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한시기행4 한시기행 5 李白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간쑤성 룽시현에 살았으며, 아버지는 서역(西域)의 호상이었다고 전한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한 그는 25세 때 촉나라를 떠나 양쯔강을 따라서 강남·산둥·산시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젊어서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그는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의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였다. 이백이 玄宗(현종: 중국 당나라 제6대 황제)의 부름을 받은 것이 42세의 나이였다. 불우한 생애를 보내었으나 25세에 청운의 푸른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천하를 떠돈지 무리 17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이 세월 동안 희망도 많.. 2025. 5. 6. 한시기행 4 (~~~희미한 음성이 들려 온다)“위대한 정치가요 군사가였던 강태공은 팔십 노인이 되어 周文王 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무엇을 그리 조급하게 굴것이 있느냐 .네 나이 겨우 마흔이다. 그가 위수에서 낚시로 세월을 낚았듯이 너도 때를 가다려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인 殷나라 이윤을 보라. 그는 노비의 신분이었으나 해와 달이 있는 곳으로 가는 꿈을 꾸고 결국 은나라 탕왕(湯王: 고대 중국의 은나라를 창건한 왕)에 발탁되어 최고의 재상이 되지 않았는가.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行路難(행로난)2 인생길 어려워라 閑來垂釣碧溪上(한래수조벽계상) 차라리 강태공(姜太公)처럼 세월이나 낚을까 忽復乘舟夢日邊(홀부승주몽일변) 이윤(伊尹)을 흉내내 꿈이라도 꾸어볼까 行路難 行路難(행로난 행로난) 인생길 어려워라 .. 2025. 5. 6. 한시기행 2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詩仙(시선)으로 추앙받는 李白이 황학루를 올랐다. 唐나라 玄宗 시절 천하를 주유(周遊)하던 시기였다. 이백이 경치를 감상하고는 시를 지으려다 앞에 걸린 최호의 시 황학루’를 보고는, ‘눈앞에 절경을 보고도 할 말이 없어지는 건, 최호의 시가 여기에 걸려있기 때문이다.’고 탄식 하며 붓을 던져 버리고, 화가 치밀어 우한(武漢)을 떠나 다시 유람에 나선 李白은 金陵(지금의 난징(南京))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봉황대에 올라본 李白은 황학루를 떠올리고는 그 시에 맞게 對句를 맞춰 시를 쓴다. 그 시가 바로 ‘금릉의 봉황대에 올라’라는 시이다. 그때 지은 작품이 登金陵鳳凰臺(등금릉봉황대) 봉황대 위에 봉황이 노닐다가 鳳去臺空江自流(봉거대공강자류) 봉황 떠나니 누대는 비어있고 강.. 2025. 4. 26. 한시기행1 - 이태백(李白) 이야기-황학루에서 붓을 던진 이백(李白)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중국에 시인이 많다지만 첫 번째를 꼽는다면 당(唐)나라 이백이 아닐까 싶다. 이백은 비상한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노력을 등한시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일화에 의하면,하루는 어린 이백이 공부하기가 싫어서 서당을 빠져 나와 놀다가 우연히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시냇가에 쪼그려 앉아 쇠공이를 숫돌에 갈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이 동한 이백은 노파에게 무엇을 하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바늘을 만들고 있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굵은 쇠공이가 언제 바늘이 되냐고 묻자 노파가 말했다.“얘야, 쇠공이의 굵은 모습만 보지 말거라. 매일매일 갈면 나중에는 바늘이 된단다.” 이 말에 깊이 감동한 이백은 공부할 때.. 2025. 4. 2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