든 장수들에게 <論功 行賞을 거행할 것이니, 郴州(침주)로 모이라>는 命을 내렸다.

劉邦은 項羽의 호출장을 받아 보고 고심하였다. 부른다고 바로 달려가자니 위신이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항우의 명령을 묵살하자니 後患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에 劉邦은 重臣 회의를 열었다.

"項羽가 내게서 關中王 자리를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논공 행상을 한다고 호출장을 보내 왔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 "

 

簫何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지금 우리의 형편에 項羽의 命을 묵살해 버리면 필시 보복이 따를 것이오니 장래를 생각하시어 가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경솔하게 달려갔다가 ,만약 만인이 보는 앞에서 모욕이라도 당하게 되면,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하겠소 ?"

 

소하가 다시 아뢴다.

"천만 다행히 張良 선생이 지금 項羽의 幕下에 머물고 계시오니, 침주에 도착하시는 대로, 모든 일을 張良 선생과 상의하시면 되실 것이옵니다."

"오! 정말 그렇구려, 그러면 郴州로 가겠소이다."

 

劉邦이 項羽를 찾아가니, 項羽는 龍床에서 내려다 보며, 劉邦을 완전히 수하 장수 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논공 행상의 자리에서는 項羽는 龍床에 앉아 있는데, 劉邦은 다른 장수들과 함께 段下에서 무릅을 꿇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 자리에는 張良도 項羽의 등 뒤에 시립해 있었다. 張良은 段下에서 무릅꿇고 앉아 있는 劉邦과 시선이 마주치자, 남 모르게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며 반가운 눈인사를 한다.

이윽고 軍政司가 項羽의 命에 따라, 다음과 같은 논공행상에 관한 전교를 읽어 내려갔다.

 

1.劉邦 장군을 漢王에 封하노니, 南鄭에 도읍하여 巴蜀 41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2.章悍장군을 甕王(옹왕)에 봉하노니, 폐구(廢丘)에 도읍하여 秦領 38 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3.司馬欣 장군을 塞王에 봉하노니, 역양에 도읍하여 秦領 11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4.동예 장군을 적왕(翟王)에 봉하노니, 高奴에 도읍하여 西秦 38 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5. 英布 장군을 九江王에 봉하노니, 六合에 도읍하여 北秦 45 縣을 다스리도록 하라.

 

이상과 같은 논공 행상을 낭독하고 난 뒤,

 

1.范增 軍師를 丞相에 제수하여 <亞父>로 존칭하고,

 

2.項伯 장군을 尙書令에 제수하여 대왕을 측근에서 보필케 하고,

 

3.종리매(鐘離昧)장군을 右司馬로, 季布장군을 左司馬로 삼아, 大王의 경호를

책임지도록 한다.

 

논공 행상에서 劉邦은 완전히 부하 취급을 당하는 바람에 모욕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명색은 비록 <漢王>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살지 못할 깊은 산중으로 정배를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關中王의 자리를 빼앗더니, 나를 이렇게 對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리 참을성이 많다해도, 이것만은 묵과할 수 없다 ! )

 

이같은 생각이 든 劉邦이 항의를 하려고 얼굴을 들어 항우를 정면으로 쏘아보며,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자 그 순간, 항우의 뒤에 배석해 앉아 있던 張良이 손을 들어 劉邦의 행동을 제지하는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항의를 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劉邦은 그래도 참을 수가 없는지, 몸을 움직여 일어서려 하였다.

그러자 張良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項羽에게,

"大王 殿下 ! 논공 행상을 끝내셨으니, 이제는 제후들과 축배를 함께 드시도록 하소서."

 

劉邦에게 항의할 기회를 주지 않고자, 張良이 순간적으로 꾀를 냈던 것이다.

이윽고 축하연이 성대하게 열리고

큰 賞을 제수받은 장수들은 저마다 크게 기뻐하며 술잔을 들고 크게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劉邦은 술 마실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이에 張良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속삭이듯 말한다.

"아무리 불쾌하시더라도, 오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마시옵소서. 축하연이 끝나거든, 이번에는 저도 沛公을 모시고 覇上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劉邦은 그 소리에 그 큰 귀가 활짝 움직였다.

"선생이 나와 함께 覇上으로 돌아가 주신다면, 그처럼 기쁜 일이 없겠소이다. 그러나 項羽가 선생을 돌려보내려 하겠습니까 ?"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張良은 항우 옆으로 다가가,

"秦나라를 平定하는 大業을 이미 이루셨으니, 저는 오늘로서 沛公과 함께 일단 覇上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못마땅한 듯,

 

"아니, 나는 子房에게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 달라고 했는데, 子房은 나보다 沛公을 더 도와주고 싶어서 내 곁을 떠나겠다는 말씀이오 ?"

하며 노골적으로 나무란다.

 

그러자 張良은,

"大王께서는 오해를 하고계시옵니다. 저는 沛公을 돕기 위해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 아니옵고, 저의 고국인 韓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려는 것이옵니다. 韓王께서 저를 이곳으로 보내 주실 때, 秦나라가 平定이 되거든 그날로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嚴命이 계셨던 것이옵니다. 하여,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기에, 일단 覇上에 들러 짐을 꾸린 후 즉시 본국으로 돌아 갈 생각입니다."

 

項羽는 그제서야 표정이 누구러지며,

"본국으로 가시겠다니 어쩔 수 없구려."

하고 劉邦과 함께 돌아가기를 허락해 주었다.

 

 

# 列國誌 76

 

 

** 劉邦의

切齒腐心

 

 

劉邦은 張良과 함께 覇上으로 돌아오자, 곧 重臣 회의를 열고 항우에게 당한 일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중신들 모두가 한결같이 분개하며 曺參이 소리 높여 말한다.

 

"主公께서 마땅히 關中王이 되셔야 마땅한 것이거늘, 첩첩산중인 巴蜀으로 쫒겨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옵니다. 그것은 귀양을 보내는 것이지, 이것을 어디 論功行賞이라고 할 수있습니까 ? 이것은 필연코 范增이란 者가 뒤에서 그런 책동을 벌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파촉으로 갈 게 아니라 項羽와 一戰을 벌여 결판을 내야 합니다."

대장 왕릉도 曺參의 의견에 찬동하면서 말한다.

"그렇습니다. 파촉으로 가면, 우리가 어느 세월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 그러니 싸우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분연히 싸움으로 결판을 내야 합니다."

 

그러자 樊쾌도 덩달아,

"小將은 두 분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만약 싸우게 되면, 小將을 선봉장으로 삼아 주시옵소서. 소장은 項羽의 군사를 남김없이 괴멸시켜 버리겠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劉邦은 그들의 말을 듣자 다시금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咸陽을 먼저 점령하는 사람이 關中王이 되어 咸陽에 도읍하라>고 하신 楚懷王의 말씀은 천하가 다 알고있소. 그런데 項羽는 王命을 무시하고 <楚覇王>을 자처하면서 나를 파촉으로 쫒아 버리려고 하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이오!? 巴蜀은 사람의 왕래조차 어려운 첩첩 산중이니,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되면 언제 고향에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오."

감정이 격해진 劉邦 역시 모든 것을 전쟁으로 결판을 내려는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簫何가 침착하게 말한다.

"主公께서는 감정에 치우치지 마시옵고, 이 문제를 냉정하게 판단해 주시옵소서. 巴蜀이 제아무리 첩첩 산중이라도 項羽와 싸워서 敗하느니보다는 파촉으로 가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臣은 생각되옵니다.

 

그 옛날, 湯王과 武王은 萬人之上이 되기 위하여 일시 覇者에게 굴욕을 감수하였던 故事도 있사오니, 主公께서는 그들의 지혜를 본받도록 하시옵소서. 파촉이 비록 불모의 벽지라고는 하오나, 그 대신 外敵의 침략을 받지 않는 利로움이 있사옵니다. 우리가 그런 안전 지대에 가서 賢士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규합하여 국력을 키워 군사력을 강화한다면, 천하를 도모하는 大業도 능히 성취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劉邦은 지금까지의 중신 들의 의견과는 다른, 簫何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張良에게 묻는다.

"張良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張良이 즉석에서 대답한다.

"저는 簫何 大人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보오 ?"

 

張良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말한다.

"巴蜀이라는 곳은, 秦나라 시절, 죄인을 유배보내던 곳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조금 전, 簫何 대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파촉은 산이 많고 길이 험하여 외침을 받을 염려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국력을 잘 키워 놓으면 項羽의 百萬 대군도 能히 감당할 수가 있을 것이니, 어찌 나쁜 곳이라고만 말할 수 있사오리까. 바라옵건데, 沛公께서는 낙심하지 마시고, 하루속히 파촉으로 가시어 捲土重來를 도모하도록 하시옵소서.

만약 沛公께서 巴蜀으로 떠나실 날짜를 지연시키면, 어떤 일이 생길 지도 모르옵니다."

 

"어떤 일이라니, 그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

"范增은 자나깨나 沛公을 해칠 계획을 꾸미고 있습니다. 만약 沛公께서 巴蜀으로 속히 부임하지 않으시면, 저들은 우리가 불만을 가지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줄로 오해하고, 병력을 움직여 우리를 치려고 할 것 입니다."

 

劉邦은 그 말을 듣고 저으기 놀랐다. 그러면서도 쉽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지 대답하기를 주저하자, 이번에는 廣野君 여이기 노인이 나서서 말한다.

"主公께서 巴蜀으로 가시면 <세 가지의 利로움>이 있사온데, 覇相에 그냥 눌러 계시면 <세 가지의 害로움>이 있사옵니다"

劉邦이 반문한다.

"세 가지의 利로움과 세 가지의 害로움이란 어떤 것이오 ?"

廣野君이 대답한다.

 

"巴蜀은 워낙 교통이 험난한 곳이라 우리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項羽가 알지 못할 것이니, 그것이 첫째 利로운 점이옵고, 지세가 험한 곳에서 軍馬를 조련하면 전투력이 특히 强해질 것이니, 그것은 두번째의 利로운 점이 되겠고, 후일에 우리가 다시 關中으로 쳐 나올 때, 군사들은 모두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서 사기가 몇 배로 왕성해질 것이니, 이것이 세번째의 利로운 점입니다. 우리에게 이처럼 이로운 점이 많사온데, 主公께서는 어찌하여 파촉으로 가시기를 주저하시옵니까 ?"

 

劉邦은 여이기 노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깨우쳐 주자 크게 기뻐했다.

張良과 簫何도 여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다.

劉邦이 여 노인에게 다시 묻는다.

 

"광야군(廣野君: 여이기 노인의 작위)의 말씀을 들어 보니, 과연 감탄이 절로 나오는구려. 그러면 覇上에 그냥 눌러 있으면 세 가지의 害로움이 있다고 하셨는데, 세 가지의 害로움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여 노인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이곳 覇上은 韓, 魏 等과 지리적으로 너무 가깝고 交通이 빈번한 관계로 우리의 軍事機密이 項羽를 비롯한 外國에 속속들이 새어나갈 수가 대단히 많사오니, 그 점이 첫번째의 害로운 점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項羽를 치려고 할 경우, 范增이 우리의 모든 현황을 속속드리 살피고 있다가, 우리의 헛점을 찾아 선수를 치고 나올 것이니, 그것이 害로움의 둘째이옵니다."

"그리고 셋째는,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 백성들은 정작 싸움이 일어나게 되면, 현실적으로 우리보다도 세력이 강한 項羽에게 붙으려고 할 것이니 그것이 세번째의 害로움이 될것이옵니다.

 

이처럼 이곳 關中은 이해 관계가 복잡 다단하오니, 主公께서는 일시적인 불만을 참으시고, 파촉으로 가셔서 새로운 각오로 천하를 도모하도록 하시옵소서. 지금부터 臥薪嘗膽의 각오를 다지신다면, 머지않아 천하를 얻게 되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될 것이옵니다."

 

劉邦은 그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廣野君의 말씀에 크게 깨달았소이다. 그러면 이제 모두 파촉으로 들어가 설욕의 大業을 만들어 가도록 하십시다."

그러자 張良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저는 이곳에서 작별을 告하고, 本國으로 돌아가게 해주시옵소서"

劉邦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선생께서 나를 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시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생이 돌아가시면, 나는 누구와 더불어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라는 말씀 입니까 ?"

張良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제가 없더라도 沛公의 휘하에는 簫何 대인을 비롯하여 廣野君 ,번쾌 장군 等等, 賢士들이 기라성같이 많이 계시므로, 人材의 부족은 조금도 느끼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그러자 簫何, 여이기, 번쾌 等이 張良의 손을 붙잡으며 간청한다.

"저희들은 오로지 선생만을 믿고 大業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이옵니다. 그런데 선생이 떠나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옵니까 ?"

劉邦도 張良의 손을 움켜잡고 눈물로 만류하는 바람에 張良은 어쩔 수 없이 巴蜀으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불모지나 다름없는 巴蜀으로 떠나려고하니 劉邦의 심정은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가도가도 山, 山, 山뿐인 巴蜀萬里로 가는 것은 유배를 떠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 갈 수도 없는 길이라 눈물을 머금고 떠나려고 하는데, 돌연 項羽로부터 난데없는 호출장이 날아왔다.

"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즉시 출두하라 ! "

 

項羽가 무슨 까닭으로 劉邦을 急히 호출한 것일까 ?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었다.

項羽를 부추겨 劉邦을 파촉으로 쫒아 버리도록 책동한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范增이었다.

말하자면 범증은 유방을 파촉으로 쫒아 보내는 일에 성공한 셈이었다.

 

그러나 范增은 이 일에 성공하고난 後,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五行)으로 점을 쳐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앗차 ! 劉邦을 巴蜀으로 보내는 것이 아닌데, 내가 커다란 실수를 했구나 ! )

 

范增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당황하였다.

그러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것일까 ?

그 이유는 이러하였다.

 

유방이라는 인물은 오행으로 따지면 火德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劉邦은 자기 군대의 깃발도 붉은 빛깔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劉邦이 부임해 가게 될 巴蜀은 西쪽으로서, 西方은 金에 해당한다.

五行에는 <金이 불을 만나면 대성한다(金得火大)>는 점쾌가 있는데...

 

그 점쾌대로 판단하면, 劉邦은 巴蜀으로 가면 亡하기는 커녕, 오히려 크게 일어날 것이 분명하였다.

(내가 일생 일대의 과오를 범할 뻔했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劉邦을 巴蜀으로 보내지 말아야지!..)

 

范增은 마음을 고쳐 먹고 황급히 項羽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자신이 꾸며 놓은 일을 자기 입으로 번복하기에는 丞相의 위신에 손상이 가는 일이 되는바, 范增은 項羽에게 이렇게 꾸며댔다.

"劉邦은 巴蜀으로 가라는 王命을 받았을 때, 유배 가는 줄로 알았는지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어쩌면 파촉으로 가지 않을지도 모르오니 대왕께서는 劉邦을 직접 부르셔서 확답을 듣도록 하시옵소서."

 

항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직접 물어 보아서, 만약 파촉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하면 좋겠소 ?"

"만약 자기 입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대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 되므로 마땅히 斬刑에 처하심이 可할 줄로 아뢰옵니다."

劉邦을 살려 두었다가는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 같아서, 范增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劉邦을 죽여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으음,....승상의 말씀을 들으니 과연 그렇기도 하구려.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를 살려 둘 수는 없지. 그러면 곧 劉邦을 부르도록 하오."

 

이리하여 유방을 긴급 호출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사유를 알 턱이 없는 劉邦은 , 생각지도 않았던 호출장을 받자 상당히 불안하였다.

劉邦은 張良을 불러 호출장을 보이며 물었다.

"項羽가 갑자기 이런 호출장을 보내 왔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히는 것이 좋겠소이까 ?"

張良은 호출장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고 나서 이렇게 대답한다.

"무슨 용무로 오시라는 것인지, 이 호출장만 보아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호출장을 받고 가시지 않으면 <命令 불복종>이 될 터이니, 가시기는 가셔야 되겠습니다."

"왜 이런 호출장을 보냈는지, 선생으로서도 짐작이 아니 되신다는 말씀이오 ?"

張良은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열어 대답한다.

"추측컨데, 이번 일도 范增이 꾸민 것이 아닌가 생각되 옵니다."

 

"范增이 무슨 일로 이런 짓을 한다는 말씀이오 ?"

張良이 다시 대답한다.

"范增은 智略도 비상하지만, 先見之明도 대단한 者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항우의 장래를 위해서는 沛公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者인지라, 이번에도 무슨 구실을 잡아서 든지, 沛公을 害치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닌가 짐작되옵니다."

劉邦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불안하여,

"나를 죽이기 위해서 부른다면, 내가 안가면 될게 아니오 ?"

"가시지 않으면, 그 자체가 <命令 불복종>의 죄가 성립되오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시기는 하셔야 하옵니다."

 

"그러면 죽음을 각오하고 가라는 말씀입니까?"

"거기에 대한 대책은 간단합니다. 沛公께서 項羽를 만나시면, 項羽는 沛公을 처벌할 구실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沛公께서는 어떤 질문을 받으시든 간에 <모든 것은 大王 殿下의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라고만 答하시옵소서. 그러면 항우는 우직하고도 단순하기 때문에 어떤 위험도 모면하실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고맙소이다. 그러면 선생의 말씀대로 項羽를 만나러 가도록 하겠소이다."

유방은 張良의 忠言에 용기백배, 항우를 만나고자 침주로 향하였다.

 

項羽는 劉邦을 만나자마자, 대뜸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대는 것이었다.

"내가 沛公을 <漢王>으로 封한 지가 이미 여러 날이 지났건만, 公은 어찌하여 아직도 임지에 부임하지 않고 있소 ? 公은 巴蜀으로 떠나기가 싫어서, 覇上에 그냥 눌러 있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오 ?"

劉邦은 張良으로부터 미리 주의를 받은 일이 있기에, 항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황공하옵게도 臣은 漢王에 임명된 것을 無雙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사옵는데, 巴蜀으로 가는 것을 어찌 마다하겠나이까? 臣은 오직 大王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옵니다."

항우는 그 대답을 듣자 매우 기분이 좋아졌으나 어딘가 석연치 않은 바가 있는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임지로 속히 떠나지 아니하고, 아직도 覇上에 그냥 머물러 있느냐 말이오 ?"

劉邦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많은 식구가 먼 길을 한꺼번에 떠나자니, 준비 관계로 출발이 다소 지연되고 있으나, 불원간 떠날 것이옵니다."

 

劉邦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뜸을 두었다가, 이번에는 머리를 깊이 숙여 보이며 다시 말한다.

"이 기회에, 臣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바를 大王殿에 한 말씀만 여쭙고 싶사옵니다."

"무슨 얘긴지 어서 말해 보오."

 

"그러면 한 말씀만 여쭙겠사옵니다. 臣은 마치 大王께서 애용하시는 馬와 같은 몸이니, 대왕께서 채찍질을 하시면 무조건 앞으로 달려 나갈 것이옵고, 만약 대왕께서 고삐를 당기시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다음의 命을 기다릴 것이옵니다. 그 점만은 臣을 의심치 말아 주시옵소서."

 

劉邦은 물론 언제까지나 項羽 밑에서 從身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먼 장래를 위해서 상대방이 듣기 좋은 '아첨'은 때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지극히 흡족하여,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沛公이 자기 자신을 나의 말에 비유한 것은 名言 중 名談이오. 그러면 속히 돌아가 巴蜀으로 빨리 부임하도록 하오."

 

이리하여 劉邦은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覇上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范增은 劉邦이 이번에도 무사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또다시 탄식했다.

 

(아, 項羽는 이번에도 劉邦을 못 죽이고 돌려보냈 으니, 이런 통탄할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항우가 워낙 우직하여, 유방의 변론에 번번히 속아 넘어가고 있으니,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서 劉邦을 죽여 버리도록 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劉邦에게 천하를 빼앗겨 언젠가는 나 도 항우와 함께 유방의 손에 죽게 될 것이 아닌가 ?)

 

范增은 劉邦이 帝王의 기상을 타고난 인물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지금 죽이지 않으면 항우와 자기가 그의 손에 죽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방을 죽여 버리기로 결심하는 것이었다.

 

范增으로서는 그야말로 <네가죽든지, 내가 죽든지>하는 死生決斷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 列國誌 77

 

 

** 陳平의 智略

 

 

劉邦은 覇上으로 돌아오자 項羽와의 이야기를 張良에게 소상히 말해주었다.

장량은 유방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비로소 안도하며 말한다.

"沛公께서 <항우의 말(馬)이 되어 드리겠노라>고 하신 것은 참으로 잘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셨다면, 범증은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沛公을 반드시 害치려 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범증은 워낙 집념이 강한 者라 아직도 안심할 수가 없으니, 沛公께서는 하루속히 巴蜀으로 떠나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유방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지며 말한다.

"떠나기는 해야 겠지만 이제야 생각하니,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버리고 나 혼자서 떠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이까? 항우에게 허락을 받아서 일단 고향으로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떠났으면 하는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유방의 부모는 그의 고향인 沛縣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張良은 대답하기가 곤란하였다. 아무리 급하다해도 부모를 버리고 떠나자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시면 고향에 가 부모님을 모셔 오기까지 한 달 가량 말미를 달라고 항우에게 表文을 올리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부모님을 그냥 내버려두고 떠났다가는, 부모님께서 어떤 박해를 당하시게 될지도 모르니,

그렇게 해야 하겠소이다."

유방은 그날로 항우에게 <부모님을 모셔 갈 수있도록 한 달 정도 부임을 연기해 주십사>하는 表文을 올렸다.

 

유방의 표문을 받아 보고 누구보다도 기뻐한 사람은 范增이었다.

(옳지 됐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기회에 유방을 없애 버려야겠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다 ! )

범증은 그렇게 생각하고 항우에게 품한다.

 

"대왕 전하 ! 유방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巴蜀으로 떠나기를 차일 피일 미루는 것은, 다른 생각이 있기때문입니다. 하오니 유방이 고향에 다녀오기를 일단 허락해 주시고 우리가 그의 부모를 먼저 데려와 볼모로 잡아 두고 있으면, 유방은 우리를 배반하고 싶어도 못하게 될 것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유방에게 한 달간의 말미를 허락해 주는 동시에, 沛縣으로 사람을 보내 유방의 老 부모를 연행해 왔다.

유방은 그런 줄도 모르고 부모를 모셔 가려고 고향에 와 보니, 부모는 온데간데 없지 않은가 ?

 

그리하여 사방으로 수소문해보니, 며칠 前에 항우의 군사들이 들이닥쳐 자신의 부모를 연행해 갔다는 게 아닌가 ?

劉邦은 覇上으로 부랴부랴 돌아와 張良과 상의하였다.

 

張良도 이번만은 크게 당황하며,

"사태가 매우 위급해 보이오니, 큰일을 당하기 전에 파촉으로 속히 떠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유방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한다.

 

"나 혼자만 살려고 늙은신 부모님을 死地에 버려두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이까? 그렇게는 못 하겠소이다."

자식된 도리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張良은 매우 난처하였다. 劉邦이 부모를 모시러 가면, 범증은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서 유방을 죽여 없애려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장량은 심사숙고하 다가 말한다.

 

"項羽의 叔父인 項佰장군은 沛公의 妹弟이옵고, 陳平은 진작부터 우리와 뜻이 통하는 사람이니, 제가 極秘리에 그들을 찾아가 대책을 상의해 보고 오겠습니다."

 

張良은 項佰과 陣平을 비밀리에 찾아가, 그쪽 사정을 물어 보았다.

 

項佰이 대답한다.

"范增은 沛公을 유인해 죽이려고 나의 장인 장모를 볼모로 잡아두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沛公이 부모님을 모시러 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장인 장모님은 내가 잘 모시고 있을 것이니, 沛公께서는 빨리 파촉으로 떠나시도록 하소서."

 

그러나 張良은 난색을 표하며,

"沛公의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기는 이미 틀렸다는 말씀이구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만 떠나가기도 어렵게 되었소. 왜냐면, 우리가 떠나기만 하면 范增은 항우를 부추겨 百萬 大軍으로 우리를 추격해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오. 우리가 이런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은 오로지 范增 때문이오."

 

張良은 陣平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將軍 ! 范增이 없어야만 우리가 무사히 떠날 수가 있겠는데, 범증을 며칠 만이라도 지방 출장을 보낼 수는 없겠소이까 ?"

하고 물었다.

 

陣平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얼굴을 들며 말했다.

"그런 계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항우 장군은 楚覇王이 되시고 나서도, 아직 彭城에 계신 義帝에게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범증을 팽성으로 보내 보고를 올리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張良은 그 말을 듣자 무릅을 치면서,

"그거 참 좋은 명안이외다. 그러면 우리는 떠날 준비를 갖추고 있을 테니, 범증을 꼭 팽성으로 보내도록 해주시길 바라오. 범증이 팽성으로 떠났다는 소식만 알려 주면, 우리는 그날로 巴蜀으로 떠나겠소이다. 만약 이번 일이 성공하면 沛公께서는 장군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외다."

"그 점은 염려 마시기바랍니다. 제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범증을 彭城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陣平은 張良과 작별하고, 곧 項羽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稟한다.

"大王 殿下 ! 요즘 항간에 매우 해괴한 소문이 떠돌고 있사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다.

 

"해괴한 소문이라니 ? 무슨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말인가 ?"

진평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뢰옵기 항송하오나, 백성들 간에는 <하늘에 해가 하나밖에 없듯이 나라에도 임금님이 둘이 있을 수 없는데, 우리 楚나라에는 彭城에 楚懷王이 있고 침주에는 楚覇王이 있으니, 도대체 어느 분이 진짜고 어느 분이 가짜냐?> 하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떠돌고 있다하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그 점을 깊이 돌아보시옵소서."

 

항우는 그 말을 듣고 怒氣띤 얼굴로 소리친다.

"모르는 소리 작작들 하라고 이르시오. 나는 <楚沛王>이 되면서 懷王을 <義帝>로 받들어 모셨는데,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오 ?"

 

陣平이 다시 말한다.

"懷王을 <義帝>로 받들어 올린 것은 매우 현명하신 처사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워낙 무식하기 때문에 <義帝>와 <覇王>의 位階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楚나라에 임금님이 두 분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소 ?"

"그대로 내버려두다가는 대왕께서 이신 벌군(以臣伐君 : 신하가 王을 쫒아냄) 했다는 비방을 면하시기가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대왕을 한결같이 비방 저주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냔 말이오 ?"

"해결책은 오직 한 가지 방도가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

 

"丞相 范增을 彭城으로 보내시어, 義帝를 彭城 外 다른 곳, 조용한 곳에 칩거하시게 하면 되옵니다. 그래야만 대왕의 위세가 제대로 확립되시게 되옵니다."

項羽는 陣平의 말을 고맙게 여기며, 곧 范增을 불러 다음과 같이 命한다.

 

"亞父도 알고 계시다시피, 지금 義帝가 있는 彭城은 내가 출생한 곳이오. 그래서 나는 장차 팽성으로 도읍을 옮길 생각이오. 그러니 卿은 彭城으로 義帝를 찾아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가시도록 하시오. 만약 다른 곳으로 가기가 싫다고 하거든 침주로 모시고 돌아와도 무방하오."

 

항우는 천하를 휘어 잡고 보니, 이제는 義帝의 존재 자체가 몹시 귀찮게 여겨졌다. 義帝를 그냥 내버려두면 <신하가 임금을 내쳤다>는 비난을 免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여차하면 없애버릴 생각에서 침주로 모셔와도 무방하다고까지 말했던 것이다.

 

항우의 이런 심사를 范增이 모를 리 없었다. 항우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면 이와 같은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만 같기에, 미리 <楚懷王>을 <義帝>로 받들어 올리자는 제안을 范增 스스로가 한 것이 아닌가?

 

范增은 팽성으로 떠나기 전에, 항우에게 말한다.

"그 문제는 臣이 義帝를 직접 만나 뵙고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신이 길을 떠나기 전에, 大王殿에 중요한 부탁 말씀을 올리고자하옵니다."

 

"무슨 부탁인지 어서 말해 보오."

"臣은 대왕에게 세 가지 부탁의 말씀이 있사옵니다. 첫째, 지금 우리는 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 두고 있사온데, 臣이 없는 사이에 유방은 부모를 구출해 가려고 시도할지 모르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볼모를 유방에게 빼앗기지 않으시도록 각별히 유념해주시옵소서."

 

"알겠소. 劉邦이 제아무리 재주가 비상하기로, 유방의 부모를 빼앗길 내가 아니오. 두 번째 부탁은 무엇이오 ?"

" 두 번째는 ,집극랑(執戟郞)으로 있는 韓信을 대장으로 승격시켜 주십사 하는 부탁이옵니다.

한신은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보이오나, 실상은 元帥의 경륜을 품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옵니다."

 

"뭐요 ? 韓信을 대장으로 승격시키라고요 ? 啞父께서는 그자의 어떤점이 비범하다고 대장으로 승격시키라는 말씀이오 ?"

"대왕께서는 한신을 하찮은 인물로 보고 계시오나, 한신은 경륜과 용병술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이옵니다."

 

"아무리 그렇기로 집극랑(오늘날의 계급으로 치면 陸軍 大尉 급)에 불과한 사람을 어떻게 한 번에 대장으로 승격시키라는 말씀이오 ?"

"韓信을 대장으로 발탁할 의사가 없으시다면, 차라리 한신을 죽여 없애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

"만약 대왕께서 한신을 등용하지 않으시면 한신은 불만을 품고 다른 나라로 가버릴 것이니,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장차 커다란 우환이 될 수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項羽는 韓信을 어디까지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지라 쉽게 대답한다.

"알겠소이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세 번째 부탁은 어떤 것이오 ?"

"세 번째는, 劉邦은 제가 없는 사이에 巴蜀으로 도망가려고 할지 모르오니, 제가 돌아올 때까지는 覇上에 그냥 잡아 두도록 하시옵소서. 劉邦에 대한 문제는 제가 彭城에서 돌아온 후 다시 稟의 하도록 하겠습니다."

 

"啞父의 부탁은 잘 알았소이다. 아부가 돌아올 때까지 유방을 패상에 잡아 두도록 할 테니, 아무 걱정 말고 팽성 일이나 잘 마무리하고 오도록하시오."

그리고 난 後, 항우는 그날로 유방에게 < 당분간 파촉으로 부임하기를 보류하고 있으라>는 특명을 보내었다.

범증이 팽성으로 떠나가자, 陣平은 곧 張良에게 다음과 같은 밀서를 보냈다.

 

< 范增을 彭城으로 출장 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범증은 팽성으로 떠나기에 앞서, 項王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沛公을 패상에 잡아 두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범증의 부재중에 파촉으로 떠나시려거든, 張良 선생이 項王을 직접 찾아오셔서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 떠나도록 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後患이 있을 것이옵니다.">

 

張良은 陣平의 밀서를 받아 보고, 劉邦과 상의한다.

"우리가 파촉으로 무사히 떠나려면,아무래도 제가 항우의 허락을 받아 와야만 後患이 없을 것 같사옵니다."

"선생께서 가신다고 항우가 우리의 출발을 허락해 줄 까요?"

 

"제가 직접 가면 그 허락은 받아 올 자신이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선생께서 수고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이왕 가실 바에는 나의 부모님도 모시고 오셨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 하겠소이까 ?"

 

"매우 죄송스러운 말씀이오나, 지금 형편으로는 부모님까지 모시고 오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項王의 손에 억류되어 계시더라도, 項佰과 陣平 등이 각별히 돌봐 드릴 것이니, 그 점은 너무 염려 하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장량은 유방의 걱정을 무마해 주고난 後, 항우를 찾아갔다.

항우는 장량을 보자마자, 대뜸 나무란다.

"子房은 내게서 떠날 때, 당장 고국으로 돌아갈 것처럼 말하더니, 어찌하여 아직도 유방의 휘하에 그냥 머물러 있소 ?"

 

張良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저는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사오나, 저더러 大王殿에 심부름을 한번 다녀온 後 떠나라는 沛公의 간곡한 부탁 말씀이 있었기로 부득이 대왕을 다시 찾아뵈러 왔사옵니다."

 

"유방의 심부름이라니 ? 유방이 子房에게 무슨 심부름을 시키더란 말이오 ?"

"沛公은 巴蜀으로 속히 출발하고자 하오니, 대왕께서 허락을 내려주십사 하는 부탁이었습니다."

"그 문제라면 당분간 떠나기를 보류하라고 이미 명령을 내린 바 있는데, 무슨 이유로 내 命을 무시하고 다시 허락을 받으러 왔다는 말이오 ?"

 

"대왕께서 <출발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은 저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패공이 부임할 巴蜀의 사정을 미리 알아본 결과, 지금 파촉 지방에서는 도둑의 무리가 난동을 부리고 있어서, 치안이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대왕의 治積에 누를 끼치게 될 것 인바, 沛公은 하루속히 임지로 달려가 賊徒들을 깨끗이 소탕해 버림으로써 대왕 전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하옵니다."

 

항우는 張良의 말을 듣자 매우 난처한 생각이 들었다. 도둑의 무리가 난동을 치고 있다면, 어차피 그곳으로 부임하게 될 유방을 일찌감치 보내어 그들을 소탕해 버리게 하는 것이 상책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시간을 끌다가 치안이 더욱 험악해 지게 되면 백성들은 항우 자신을 원망하게 될 게 아닌가?

그러나 항우는 <유방을 패상에 잡아 두겠노라>고 범증과 철썩같이 약속했기 때문에 <속히 떠나라>는 허락을 내리기도 난처했던 것이다.

 

장량은 그러한 사유를 재빠르게 알아채고 다시 말한다.

"대왕 전하 ! 백성들은 지금 대왕의 성덕을 한결같이 찬양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파촉 지방의 치안이 난마처럼 되어 버리면, 그곳 백성들이 대왕을 얼마나 원망할 것이옵니까? 이런 점을 고려하셔서 沛公에게 <속히 巴蜀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신속히 내려 주시옵소서."

 

항우는 장량의 말을 듣고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도둑의 무리들이 벌써부터 크게 난동을 부리고 있다면 ,백성들이 통치자의 무능을 탓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范增과의 철썩 같은 약속을 경솔하게 파기해 버리기도 난처하여, 항우는 陣平을 불러 물어 본다.

 

"승상 범증이 팽성으로 떠나갈 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유방을 覇上에 잡아 두라고 신신 부탁을 하고 떠났소. 그런데 장량의 말에 의하면 지금 파촉에서는 적도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서, 그들을 소탕해야한다며 유방이 파촉을 빨리 떠나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는지, 장군의 생각을 말해 보오."

 

陣平은 이미 張良과 밀약이 되어 있는지라, 모든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반문한다.

"丞相께서 무슨 이유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유방을 覇上에 잡아 두라고 부탁한 것이옵니까 ? 그 이유를 모르는 저로서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사옵니다."

 

항우가 다시 말한다.

"범증은 이상하게도 유방에게는 일종의 열등 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유방이 반역을 못하게 하려고, 覇上에 붙잡아 두고 싶어하더란 말이오."

 

진평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크게 끄덕이며,

"그런 문제 때문이라면 조금도 염려 마시고, 유방을 파촉으로 속히 보내시어 도둑의 무리들을 소탕해 버리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지금 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 두고 있사온데, 무엇을 걱정하시옵니까 ?"

 

項羽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장군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구려. 그러면 劉邦에게 巴蜀으로 신속히 가서 賊盜들을 소탕하라고 해야할까요 ?"

"물론이옵니다. 파촉 지방의 치안 문제는 대왕 전하의 치적과도 직결되는 긴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즉위하신 뒤, 治安이 더 어지러워졌다는 소문이 돌아 보옵소서. 백성들의 怨聲을 듣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단단히 결심한 어조로 말한다.

"알았소이다. 그러면 劉邦을 곧 파촉으로 떠나게 하겠소."

이리하여 張良은 항우의 快諾을 받자 覇上으로 급히 돌아왔다.

그런데 집극랑 韓信은 그 소식을 나중에 전해 듣고, 혼자서 항우를 비웃고 있었다.

 

(우매한 項羽는 張良의 교묘한 계략에 또다시 속아 넘어갔구나. 項羽는 유방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두었다고 안심하고 있지만, 그것은 후일에 커다란 禍의 불씨가 될 수있는줄을 왜 모르는 것일까?.)

 

 

      # 列國誌 78



   ** 張良과의 이별



張良은 항우와 작별을 하고 覇上으로 돌아와 유방에게 아뢴다.

"항우의 허락을 받아 왔사오니, 巴蜀으로 신속히 떠나도록 하시옵소서. 만약 范增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또 무슨 일을 시도할지 모르옵니다."


유방은 부모를 그대로 두고 떠나는 것이 지극히 가슴 아팠지만, 지금의 형편에서는 그대로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방이 군사들과 함께 覇上을 떠나려고 하자, 수십 명의 노인들이 몰려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한다.

"저희들은 그동안 沛公 德에 편안히 살아갈 수가 있었사온데, 이제는 저희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옵니까 ? 저희들을 버리고 떠나시려거든 차라리 저희들을 죽이고 떠나시옵소서."


노인들의 태도로 보아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호소였다.

그러기에 유방도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달랬다.

"내가 이 번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여러분과 작별을 할 수밖에 없으나, 여러분들 곁을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다시 찾아올 것이니, 여러분들은 조금 힘드시더라도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 주시기 바라오."


그러나 노인들은 유방의 옷깃을 붙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자, 유방은 길이 막혀 떠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簫何가 숙연한 자세로 노인들에게,


"지금 우리들은 楚覇王때문에 부득이 이곳을 떠나는 것이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우리를 붙잡고 늘어지면, 우리들과 여러분은 楚覇王의 손에 다 함께 죽게 될 것이오. 오늘은 沛公께서 부득이 여러분의 곁을 떠나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다시 찾아오실 것이니, 여러분은 후일을 기약하고 속히 떠날 수있도록 해주시오. 그래야만 우리도 살고, 여러분도 사는 길이오."


노인들은 그 말을 듣고서야 눈물을 닦으며, 길을 열어준다.

그리하여 출발이 겨우 가능하게 되자, 張良이 번쾌를 불러 말한다.

"갈 길이 바쁘니, 번쾌 장군은 軍馬를 신속히 이동하도록 하시오. 도중에 무슨 突發之事가 생길지도 모르니, 전후방의 경계를 엄중하게 하면서 쉬지말고 행군을 계속해야 하오."


巴蜀으로 가는 길은 출발부터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왜 이처럼 험난한 산속으로 쫒겨가야만 하는가 !? )

군사들과 함께 험준한 峽谷으로 말을 몰아 나가는 유방의 심정 또한 처량하기만 하였다.


유방의 군사는 산길이 아무리 험해도 쉬지 않고 전진을 계속하였다.

覇上을 떠나 90 里 만에 安平縣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다시 40리를 더 행군하여 扶風縣을 지난뒤, 봉상군과 보계현을 거쳐 大散關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산관은 파촉으로 들어가는 初入에 불과하였다.

길이 험하기는 비로소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험준한 태산 준령이 연이어져 하늘과 닿아 있는데,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은 千耶萬耶(천야만야)한 절벽 위에 있는 외길 하나뿐이어서,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죽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절벽위에 있는 외길은 그래도 좋은 편이었다. 길은 갈 수록 산은 높고 골은 너무도 깊어서, 때로는 이쪽 절벽과 저쪽 절벽 사이에 통나무 하나로 가로질러 놓은 잔교(棧橋)도 수없이 많았는데, 그런 다리를 한 번 건너가려면 군사 들의 추락사를 면할 길이 없었다.


본래 유방의 군사들은 드넓은 평야지대인 山東 출신이 많았던 고로 산길에 익숙하지 못 한 까닭에 희생자는 더욱 많았다.


(내가 죄없는 이 젊은이들을 이렇게 까지 희생을 시켜야 하는가 ? )

유방은 사랑하는 부하 병사들이 절벽아래로 떨어져 죽는 광경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비참한 심정은 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고 싸워 秦나라를 정벌한 우리가, 왜 이런 첩첩 산중으로 쫒겨가야 한단 말인가 ? 이처럼 험준한 산속으로 들어가면, 고향에는 언제나 가게되는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것은 아닌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이제라도 되돌아 가서 항우의 楚軍과 싸움으로 결판내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고 저마다 불평을 토해냈다.


대장 번쾌도 그런 말을 듣자마자 핳였던 감정이 폭발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여러분의 뜻대로 우리 모두 이제라도 말머리를 돌려, 楚軍과 한판 붙도록 건의합시다."

유방도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던지 長劍을 뽑아 들고 군사들에게 말한다.


"懷王과의 약속대로라면 咸陽에 먼저 入城한 내가 關中王이 되었어야 옳은 일이오. 그러나 項羽는 懷王의 言約을 무시하고 내게서 關中王의 자리를 빼앗고, 우리들을 巴蜀으로 쫒아내고 있소. 이대로 巴蜀으로 들어가면 다시 咸陽으로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나는 여러분의 뜻에 따라 함양으로 回軍하여, 항우와 死生決斷을 내기로 하겠소."

劉邦으로서는 있을 수있는 울분이었다. 이리하여 군사들과 함께 말머리를 되돌리고자 부대가 소란스러워지자, 張良은 크게 당황하며 簫何,여이기 等과 함께 유방에게 諫한다.


"대왕께서는 將卒들의 사려깊지 못한 불평에 현혹되시어 큰일을 그릇쳐서는 아니 되옵니다. 巴蜀은 험난한 곳이기는 하나, 대왕께서 大事를 도모하시기에는 이 보다 좋은 곳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군사를 아무리 크게 키워도 항우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으니, 우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있습니까 ? 우리는 여기에서 힘을 길러 再起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項羽와 싸우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와 다름이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데, 대왕께서는 回軍令을 속히 거두어 주시옵소서."


유방은 분노를 삭이느라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言行이 경솔했음을 깨닫고 張良에게 말한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너무 울분에 차 어리석은 命을 내렸소. 回軍令을 철회할 것이니, 巴蜀으로 行軍을 계속하게 하오."

....


길은 갈수록 험악해졌다. 일행이 金牛嶺을 넘어갈 때, 여이기 노인이 유방과 장량에게 말한다.

"이 험한 고개를 <금우령>이라 하옵는데, 이렇게 불리게 된 데는, 깊은 유래가 있사옵니다."

張良이 반문한다.

"어떤 유래인지요?"

"선생께서 알고 싶으시다니 말씀드리겠습니다."


廣野君 여이기 노인은 다음과 같은 秘話를 들려준다.


"그 옛날, 秦나라의 惠王은 蜀을 정벌하려고 했으나, 蜀나라에는 다섯 명의 神力을 가진 力士가 있어,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秦惠王은 그들을 제거해 버릴 계획으로, 무쇠로 다섯 마리의 소<牛>를 만들어 놓고 "다섯 마리의 鐵牛 들은 날마다 다섯 말(斗)의 황금똥(黃金糞)을 싼다. 秦나라가 오늘날처럼 富强해진 것은 오로지 다섯 마리의 鐵牛들 덕분이다" 라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놓았다.


蜀王은 그 소문을 믿고, 秦나라의 鐵牛가 탐이 나 견딜 수 없게되자 鐵牛를 훔쳐오기 위해, 새로이 길을 내고 다섯 명의 力士들로 하여금 秦나라에 잠입하여 鐵牛를 훔쳐 오게 한다.

그러나 秦惠王은 鐵牛를 훔치러 온 다섯 명의 力士를 유인하여 이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이 새로 만들어 놓은 길을 이용하여 蜀나라로 쳐들어가, 마침내 蜀나라를 멸망 시킬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이기 노인은 이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이 고개 이름을 <金牛嶺>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건너오고 있는 이 잔도(棧道)가 바로 그때 만들어 놓은 다리입니다."

하고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張良은 그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棧道를 건넌다.

張良은 金牛嶺을 무사히 넘어오자, 말에서 내려 유방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한다.

"저는 대왕을 여기까지 모시고 왔으니, 이제는 작별을 고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유방은 너무나도 뜻밖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선생께서는 고국을 떠나신 이후,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나를 버리고 떠나시겠다니, 나는 어쩌라는 말씀입니까 ?"


張良은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저는 大王을 도와 드리기 위해 고국으로 가려는 것이오니 그 점,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옵니다."

"나를 도와 주시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시다니요 ? 고국에 가셔서 어떻게 나를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이해 할 수가 없군요."


"제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대왕을 위해 꼭 해야 할 큰 일이 세 가지가 있사옵니다."

"그 세 가지가 무엇 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소서."

張良이 다시 대답한다.


"첫째는, 項羽가 彭城에 도읍을 定하도록 하고, 장차 대왕께서 도읍으로 定하실 咸陽은 그대로 비워 두게 하는 일이옵고, 

둘째는, 천하의 제후들을 설득하여 項羽를 배반하고 大王께 歸依하도록 만들어 놓는 일이옵고, 셋째는, 대왕께서 漢나라를 일으켜 楚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꼭 필요한 大元帥가 될 인재를 널리 구하여, 대왕께 보내는 일이옵니다."


劉邦은 그 말에 크게 감동하여 張良의 손을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오 ! 선생께서 나를 위해 이처럼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 미처 몰랐소이다. 선생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이별이 아무리 아쉽더라도 내 어찌 선생을 붙잡을 수 있으오리까!"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세가지 큰 일을 반드시 이루어 놓은 後, 대왕께서 咸陽으로 오실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巴蜀에 도착하신 연후에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시옵소서.


파촉에 아무리 오래 계셔도 3년을 넘기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빠르면 二年 안에 咸陽에 入城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선생의 말씀대로 되기만 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 참겠소이까? 그런데 선생께서 대원수가 될 만한 인물을 천거해 보내 주시더라도,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알아볼 수가 있으오리까 ?"


그러자 張良이 대답한다.

"이제부터 簫何 丞相과 한 통의 증표를 작성하여 두 조각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다가, 大元帥가 될 만한 인재를 발견하면  그 사람에게 그 증표를 주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簫何 丞相이 그 인물을 천거하거든, 대왕께서는 저를 믿으시고 그 사람과 天下 大事를 격의없이 상의해 주시옵소서."


이윽고, 張良이 길을 떠나려고 하니

유방은 작별이 아쉬워 張良에게 다시 말한다.

"마지막으로 선생에게 부탁이 하나 있으니, 꼭 들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무슨 분부이신지, 어서 말씀해 주시옵소서. 대왕께서 바라시는 분부를 거행하겠나이다."

그러자 유방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선생께서도 아시다시피, 나의 부모님은 지금 항우의 손에 볼모로 잡혀 계시오. 선생께서 혹시 나의 부모님을 만나 뵈올 기회가 계시면 <나는 부모님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항우의 강압에 못 이겨 부득이 쫒겨갔지만, 언젠가 반드시 모시러 가겠다>고 말씀드려 주소서."


그렇게 말하는 유방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삼가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매우 죄송스러운 말씀이오나, 저는 갈 길이 바쁘오니 이만 작별을 고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유방은 전별연(餞別宴)과 전송(餞送)도 없이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도 섭섭하여,

"여러 대장들과 술이나 한 잔씩 나누고 떠나도록 하소서."

하고 말했다.


그러나 장량은 손을 내저으며,

"제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면 좋지 않은 소문이 널리 퍼질 것이니, 아무도 모르게 떠나겠습니다. 이제 簫何 大人만 잠깐 만나 보고 떠나겠사오니, 대왕께서는 허락해 주시옵소서."


"선생과 술 한잔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기가 너무도 섭섭하지만, 선생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붙잡지 아니하겠습니다."

"홍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나 오늘의 작별은 후일에 반드시 커다란 기쁨을 가져올 것이니, 과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옵소서."


"그러면 부디 편히 떠나시구려"

유방은 목이 메어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었다.

張良은 劉邦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簫何를 돌아 보며 말한다.


"내가 없는 동안 대인께서는 내 몫까지 忠誠을 다해 주소서. 우리 두 사람이 뜻을 모아 힘을 합치면 무슨 일인들 못 해 내리까? 후일 내가 천거한 사람이 증표를 가지고 오거든, 대왕께 稟하여 그 사람을 꼭 大元帥로 기용해 주소서."

하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제가 선생의 몫까지 다할 것이오니, 선생은 안심하고 떠나소서. 우리가 오늘 작별하기로 어디 영원한 작별이겠나이까?"

두 사람은 굳은 약속을 나눈 後, 드디어 작별하였다.


이리하여 張良은 누구의 전송도 받지 않은 채, 다만 從者 두 명만 데리고, 그토록 힘겹게 넘어온 金牛嶺을 다시 넘어갔다.


 

劉邦은 張良과 작별한 뒤, 다시 갈 길을 재촉하였다. 포중(褒中)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행이 5 里쯤 갔을때 後尾에서 별안간 난데 없는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뒷편에 무슨 일이 있기에 저렇게 소란스러우냐 ?"

劉邦이 측근에게 물었다.

그러자 바로 그때, 병사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유방에게 告한다.

 

"대왕 전하 ! 조금 전에 우리가 건너온 金牛嶺 고개에 큰 산불이 일어났사옵니다."

"금우령 고개에 산불이 났다고 ?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 ?"

"大王 殿下 ! 조금 전에 張良이 도망을 가면서, 자기를 잡으러 오지 못하도록 모든 棧道를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뭐라고 ? 張良이 도망을 가면서, 추격을 못 하게 모든 棧道에 불을 놓았다고 ?"

그제서야 뒤를 돌아다보니, 金牛嶺 일대에는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지 않은가?.

(張良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무슨 이유로 모든 잔도를 불태워 버린 것일까 ?)

 

劉邦이 그 이유를 몰라서 몹시 불안해 하고 있는데, 군사들은 저마다 아우성을 치면서,

"張良이 모든 잔도를 불태워 버렸으니, 우리는 장차 어느 길로 고향에 돌아간단 말인가 ?"

"누가 아니래?! 고향에 돌아갈 길이 없어져 버렸으니, 우리는 영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게 아닌가 ?! "

"張良이란 者가 이처럼 배은 망덕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 자를 우리 손으로 죽여. 버릴 걸.."

 

張良에 대한 군사들의 怨聲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잔도가 불타 없어지면 , 병사들이 심심 유곡을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완전히 끊겨 버리기 때문이었다.

유방도 그 점이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張良 선생이? 그럴 수가!..... 장량 선생조차도 나를 배신하고 떠났단 말인가.... ?"

유방이 원망스럽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簫何가 황급히 달려와 아뢴다.

"대왕 전하 ! 산불이 일어나 다리가 다 타버렸다고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張良 선생은 조금 前, 저와 작별하고 떠나실 때, 우리의 利로움을 위해, 棧道를 모조리 불태우고 가시겠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劉邦은 그 말을 듣고 더욱 놀랐다.

"우리가 언젠가는 그 다리를 이용하여 다시 咸陽으로 쳐들어가야 할 텐데, 왜 張良 선생이 그 다리를 모조리 태워버렸단 말이오 ?"

 

劉邦은 簫何의 말을 듣고도, 張良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리를 끊어 버리면 우리에게 어떤 利로운 점이 있다는 말이오 ?"

簫何가 다시 아뢴다.

 

"張良 선생은 棧道를 끊어버림으로써 생기는 네 가지의 利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우리가 우리 스스로 다리를 끊어 버렸다는 소문이 퍼지면, 항우는 우리가 回軍할 의사가 전혀 없는 줄로 알고 우리를 경계하지 않을 것이니, 그것이 利로운 점의 첫째이옵고,

 

둘째, 項羽는 章悍과 司馬欣, 동예 등을 三秦王으로 임명하여, 우리가 咸陽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항우가 경계하지 않음으로 三秦王들의 경계 태세도 자연히 소홀해질 것이니, 이것이 利로운 점의 둘째이옵고,

 

셋째, 우리 군사들은 돌아갈 길이 끊어졌기 때문에 도망가기를 단념하고, 上下가 일치 단결하여 대왕께 충성을다할 것이니, 그것이 이로운 점의 셋째이옵고,

 

넷째, 항우의 諸侯들은 우리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지면서 저희들끼리 세력 다툼이 일어날 것이니, 이것은 이로운 점의 넷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량 선생은 이와 같은 이유로 돌아가시는 길에 棧道를 계획적으로 태워버리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劉邦은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장량 선생의 그처럼 사려깊은 생각을 모르고, 일시나마 선생을 의심했으니,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구려. 그러면 우리는 안심하고 계속 나아갑시다."

 

이렇게 일행이 포중에 도착한 後, 유방은 吉日을 택하여 즉위식을 거행하고, 정식으로 漢王의 자리에 올랐다.

劉邦은 簫何를 宰相으로 삼고, 曺參, 번쾌, 주발, 관영 등을 원로 1等 功臣에 封하는 한편, 모든 장병들에게 논공 행상을 크게 베풀었다.

 

그리고 나서 軍, 官, 民에게 다음과 같은 훈시를 내렸다.

<민, 관, 군은 비록 하는 일과 신분이 다르나, 서로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점에서는 일체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軍과 官의 기본 사명은 백성들이 편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데 있으므로, 금후에는 모든 시책을 백성 위주로 펴나가도록 하겠노라.>

 

이와같은 훈시가 널리 알려지자, 백성들은 漢王을 부모처럼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반 년이 경과했을 때에는, 백성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인이 찾아갈 때까지 주워가는 일이 없게 되었고, 밤에도 대문을 잠그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집집마다 격양가(擊壤歌)를 높이 부르는 태평 성대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張良은 유방에게 작별을 고한 뒤에 파촉으로 통하는 棧道를 모조리 불살라 없애 버리고, 고국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鳳州를 지나 보계산(寶鷄山)을 넘어가고 있는데, 별안간 멀리서 말을 탄 ,일단의 군사들이 뿌연 흙 먼지를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장량과 마주치자,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묻는다.

"혹시, 선생은 장량 선생이 아니시옵니까 ?"

"그렇소만, 당신네들은 뉘시오 ?"

 

그러자 군사들은 공손히 머리를 굽히며 말한다.

"저희들은 項伯장군의 명을 받고, 선생을 도와 드리기 위해 오는 중입니다."

장량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를 도와주러 오다니? 나를 어떻게 도와주려고 왔다는 말이오 ?"

"항백 장군께서 말씀하시기를, 巴蜀으로 가는 길은 워낙 험하여 沛公과 張良 선생이 고생이 막심하실 것이니 저희더러 길을 인도해 드리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張良은 그 말을 듣고, 項佰의 우정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항백 장군의 우정이 고맙기 그지 없구려. 그러나 沛公께서는 이미 巴蜀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사정이 있어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오. 여러분들이 나를 위해 수고스럽게도 여기까지 와 주셨으니, 나도 여러분과 함께 돌아가 항백 장군을 한번 만나 뵙고 가기로 하겠소."

 

장량은 발길을 돌려, 항백을 먼저 만나 보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旅程을 바꿨다.

그리하여 그 길로 項佰을 찾아가니, 항백은 버선발로 달려나와 반갑게 맞아주며 말한다.

"선생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선생께서는 巴蜀으로 가시지 않고, 어인 일로 혼자 떨어지셨습니까 ?"

 

張良은 그동안의 경과를 소상히 말해 주고,

"고국을 떠난 지가 너무 오래 되어 이제는 그곳 사정을 살펴 보려고 가는 중입니다."

하고 말을 하니, 별안간 항백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지며,

 

"張良 선생이 떠나신 뒤에 이곳에서는 엄청난 비극이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장량이 크게 놀라며,

"엄청난 비극이라니오? 어떤 일이 있었기에 '엄청난 비극'이라고 말씀하시오 ?"

하고 되받아 묻는다.

 

項佰은 바로 대답을 못 하고,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선생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선생께서 너무도 비통해 하실 것같아, 그 얘기를 입에 담기조차 두렵습니다."

 

張良은 그럴수록 초조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십니까 ? 어떤 일이라도 상관없으니 무슨 비극이 있었는지 빨리 말해 주시오."

장량이 다그쳐 묻자, 항백은 마지못해 사실대로 대답한다.

 

"너무 놀라지 마시옵소서. 바로 어제 韓王께서 項王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張良은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韓王께서 項羽의 손에 살해되시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 韓나라에 계신 韓王께서 어떻게 項羽의 손에 살해 되셨다는 말씀이오 ?"

 

그러자 項佰은 韓王이 살해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項羽는 張良이 자기를 버리고 劉邦과 함께 巴蜀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大怒하여 바로 韓王을 호출하였다. 그리하여 韓王이 들어서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劉邦과 짜고 나를 배반하여 張良을 巴蜀으로 보냈으니 너는 나의 원수다 ! "라고 호통을 치며, 즉석에서 韓王을 한 칼에 쳐 죽여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韓王께서는 나 때문에 돌아가셨구려!"

張良은 목을 놓아 통곡하다가 項佰에게 다시 묻는다.

"그러면 대왕의 屍身은 어찌 되었소 ?"

 

"韓王의 屍身은 본국에서 國葬을 치루시도록 제가 어제 고국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張良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나는 바로 故國으로 돌아가야 하겠소이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내일 아침에 떠나시면 어떻겠습니까 ?"

"韓나라의 宰相까지 지낸 내가 大王을 위하여 殉節은 못 하나마, 어찌 한가로이 귀국을 지체할 수 있게소이까? 나는 이 길로 고국에 돌아가겠으나, 한 달 안으로 장군을 다시 찾아올 것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張良은 項佰과 작별하고 바로 고국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이윽고 고국에 돌아와 보니, 韓나라의 朝廷은 온통 슬픔에 잠겨 있었다.

 

張良은 대왕의 영전에 엎드려 울며, 떨리는 목소리로 맹세한다.

"대왕께서 臣이 不敏한 탓으로 폭군 항우의 손에 弑害 되셨으니, 項羽는 이제 臣에게는 不俱戴天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臣은 大王의 혼령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자, 천지 신명에 맹세코 이 원수를 반드시 갚고야말겠습니다."

 

張良의 맹세가 얼마나 처절했던지, 동석한 만조 백관들 모두가 함께 목놓아 울었다.

지금까지는 劉邦과 項羽의 대결이었지만 그러나 韓王 시해 사건으로, 項羽는 張良의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렸으니....

 

 

******   초한지로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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