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公이 항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漢王은 본진으로 돌아오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太公께서 오늘은 죽음을 免하셨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는가 ? 오늘도 태공을 구출해오지 못했으니 나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불효자식이다."
탄식하며 본진으로 돌아온 한왕은 곧 張良과 陣平을 부른다. "태공을 구해낼 무슨 방안이 없겠소이까 ? 두 분께서는 태공을 구출해 올 방안을 강구해 주소서."
그러자 장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太公을 구해 올 방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漢王은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여서 張良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子方 선생 ! 무슨 방법이 있는지 어서 말씀해 주소서." 하고 애원하듯 재촉하였다.
장량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楚軍은 지금 軍糧 사정이 매우 어려운데다, 군사들 또한 극도로 지쳐 있사옵니다. 이럴때, 우리가 유능한 辯客을 보내 태공을 귀환해 오는 조건으로 講和를 제의하면, 항우는 못 이기는척 수락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 말에 한왕은 한 가닥 기대를 갖고, "兩親을 무사히 모셔오는 조건이라면, 항우에게 속히 강화를 제의해 보십시다. 허면, 누구를 변객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소이까 ?"
장량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항우를 설득하려면 지혜와 언변이 능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진영에 그러한 인물이 없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그러자 末席에 앉아 있던 노인 하나가 손을 들며 장량을 힐난하듯 말한다. "항우에게 보낼 사람이 없으시다니, 선생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옵니까 ? 소생을 보내주시면 제가 항우를 설득하여 태공 내외분을 무사히 모셔 올 수있사오니 소생을 보내 주시옵소서."
말하는 곳으로 모든 사람들이 돌아보니, 그 사람은 낙양에 살던 侯公 이라는 노인이었다. 이 노인은 일찍이 漢王이 洛陽에 입성했을 때 '董公三老'라 불리는 세 사람의 노인들로부터 義帝의 國葬에 대하여 충고를 들은 일이 있던 노인들의 친구로, 그 노인들의 추천으로 지금까지 한왕을 꾸준히 추종하며 때때로 조언을 해 주던 노인이었다.
漢王은 侯公이 자원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張良은 망설이며 후공에게 말한다. "侯公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항우는 성질이 급하고 괴팍스러워, 자칫 말 한마디라도 잘못 했다가는 후공도 무사하기 어렵겠지만, 자칫 하다가는 태공 내외분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후공이 장량을 향하여, "大人처럼 항우를 겁내기만 하다가는 어느 누가 그를 만나 교섭을 하겠습니까? 지금처럼 걱정만 하며 시간만 보낸다면 어느 세월에 태공을 모셔올 수 있겠사 옵니까 ? 소생은 대왕의 큰 은혜를 받아 온 지가 오래되었사오나, 아직 이렇다 할 보답을 드리지 못 했습니다. 이번에 소생이 태공을 모셔와 그동안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옵소서."
漢王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장량에게, "후공의 결심이 매우 고마우니, 후공을 사신으로 보내기로 합시다. 내가 항우에게 보낼 강화요청의 서신을 쓸 테니, 선생께서는 별도로 후공과 항우와의 교섭에 임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상의해 주소서."
이리하야, 侯公은 漢王의 친필 서한을 가지고 項羽를 만나러 楚나라로 떠난다. 항우는 한왕의 사신이 찾아 왔다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는 은근히 반겼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漢軍과 정면으로 싸워 보았자 승산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項羽는 漢나라의 사신에게 자신의 위세를 보여 주기 위해 모든 장수들을 소집하여 자신의 좌우에 侍立시켜 놓은 후, 자신은 長劍을 차고 龍床에 높이 올라 앉아 후공을 맞이한다. 후공이 御殿으로 가까이 와 보니, 항우는 마치 성난 호랑이 처럼 눈을 치뜨고 후공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 후공은 항우 앞으로 조용히 다가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으아하하하...하하하" 하며 소리내어 웃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항우가 怒氣띤 얼굴로, "그대는 漢王의 使者가 아닌가 ? 심부름 온 자가 어찌하여 무엄하게 나를 보고 웃는 것인가 ? 나의 무서움을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
그러자 후공은 웃음을 거두며 대답한다. "폐하는 萬承天子( 만 대를 이어 내릴 하늘이 내린 아들)로서 武威를 천하에 떨치고 계시는 어른이시온데, 어느 누가 감히 폐하를 두려워 하지 않사오리까 ? 소생은 일개 儒生으로서, 재주에 있어서는 옛날의 管仲이나 樂毅같은 賢士에는 전혀 미치지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村老일 따름이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소생에게 위엄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폐하의 좌우에 기골이 장대한 武將들로 侍立시켜 놓으셨으니, 그 모습이 어찌 우습지 않사오리까 ? 소생이 웃음을 터뜨린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사옵니다."
듣고 보니 부끄러운 생각이 든 항우는, "음 ...그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구려." 그러면서 좌우에 시립해 있는 장수들을 향하여, "한왕의 사신을 단독으로 만날 것이니, 그대들은 모두 물러가 있도록 하라."고 命하며 , 자신도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풀어 내려 놓았다.
후공은 그제서야 큰절을 올리니 항우는 절을 받으며 묻는다. "漢王이 무슨 일로 그대를 보냈는지 용무를 말하오." 그러자 후공은 한왕의 친필 서한을 항우에게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한왕께서는 초한 양국이 전쟁을 종식하고 舊情을 돈독히 하시고자 소생을 보내셨습니다. 자세한 사연은 친필 서한에 적혀 있사 오니, 폐하께서 직접 읽어 보아 주시옵소서." "음, 한왕이 나에게 강화를 요청해 왔다는 말이구려 ?" 항우는 그자리에서 한왕의 서한을 펼쳐 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일찍이 "하늘이 帝王을 보낼 때에는 백성을 위함"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은 아직 天命을 받들지 못한채 지금까지 70여 회에 걸쳐 싸움을 계속해 오면서 무고한 군사와 백성을 수십만 명이나 죽고 다치게 하였으니, 이 어찌 하늘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 수 있사오리까 ? 이에 본인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後公을 보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강화를 맺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鴻溝를 경계로, 西쪽은 漢나라의 영토로 하고, 東쪽은 楚나라의 영토로 삼아, 제각기 독립 국가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군사들을 물림으로써 兄弟의 정리를 옛날처럼 되돌리고자 제의하는 바이옵니다. 그렇게 한다면 상호간에 부귀영화도 대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이고, 백성들도 태평 성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오리까 ? 이에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제의하오니, 폐하께서는 숙고하시어 강화에 흔쾌히 응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항우는 유방의 편지를 읽어 보고 속으로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는 軍糧이 부족하여 어차피 싸울 형편이 못 된다. 싸워서 승리할 자신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못 이기는 척하고 상대방의 요구대로 강화 조약을 맺고, 彭城으로 돌아가 모처럼 그리운 그녀(虞美人)와 더불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
항우는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후공을 가까이 불러 말한다. "나는 한왕과 끝까지 싸워서 자웅을 결할 생각이었소. 그러나 지금 이 편지를 읽어 보니, 강화를 맺는 것이 좋을 것 같구려. 그러면 나도 강화에 응하기로 하고 내일 사신을 별도로 보내도록 할 것이니, 貴公은 먼저 돌아가 漢王에게 나의 뜻을 전하도록 하시오." 후공이 한왕에게 돌아와 항우와의 면담 결과를 상세하게 보고하니, 한왕은 크게 기뻐한다.
그 다음날, 항우는 약속대로 한왕에게 사신을 보내 왔다. 항우의 사신은 한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품한다. "項王 陛下께서는 강화 조약을 정식으로 맺기 위해, 한왕 전하와 직접 만나시자고 하시옵니다." 강화 조약을 맺기 위해서라면 한왕 자신이 항우를 직적 만나야 할 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한왕은 항우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화 조약을 정식으로 체결하려면 물론 우리 두 사람이 직접 만나야 할 것이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직접 만나는 데는 두 가지의 先決條件이 있소. 그것만은 반드시 지켜 주어야 하겠소." "그 선결 조건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한왕이 대답한다. "첫째는, 우리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에는 武裝兵이 단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오. 강화 조약을 맺고 형제의 의를 돈독히 하는 자리에 무장병이 있다는 것은 서로간에 긴장감을 높이게 하는 게 아니겠소 ? " 항우의 사신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돌아가거든 폐하께 그 말씀을 꼭 여쭙겠습니다. 또 하나의 선결 조건은 어떤 것이옵니까 ?"
"또 하나의 조건이란, 우리 두 사람이 만나는 이 기회에 태공 내외분과 나의 內者(아내)를 모두 나에게 돌려보내주십사 하는 것이오. 和親을 도모하면서 나의 양친과 내자를 억류해 두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니, 이 문제도 꼭 품고해 주시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항우의 사신은 대답에 난색을 표하며, "그 문제 역시 소생으로서는 지당하신 말씀이신 줄로 아뢰옵니다. 하오나 소생이 직접 품고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오니, 대왕께서 별도의 사신을 보내 주시면 고맙겠나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알겠소이다. 귀공이 직접 여쭙기 어렵다면, 후공을 귀공과 함께 보내어 직접 청원하도록 하겠소이다."
다음날 후공이 항우의 사신과 함께 楚陣을 다시 찾아가니 항우가 묻는다. "貴公은 무슨 일로 또다시 찾아 오셨소 ?" 후공이, "한왕은 폐하께옵서 강화 조약을 응낙해 주신 데 크게 반기고 계시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내일 만나실 때에, 武장병을 일체 배치하지 말 것과, 그 자리에서 태공 일가족을 모두 귀환케 해 주심으로써 형제의 정리를 더욱 돈독히 하시자는 한왕의 분부를 말씀드리고자 찾아 왔사옵니다."
"뭐요? 太公과 그 일가족을 모두 돌려 달라고 ..?" 항우는 뜻밖의 조건에 적잖케 당황하였다. 후공이 다시 말한다. "두 분께서 강화를 맺으시고 태공을 돌려보내 주시면, 세상 사람들은 폐하의 성덕을 크게 찬양할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그 점을 감안하시어 이 기회에 태공과 그 일가족을 모두 귀환케 해주시도록 하시옵소서."
항우는 강화 조약을 맺는 것만은 不敢請 固所願이었다. 그러나 태공을 돌려 줄 생각은 전혀 생각한바가 없었다. 漢王이 장차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그의 부모를 볼모로 잡아두는 것이 자신에게는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대답을 주저하고 있으니, 후공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말한다.
"강화를 맺고 兄弟의 義를 새롭게 하는 이 마당에, 만약 폐하께서 태공 일가족을 돌려보내 주시지 않으신다면, 세상사람들이 폐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옵니까 ? 그런 것은 한왕께서도 같은 생각이시어 태공 내외분과 왕후를 돌려받지 못하신다면 강화 조약을 맺는 의미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옵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항우는 싫지만 태공을 돌려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잠시 생각하다가 항우가 선뜻 말한다. "좋소이다. 그러면 강화 조약을 맺는 자리에서 太公 일가족을 모두 돌려보내드리기로 하겠소." 侯公은 그 말을 듣고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한 번 따져 묻는다. "고맙사옵니다. 그러면 소생은 폐하의 말씀을 믿고 곧 돌아가 漢王께 사실대로 稟告하겠습니다. 만약 폐하의 말씀에 추호라도 어긋남이 있게 되면, 소생은 목숨이 살아 남기 어려우니 부디 그런 일은 없으시도록 거듭 바라옵니다."
** 楚漢誌 72
※ 太公의 구출 2
그러자 항우는 즉각 힐난하듯, "丈夫一言은 重千金' 이라 하였소. 貴公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게요 ? 아니 내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소 ? 자고로 '一口二言은 二父之子'라 하였소. 그런 걱정일랑 말고 바로 돌아가 漢王에게 내 뜻을 그대로 傳하도록 하시오."
侯公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간 뒤, 季布와 鐘離昧가 항우에게 諫한다. "폐하! 만약 漢王과 강화 조약을 맺으시더라도 太公만은 돌려 주지 마셔야 하옵니다. 태공을 돌려주고나서, 漢王이 강화 조약을 파기하고 공격해 온다면, 저들을 막을 방어막을 잃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저으며, "모르는 소리는 그만하오. 강화 조약을 맺은 뒤에도 太公을 그냥 잡아 두고 있으면 諸侯들이 나를 비겁한 者라고 비방할 게 아니오 ? 태공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강화 조약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張良과 친분이 두터운 項佰이 이때다 싶어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폐하의 말씀은 지당하시옵니다. 태공이 비록 우리에게 억류되어 있었다고는 하나, 요 며칠 漢軍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태공 일가족에 대한 폐하의 대접이 극진하셨으니, 이제 그들을 곱게 보내 준다면, 한왕은 그동안 태공에 대한 폐하의 보살핌을 생각해서라도 감히 다른 생각을 못할 것이옵니다."
항우는 項佰의 말을 옳게 여겨, 다음날 태공 내외와 呂王后를 수레에 태워 국경지대로 설정한 鴻溝를 향해 떠났다. 이리하여 홍구에 도착한 항우는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유방과 會見場에서 오랜만에 서로 반가운 얼굴로 만났다.
두 사람은 咸陽에서 헤어진 이후, 楚漢 兩國으로 나뉘어 싸움을 계속한지 4 년 만에 처음으로 對面하는 감격적인 상봉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 온 두 사람이었지만, 강화 조약을 맺으려는 이 마당에서는 서로 옛 情을 되새기며 감격적인 포옹도 나누었다.
이윽고, 강화 조약에 대한 서명이 끝나자, 항우는 조약 문서 한 통을 유방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우리가 이처럼 강화 조약을 맺었으니, 이제부터는 兄弟之國으로서 국경선을 존중하며, 피차간에 싸우지 말기로 합시다. 나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곧 彭城으로 돌아갈 것인데, 그 전에 太公 일가족을 모두 돌려보내드리기로 하겠소."
한왕은 그 말을 듣고 기쁨과 감격에 겨워 머리를 숙이며, "대왕께서 나의 일가족을 모두 돌려 주시니, 이처럼 고맙고 기쁜일이 없소이다." 이리하여 태공 일가족은 인질로 붙잡힌지 3년 만에 아들인 漢王 곁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항우는 곧 군사를 거두어 彭城으로 돌아갔다.
한편, 漢王은 기쁨을 감추지 않으며 태공 일행을 모시고 本陣으로 돌아오니 張良, 陣平 等이 멀리까지 영접하러 나와 있었다. 한왕은 희색이 만면하여 장량을 보며 말한다. "이번에 태공 내외분을 무사히 모시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덕분입니다. 선생의 출중하신 계략이 아니었던들 태공 께서 어찌 이처럼 무사히 돌아 오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사실이었다. 장량이 항우의 곤궁함과 유방의 절실함을 상쇄시키는 楚- 漢간의 강화 조약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태공은 결코 항우로부터 벗어나기가 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왕은 장량의 공을 크게 치하 하고 나서, "項王은 강화 조약을 체결하자마자 彭城으로 돌아갔으니, 우리도 속히 철군하여 함양으로 돌아가기로 합시다."
張良은 그 말을 듣자, 고개를 저으며, "우리가 咸陽으로 철군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漢王이 깜짝 놀라며 반문한다. "철군이 안된다니 그것은 무슨 말씀이오이까 ?" "폐하! 깊이 생각해 보시옵소서. 우리 군사들이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결사적으로 싸워 온 것은, 오로지 전쟁에서 승리하여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불타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楚軍과의 강화 조약으로, 고향을 지척에 두고서도 고향에 가보지도 못하고 함양으로 철수해 버린다면 어떤 병사가 우리 진영에 계속 남아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 그래서 많은 군사들이 도망이라도 친다면, 대왕께서는 어떻게 나라를 운영해 나가실 것이옵니까 ?"
漢王은 張良의 말을 듣고 크게 걱정스러워졌다. 고향에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西域에 그냥 눌러 앉게되면 많은 군사들이 도망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子房 선생 ! 그러면 이 문제를 어찌했으면 좋겠소이까 ?" 장량이 냉정하게 답한다.
"우리가 항우에게 강화 조약을 요청한 것은 太公을 구출해 오기 위한 일시적인 속임수에 불과한 것 뿐이옵니다. 이제 우리가 태공 일행을 모셔오는 데 성공하였으므로 이제 우리의 成敗 여부는 오로지 대왕의 결단에 달려 있사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순진하게 강화 조약을 액면 그대로 이행하여 천하를 漢-楚로 兩分 한다면, 변방의 諸侯들은 누구를 임금으로 섬기고, 누구의 신하라고 말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
자고로 '天無二日'이라하여 하늘에는 해가 둘이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는 '民無二王'이라하여 섬기는 임금이 둘일 수 없다'는 것이옵니다. 지금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능력은 십중 팔구 대왕께서 가지고 계시옵니다. 그러나 楚覇王이 彭城으로 돌아가게 되면 분명히 천하 통일의 野望을 버리지 못하고 절치부심, 國富와 養兵은 자명한 일이온데, 이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훗날의 호랑이를 키워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르옵니까 ?"
張良의 논리 정연한 설득을 듣자 한왕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이미 楚覇王과 강화 조약을 맺었는데, 조약의 먹물도 마르기 전에 약속을 파기한다면, 이번에는 만 천하가 나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게 아니오 ?" 그러자 장량이 바로 反論을 제기한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시옵니다. 작은 信義에 구애되어 大義를 저버리시는 것은 明智者가 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그 옛날 湯武(湯王과 武王)는 폭군이었던 桀王과 君臣之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大義를 위하여 桀王을 제거하고 새나라를 창업한 일이 있사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폭군 중의 폭군인 楚覇王을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는 大義가 바로 거기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살피셔야 하는 것이옵니다."
장량이 거기까지 말을 했을 때에 陣平, 陸賈, 수하 等 智囊(謨士, 꾀주머니,) 들이 한결같이 머리를 조아리며 이구 동성으로, "子房 선생의 말씀은 金科 玉條같이 지당한 말씀이옵니다. 小臣들이 지금까지 대왕을 위해 東奔 西走해 온 것은 오로지 천하를 통일함으로써 만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려는 폐하의 성업에 따르고자 하는데 있었던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그 점을 거듭 해량하시와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장량을 비롯한 모든 重臣들이 하나같이 한왕의 결심을 촉구하자 한왕은 최후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의 생각이 모두 그렇다면, 나는 楚覇王과의 약조를 파기하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하겠소이다." 이리하여 漢나라 군사들은 그날부터 彭城 攻略 준비를 다시 서두르기 시작한다. (과연 張良! 張良이 없었다면 우유부단한 劉邦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을까? 東西古今을 통하여 棟梁之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 楚漢誌 73
※ 講和 條約의 파기
項羽는 鴻溝에서 講和 조약을 맺고 彭城으로 돌아오자, 오랜만에 장병들에게 휴가령을 내렸다. "싸우느라고 오랫동안 고생이 많았으니, 이제부터 三교대로 한달씩 고향에 다녀오도록 하여라." 평소에는 몰인정한 항우가 이같은 선심을 베푼 것은, 이번에 체결한 漢王과의 강화 조약으로 楚漢 양국 間에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항우 자신도 그날부터는 軍務를 사실상 전폐하고 虞美人과 더불어 환락에 빠져 세상 돌아가는 일을 멀리하고 있었다.
英雄 好色이라고 했던가 ? 항우는 무술도 뛰어났지만 정력 또한 출중하여 彭城으로 돌아온 그날부터는 오직 虞美人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大夫 周蘭이 上疎文을 올렸다. 상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고로 聖帝明王은 安不忘危 治不忘亂(안불망위 치안불란)이라 하여, '나라가 편안할 때 위험한 때를 잊지 말고, 세상이 잘 돌아갈 때 혼란스러운 때를 잊지 않는다'고 하였사옵니다. 지금은 비록 戰時는 아니오나,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시국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더구나 漢王 劉邦이 우리와 강화 조약을 맺었다고는 하오나, 그를 믿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유방의 주변에는 권모 술수에 능란한 謨士들이 허다한 관계로 언제 무슨 일을 꾀할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마땅히 군사를 晝夜로 훈련하시어 비상시에 대비하셔야 하는데도, 근래에는 오로지 安逸에만 취해 계시니, 이 어찌 된 일이옵니까 ? 일찍이 폐하께서 한번 호령하시면, 공격해서 取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싸워서 이기지 못한 일이 없어, 폐하의 위엄을 만 천하에 떨쳐 왔사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안일만 추구하고 계신다면 나라의 장래가 매우 위태로울 수 있사옵니다. 소문에 의하면, 劉邦의 신하들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정벌할 모의를 일삼고 있다 고 하는데, 만약 그들이 불시에 쳐들어 오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저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옵니까 ? 폐하께서는 小臣의 諫言을 저버리지 마시고, 지금부터라도 비상시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도록 하시옵소서."
항우는 周蘭의 상소문을 읽어 보고 한동안 생각하다가 주란을 대전으로 직접 불렀다. "卿의 상소문을 잘 읽어 보았소. 경의 憂國 之心에는 감복해 마지 않는 바이오. 그러나 나는 劉邦과의 강화 조약을 맺었는데, 유방이 설마 變心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 점은 안심해도 좋을 것이니, 卿은 너무 걱정하지 말기 바라오." 항우는 유방과의 강화 조약을 이처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주란은 항우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 "폐하 ! 講和 條約이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휴지 조각과 다름없는 것이옵니다. 劉邦은 오직 太公을 돌려 받기 위해 강화조약을 맺었을지 모르는 데, 어떻게 그런 조약만 믿고 안심하고 계시옵니까 ? 더구나 張良이라는 者는 그런 계교를 부리는데 있어 귀신 같은 재주꾼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하옵니다. 그러하오니 장병들에 내린 특별 휴가령을 당장 취소하시고, 즉시 三軍을 철저히 훈련시키도록 하시옵소서."
** 글 중간에 붙여.
范增은 갔지만 周蘭 같은 신하가 있음으로써 그나마 항우는 다행이라할 수있다.
東西古今의 역사에 있어서 평화조약(강화조약)이 8천 여 건 체결되었으나 그 조약은 평균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쟁이 재발되었다. 그것은 강화조약이나 평화조약이 반드시 평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名著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에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세르벨리에(Victor Cherbulliez)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여, BC 150년 부터 AD 1860 년 까지의 세계사에서 '영구적 평화보장'을 전제로한 강화조약이 약 8천 여 件이나 체결되었으나 그 조약의 효력의 지속은 평균 2년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강화조약이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전쟁의 재발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근 현대사에 들어서도 1919년의 '베르사이유 강화조약'(Treaty of Versailles)은 다시는 지구상에서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대표적인 평화협정의 하나였으나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이 배상을 거부하면서 파기되고 만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이전 1939년의 英 ㆍ獨 불가침조약과 同年의 獨ㆍ蘇 불가침조약도 마찬가지다. 또한 1973년의 베트남 평화협정을 보자. 키신저가 공들여 체결된 평화협정으로 미군이 철수하였으나 베트콩과 연합한 당시의 월맹이 남침을 감행, 월남을 접수함으로써 43년 前, 월남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공산주의 베트남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때, 수십만의 보트피플이 바다를 떠돌다가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피하지 못하고 체포되어 재교육 교화소에 보내진 600여 만 명의 월남인 들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傳해진다.
이제 다른 나라는 차치하고 우리나라를 보자. 판문점 선언 이후, 친북좌파 세력은 하루빨리 평화협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화협정의 이면에는 항상,
1. 주한미군 철수 2.연방제 통일 3. 국가보안법 폐지 등, 북한이 주장하는 조항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그런데, 북한은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해버릴 수있는 核 보유를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憲法에 명시해 놓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역사는 말한다. 힘(國力과 武力)이 뒷받침 되지 않는 평화란 한갖 허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불안해지 자, 즉석에서 鐘離昧를 불러 군령을 내린다. "비록 우리가 劉邦과 강화 조약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언제 또다시 군사를 몰고 올지 모르니, 장군은 오늘부터 三軍을 맹 훈련시키도록 하오." 이리하여 종리매는 유방의 침공에 대비하여, 전군에 대하여 맹 훈련을 시키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보름쯤 지났을 무렵, 하루는 영양성 방면에서 飛馬가 급히 달려오더니, "폐하 ! 유방이 강화 조약을 무시하고, 우리와 일전을 시도하려고 固陵에 대군을 집결시키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강화 조약은 劉邦이 太公 일가족을 돌려 받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항우는 그 보고를 받고 펄쩍 뛰었다. "뭐라 ? 유방이 나를 그렇게 속였단 말이냐 ? 그렇다면 그 者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모든 장수들을 긴급히 소집하라." 항우는 장수들을 긴급히 소집해 놓고 불같은 명령을 내린다. "유방이 강화 조약을 무시하고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 하니, 모든 장수들은 戰時體制로 돌입하여 敵이 전투 준비를 하기 전에 우리가 선제 공격으로 적을 격멸시키도록 하자."
그러자 季布가 앞으로 나서며, "폐하 ! 間者(스파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100% 믿을 바가 못 되오니, 신중을 기하셔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만일 간자들의 잘못된 정보를 믿고 우리가 먼저 군사 행동을 하게 되면 강화 조약을 파기한 죄를 우리가 모두 뒤집어쓰게 될 것이옵니다. 하오니 우리는 적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 태세를 견고히 갖추고 그들이 먼저 쳐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선제공격을 해오면, 그때에는 변방의 제후들에게 유방의 약속 파기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지원도 끌어내고, 동시에 우리의 대군을 총출동하여 저들을 격파해버리면 우리의 대의 명분이 분명해질 것이 아니옵니까 ?"
항우는 계포의 간언을 옳게여겨, "장군의 말에 일리가 있소. 그러면 장군은 漢나라와의 접경지대에 방어 태세를 견고히 하고 정탐꾼 들을 다수 침투시켜, 적의 동태를 상세하게 파악하도록 하시오."
한편, 한왕은 장량의 권고에 따라 초나라를 치려고 하면서도 자신이 항우와 직접 맺은 강화 조약을 파기하는 것이 매우 꺼림칙하였다. 그리하여 장량과 진평을 불러 다시 한번 상의한다. "楚나라를 정벌하려면 韓信, 英布, 彭越 등 외부로부터의 병력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지금 그들은 楚나라와의 강화 조약이 체결된 것을 알고 제각기 任地에서 방심하고 있을 것이니, 이제 그들을 부른다고 바로 와 줄지는 매우 의심스럽구려. 장량 선생은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
장량이 머리를 숙이며, "그 문제에 대해서는 臣이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사옵니다. 대왕께서는 우선 항우에게 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주시옵소서. 그러면 항우는 크게 怒하여, 스스로 먼저 군사를 일으켜 오게 될 것이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 "알겠소이다. 전쟁의 책임을 항우에게 뒤집어 씌우자는 말씀이구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우의 공격에 대한 방책은 세우고 있어야 하옵니다. "그 대책은 어떻게 세우는 것이 좋겠소이까 ?" "쳐들어 오는 항우와 맞서 싸우려면 韓信, 英布, 彭越 등의 합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오니 항우에게 사신을 보내는 싯점에 때를 같이하여 한신과 팽월, 영포에게도 대왕의 친서를 보내셔야 하옵니다."
"어떤 내용의 친서를 보내는게 좋겠소? " "세 장군에게 친서를 보내시되, 그 내용은 < 鴻溝에서 楚覇王과 강화 조약을 맺은 것은 태공을 구출해내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에 불과함>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알려 주는 동시에, 고 특별 詔書를 내리시옵소서. 그러면 모든 장수들은 천하통일의 최후의 聖戰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늦을까 저어하여 앞다투어 달려오게 될 것이옵니다."
** 楚漢誌 74
※ 講和條約의 파기
漢王은 張良의 빼어난 계략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선생의 지략이야말로 驚天動地할 수밖에 없는 그것입니다. 그러면 항우에게 보낼 사신은 누가 좋겠소이까?" "大夫 陸賈가 누구보다도 적임자이옵니다."
그러면서 장량은 육가를 어전으로 불러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면서, "대왕의 친서를 항우에게 전달할 적임자는 대부밖에 없으니, 수고스럽지만 楚나라에 다녀와 주셔야겠소." 하고 간곡히 부탁한다.
陸賈가 즉석에서 쾌락한다. "염려마시옵소서. 대왕을 위하는 일이라면 이몸, 물불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왕은 바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것은 안 될 말씀이오."
장량은 한왕의 반대에 부딪치자 적지않게 놀란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육대부를 항우에게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 한왕은 즉석에서 대답한다. "선생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항우는 성미가 급하고 거친 사람이오. 따라서 는 서한을 보기만 하면, 그자리에서 내가 보낸 사신을 죽이려할 것이 분명한데, 그런 변을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陸 大夫를 어떻게 死地에 보낼 수 있겠소이까 ?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陸 大夫는 보내지 못하겠 소이다."
그 말을 들은 陸賈는 너무도 감격하여, 한왕에게 큰절을 올리며 아뢴다. "대왕 전하의 하늘같은 은총에는 오직 感淚 (감루 : 감격의 눈물)가 있을 뿐이옵니다. 그러나 臣은 항우에게 죽임을 당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사옵니다. 그 점은 조금도 염려 마시옵소서. 항우는 우직하기만 할 뿐 아무 지혜도 없는 인간입니다. 臣이 항우를 교묘하게 구워 삶아, 기필코 楚軍이 먼저 도발해 오도록 만들고야 말겠사옵니다."
장량이 다시 아뢴다. "지금 본인이 말씀하셨다시피, 陸 大夫는 결코 항우의 손에 죽을 사람은 아니오니 대왕께서는 안심하시고 보내 주시옵소서. 육 대부가 아니면, 이처럼 중대한 사명을 완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사옵니다." 한왕은 그제서야 육가를 보내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육가가 彭城으로 항우를 찾아가니, 항우는 육가를 만나자마자 따져 묻는다. "그대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는가 ?" 육가가 대답한다. "한왕이 지난 번에 폐하와 강화 조약을 맺은 것은 태공을 돌려받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옵니다. 그 증거로써 한왕은 지금 강화 조약을 파기하고, 폐하를 치려고 고릉에 대군을 집결중에 있사옵니다. 중신들이 아무리 만류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기어코 전쟁을 일으킬 모양이니, 그야말로 폐하에 대한 배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분노하며 말한다. "유방이 고릉에 대군을 집결중이라는 정보를 나도 듣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리 楚나라를 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단 말인가 ?" "모두가 사실이옵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옵니다. 한왕은 폐하께 보내는 선전 포고문을 소생에게 가지고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심부름을 오기는 했사옵니다마는, 한왕이야말로 폐하의 위력을 너무도 모르는 사람 같사옵니다." "뭐라 ? 유방이 나에게 선전 포고문을 보내 왔다고 ? "
陸賈는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그렇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도 유만 부동이지, 한왕 따위가 폐하의 막강한 위력을 어떻게 당해 내겠 사옵니까 ? 천하를 양분해 가졌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지, 무엇이 부족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지, 소생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사옵니다."
육가가 항우의 비위를 맞춰가며 항우가 하고 싶은 말을 선제적으로 듣기 좋게 씨부려대는 바람에, 고지식한 항우는 육가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육가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유방이 나에게 보냈다는 선전 포고문을 이리 가져와보시게."
육가는 송구스러운 자세로 한왕의 서한을 받들어 내주며, "소생은 죽지 못해 이것을 가지고 오기는 했습니다마는 폐하께 실로 죄송스럽기 짝이 없사옵니다." 항우가 한왕의 서한을 읽어 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동안 귀왕은 나의 양친과 왕후를 오랫동안 인질로 잡아 두었을 뿐만 아니라, 한때는 나의 가족을 도마위에 올려 놓고 흥정을 했던 일도 있었으니, 이로 인하여 나는 진실로 恨이 골수에 사무쳤던 것이오. 그리하여 나는 일찍이 군사를 일으켜 貴國을 정벌할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되면 나의 가족들이 피해를 당할 것이 염려되어 부득이 가짜 강화 조약을 맺고 가족들을 구출해낸 것이오. 부모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식된 도리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귀왕은 어리석게도 나의 계교에 넘어간 것이오.
이제 나의 가족을 무사히 구출해 왔으니 내 어찌 그동안 골수에 맺힌 한을 풀지 않을 수 있겠소 ? 하여 나는 이제 대군을 일으켜, 고릉에서 귀왕과 자웅을 결하고자 하는 바이니, 귀왕은 조금도 나를 두려워 말고 싸우러 나오시오. 하늘에 두 해가 있을 수 없듯, 천하에는 두 왕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귀왕과 나는 이번 결전에서 흥망의 최후를 가리기로 합시다.
항우는 편지를 읽어보고 憤氣撐天(분기탱천)하여 길길이 뛰며, 즉석에서 한왕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유방 이놈이 나를 속여 지 애비 에미를 돌려 받더니, 나를 이렇게 모욕할 수가 있느냐 ! 내 일찍이 회계(會稽)에서 군사를 일으켜 3 백여 戰을 싸워 오는 동안, 가는 곳마다 連戰連勝하여 변방 제후들이 하나같이 내게 무릎을 꿇지 않는 자가 없었도다. 유방을 漢王으로 封해 준 사람도 바로 내가 아니었더냐!? 그런데 그놈이 이렇게 배은 망덕할 수가 있단 말이냐 !? "
항우는 너무도 격분했는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 앞에 부복해 있는 陸賈에게 호통 치듯 말한다. "그대는 당장 돌아가 유방에게 내 말을 전하라 ! 이번만은 유방의 목을 내가 직접 잘라줄 것이니, 지금부터 목을 깨끗이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지체 말고 돌아가 내 말을 분명히 전하도록하오 ! "
항우가 무섭게 호통을 쳤으나, 육가는 자리에서 일어서기를 주저하면서 걱정스럽게 반문한다. "폐하 ! 소생은 폐하의 분부대로 전하기는 하겠습니다마는, 어쩐지 매우 불안하옵니다." 성미가 급한 항우는 또다시 화를 내며 육가에게 소리친다. "빨리 돌아가 유방에게 나의 말을 전하지 않고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소 ! "
陸賈는 이왕이면 楚軍의 군사 기밀까지 알아 가지고 돌아가고 싶어 짐짓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싸움은 최후의 결전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옵니다. 한왕의 군사는 여기저기서 주워 모으면 20 만이 넘을 것 같은데, 폐하께서는 그래도 이겨내실 수 있을지, 소생은 은근히 걱정스럽사옵니다."
한왕의 군사들은 모두 합하면 50만이 되지만, 육가는 일부러 20만으로 줄여 말했던 것이다. 항우는 陸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크게 웃는다. "으하하하, 고작 20 만 밖에 안 되는 병력을 가지고 나를 치겠다고? 우리 군사는 30만이 넘소. 그러니 유방이 어찌 나를 당해낼 수가 있겠소 ? 그대는 아무 걱정 말고 어서 돌아가 유방에게 나의 말을 전하기나 하시오."
항우는 무심결에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을 서슴없이 말해버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소생은 폐하의 말씀만 傳하고 즉시 달려오겠습니다." 陸賈는 그 말을 남기고 총총히 돌아왔다.
陸賈가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자, 한왕은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하였다. "대부는 무슨 재주로 무사히 돌아오셨소 ?" 육가는 그간의 경과를 한왕에게 자세히 보고하고 나서, "항우는 불원간 30 만의 군사를 휘몰아 올 것이 확실하오니 대왕께서는 대책을 시급히 강구하시옵소서." 하고 말했다.
한왕은 크게 걱정하며 장량에게 물었다. "항우가 30만 군사로써 공격을 해 온다면 이를 어떻게 막아 내는 것이 좋겠소 ?" 장량은 한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더니, "지금 곧 軍令을 내리시어, 경계 태세를 강화 하시고, 韓信, 英布, 彭越 등에게도 긴급 소집 명령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항우가 여기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5~6일은 걸릴 것이니 그안에 한신, 영포, 팽월 장군 등이 이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한왕은 장량의 말을 듣고 한신, 영포, 팽월에게 急使를 파견하는 동시에 王陵, 周勃, 樊噲, 辛奇, 灌瓔, 盧綰, 주창, 근흠, 고기, 呂馬通 등을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적의 내습에 대비하였다. 과연 장량의 예상대로 항우는 엿새 후에 30만 군사를 거느리고 固陵城 30 里 밖에 도착하여 漢王에게 정식으로 싸움을 걸어 왔다.
그런데, 5~6일이면 반드시 오리라 믿고 있었던 韓信, 英布, 彭越 等으로부터는 그때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렇게되고 보니, 漢王은 크게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 楚漢誌 75
※ 張良의 계산 착오
항우는 워낙 성격이 급한지라, 30만 대군을 휘몰아 오기 무섭게 유방의 근거지인 固陵城에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려고 하였다. (만약 그렇게만 했다면 漢軍은 대패하고, 漢王 劉邦도 자신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뻔 하였다.) 그러나 하늘은 유방에게 호의적이었으니, 項佰이 항우의 전격 작전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폐하 ! 우리 군사들은 쉴틈 없이 먼길을 달려오느라고 몹시 피로해 있사옵니다. 더구나 敵情을 잘 모르면서 무작정 공격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오니, 며칠 간 여유를 갖고 적정을 정확히 살핀 뒤, 총공격을 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戰國時代의 大 戰略家이자 孫子兵法을 펴낸 孫武도 "知彼知己는 百戰不殆"라 하였사오니 그렇게 해야만 적을 일거에 격멸시킬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項佰이 전격 기습작전에 반대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항백은 일찍부터 장량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친구 사이인데다가, 漢王 劉邦과는 妻남, 妹夫之間이었기 때문에 漢王을 궁지로 몰아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叔姪간인 항우를 배반하고 한왕에게 돌아설 생각도 없었다. 다만 한왕의 德망과 張良의 뛰어난 지략을 평소부터 흠모해 왔기 때문에, 마음만은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항백은 楚漢 간의 강화 조약을 누구보다도 기뻐하였으나,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친구인 장량과 처남인 유방이 절대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시간이라도 벌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처럼 項佰이 전격 작전을 반대하고 나오자, 항우는 항백의 의견을 받아들여 먼저 敵情을 정확하게 살펴보기로 하였다.
한편, 漢나라 군사들은 楚軍이 30 리 밖에 陣을 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왕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韓信, 英布, 彭越 중 단 한 사람도 달려와 주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인 공격을 취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왕이 詔書만 보내면 이라고 호언했던 장량의 계산 착오였던 것이다. (張良도 人間인지라 그러한 실수가 오히려 그를 다시 하나의 인간으로 보게한다.) 이렇게되자 한왕은 너무도 불안하여 장량에게 힐문하듯 말한다. "나는 선생의 말씀만 믿고 항우에게 선전 포고문을 보냈는데, 한신, 영포, 팽월 등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인데, 항우가 대군을 휘몰아 쳐들어왔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 "
장량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한신, 영포, 팽월 등이 대왕의 조서를 받아 보면 즉시 달려오리라고 믿었던 것은 臣의 커다란 계산 착오였습니다. 하오나 그들이 오지 않으면 다만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적을 막아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臣을 믿어 주시옵소서."
이리하여 漢나라 군사들은 守備만 견고하게 갖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10여 일이 지나도록 서로간에 움직이는 기색이 전혀 없다 보니, 성질 급한 항우가 답답한 나머지 모든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묻는다. "劉邦은 우리에게 선전 포고문을 보내놓고도, 우리가 코 앞에 와 있어도 움직임이 전혀 없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 " 그러자 季布가 나서며 말한다.
"유방은 지금 우리에게 鈍兵之計를 쓰고 있는 줄로 아뢰옵니다." "둔병지계라니 .... ? 그러면 저들은 우리와의 싸움을 회피하고, 우리 군사들이 저절로 지쳐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오 ? " "예, 그러하옵니다." 항우는 이번에는 종리매에게 묻는다. "장군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 "소장도 계포 장군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둔병지계를 쓰지 않는다면, 선전 포고문까지 보내놓고서 나와 싸우기를 왜 회피하겠사옵니까 ?"
그러자 周蘭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온다. "두 분의 의견은 크게 잘못된 것인 줄로 아뢰옵니다. 漢王은 韓信의 군사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싸울 자신이 없어 수비만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번 싸움은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니 , 오늘이라도 총공격을 하시옵소서." "음 ...듣고 보니 과연 장군의 말씀이 옳소이다. 그러면 내일은 아침부터 한군에게 총공격을 개시하기로 합시다."
다음날 항우가 총공세로 나오자, 한왕은 王陵, 번쾌, 灌瓔, 盧灌 등 네 장수로 하여금 적을 막도록 하였다. 항우가 말을 달려 나와 漢軍의 將帥 들에게 말한다. "내가 漢王과 단 둘이 담판할 일이 있으니, 그대들은 물러가고 한왕이 나오도록 일러라."
그러자 王陵이 장검을 휘두르며 대답한다. "대왕께서는 그대가 太公을 살해하려 했던 恨을 푸시고자 그대를 생포해 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하여 우리 네 사람은 그대를 생포해 가고자 하니 그대는 여러 말 말고 우리의 포박을 받으라." 이에 항우가 大怒하여 장검을 휘두르며 돌진해 왔다.
1 : 4 ! 네 장수가 항우를 상대로 30여 합을 겨뤘으나, 승부가 나지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근흠, 주창, 고기, 呂馬通 등 10여 명의 장수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싸움을 가로 맡았다. 그러자 楚陣에서도 季布, 鐘離昧, 환초, 虞子期 等 모든 장수들이 총출동하여 양군 대장들간에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기만 할 뿐 끝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 갈 즈음, 楚軍 진지에서 별안간 鐵砲 소리가 나더니, 그것을 신호로 대장 周蘭이 대군을 이끌고 나와 漢나라 軍사를 치기 시작한다. 漢나라 군사들을 마치 풀베기라도 하듯 닥치는대로 치고 베는데 그 기세가 가히 '놀랄 노字라'!.. 이에 크게 당황한 漢王은, "모든 군사들을 즉각 성안으로 후퇴시키라 ! "는 긴급 후퇴 명령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漢나라 군사들은 화급히 성안으로 몰려 들어와 성문을 굳게 닫고 일체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항우는 城門 앞까지 접근해 와 全軍에 공격명령을 내린다. "敵은 이미 독 안에 든 생쥐들이다. 城을 포위하고 劉邦을 生捕하라. 나의 오랜 숙원을 오늘 밤 깨끗히 풀고야 말 것이다."
그러자 장수들이 입을 모아 아뢴다. "폐하 ! 지금은 사방이 칠흙같이 어둡사오니, 城을 함락시키는 것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뭐가 두렵다고 내일 아침으로 미룬다는 말이냐 ? " "어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함락시키고자 하면 敵이 최후의 발악을 하게 되어 우리 측의 피해가 많게 되옵니다. 하오니 날이 밝은 후 공격하는 것이 우리의 손실을 줄일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음 ...그러면 城을 함락시키는 것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되 오늘 밤 경계만은 철저하게 하라."
한편, 城안에 갇혀 있던 漢王은 불안에 떨며 모든 막료들에게 말한다. "敵의 기세가 워낙 거센지라 守城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 張良이 머리를 조아리며, "楚軍은 온 종일 싸우느라고 무척 지쳐서, 지금쯤은 모두 잠이 들었을 것이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오늘 深夜에 成고성으로 근거지를 옮기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 역시 같은 생각이오. 固陵城을 끝까지 지키지 못할 바에는 견고한 성고성으로 옮겨 가는게 좋겠소이다. 그러나 적의 경계가 삼엄하여 쉽게 城을 빠져 나갈 수가 있겠소 ? " "그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臣이 적정을 잘 살펴 보아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장량은 번쾌, 周勃, 柴武, 근흠 등 네 장수로 하여금 성밖으로 나가 적정을 면밀하게 살펴 오도록 하였다. 네 장수가 어둠 속으로 잠행하여 적정을 살펴 보니, 北門에는 敵이 거의 없어서 북문으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漢나라 군사들이 漢王을 모시고 북문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漢王을 선두로 군사들이 절반쯤 성을 빠져 나갔을 때, 楚將 鐘離昧가 그 사실을 보고 받고 항우에게 급히 달려와 고한다. "폐하 ! 劉邦을 비롯한 그의 군사들이 城을 포기하고 지금 북문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하옵니다." 자다가 일어나 그 보고를 받은 항우는 큰소리로 외친다. "뭐라 ? 劉邦이 도망가고 있다고 ? 그러면 당장 군사를 보내 劉邦을 잡아오도록 하라 ! "
항우가 급하게 명령을 내리자, 종리매가 諫한다. "폐하 ! 敵이 도망을 갈 때에는 그에 대한 방책을 확실히 세워 놓고 떠났을 것이오니, 심야에 함부로 추격하는 것은 삼가시는 것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섣불리 추격하다가 적의 복병에게 당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項佰이 종리매의 의견에 찬성하고 나온다. "폐하 ! 夜半逃走를 할 정도라면 유방의 운명은 이미 다 된 것이니, 너무 서두르지 않으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 추격을 하지 않아도, 머지 않아 유방을 완전히 섬멸 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항우는 鐘離昧와 項佰의 의견을 옳게 여겨, 야간 추격을 하지 않기로 한다. 그 덕분에 漢王은 남은 군사들을 무사히 이끌고 成고성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항우의 공격을 받게 될지 모르므로, 한왕은 張良과 陣平을 불러 상의한다. "敵이 언제 이곳까지 공격해 올지 모르는데, 나를 도와줄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 했으면 좋겠소 ?"
張良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왕 전하 ! 그 점은 조금도 염려 마시옵소서. 확실히는 모르되 敵은 사흘 안으로 반드시 스스로 철수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옵니다." 漢王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항우가 스스로 철군을 하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그러자 장량이 질문을 기다린듯 말한다.
"敵은 軍糧사정이 넉넉치 않아, 어림잡아도 열흘 분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臣은 그 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수일 전, '장창'과 '장다' 두 장수에게 精銳兵 백여명 씩을 붙여 柳州로 보내 敵의 軍糧庫를 모두 불태워 버리도록 하였습니다. 제아무리 楚覇王이라 한들 밥을 먹지 않고 싸울 수가 있겠사옵니까 ? 그러므로 敵은 수일 내에 반드시 彭城으로 자진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漢王은 그 말을 듣자 뛸듯이 기뻐하였다.
** 楚漢誌 76
※ 張良의 危機 극복
한편, 楚軍은 다음 날, 漢王이 도망간 城皐城을 공략하려고 全 軍에 또다시 출동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바로 그때 幽州로부터 飛馬가 달려오더니, "폐하 ! 幽州에 있던 軍糧庫가 어젯밤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前方으로 이송할 軍糧米가 모두 불타버렸사옵니다." 라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무어라 ? 幽州에 있던 군량미 창고가 화재로 모두 불타 버렸다고 ? 그렇다면 경비 책임을 맡고 있는 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 " 그러나 책임을 따지고 호통을 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楚軍이 제아무리 사기가 높다해도 먹지 않고서야 싸울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항우는 즉시 참모 회의를 소집한다. 그러자 모든 장수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이번 기회가 劉邦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은 분명하옵니다. 하오나 밥을 먹지않 고서야 싸울 수 없으니, 부득이 철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사옵니다."
항우로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지라 모처럼의 勝機를 잡았던 楚軍은 悔恨을 남기고 철군하는 수밖에 없었다. 張良의 神技에 가까운 전략이 통일천하의 大 會戰을 앞두고 의미심장한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漢王은 楚軍이 彭城으로 철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량에게 묻는다. "韓信, 英布, 彭越 장군 등에게 소집령을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 "
장량이 면목이 없는 듯 머리를 깊이 숙이며 대답한다. "대왕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그들이 즉시 달려오리라 믿었던 것은 臣의 커다란 착오였사옵니다. 臣이 커다란 과오를 범하였사오니 대왕께서는 臣에게 罰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 말에 한왕은 손을 내저으며, "선생을 처벌하다니요 ?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선생께서는 어떤 점에서 착오를 하셨는지, 모든 것을 그대로 말씀해 주소서."
"聖恩이 망극하옵나이다." 장량은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韓信 장군은 이름만 齊王이지 아직까지 그가 소유할 영토를 하나도 나누어 주지 않으셨사옵니다. 韓信 장군은 그 점에 불만을 품고 오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英布와 彭越 장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영포 장군은 항우를 버리고 우리에게로 왔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爵位도 내려 주시지 않으셨고, 팽월 장군도 수많은 전공을 세웠음에도 전공에 걸맞는 포상을 아니 해 주셨사옵니다.
특히 영포와 팽월은 의리보다는 利害가 남달리 밝은 사람들이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대왕께서는 그들에게 제각기 영토를 나눠 주시기만 하면, 그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대왕께서 굳이 부르시지 않으셔도, 저마다 달려와서 대왕을 돕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그 점을 각별히 고려해 주시옵소서."
漢王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거듭 끄떡이다가 장량의 말이 끝나자, "내가 우매하여 그 점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소이다. 선생의 충고는 새삼 폐부를 찌르는 것만 같소이다. 그러면 한신을 三齊王에 封하고, 英布를 淮南王에 封하고, 팽월을 大梁王에 封하여, 그곳 영토와 물산을 모두 소유하게 할 것이니, 수고스럽지만 선생께서 印符(인부: 도장과 임명장)를 가지고 가셔서 그들에게 직접 나의 뜻을 전해 주소서."
張良이 漢王의 命을 받들고, 우선 齊나라에 머물고 있는 韓信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印符와 漢王의 詔書를 내주면서, "대왕께서는 이번에 장군을 三齊王에 封하심과 동시에, 齊나라의 영토였던 70 개 城의 자치 운영을 모두 장군에게 割愛하셨습니다. 인부와 조서를 가지고 왔으니 받아 주소서."
한신은 그 말을 듣고 어쩔 줄을 모르고 기뻐하면서 張良을 上坐로 받들어 모시려고 하였다. 그러자 장량은 자리를 사양하면서 말한다. "장군은 이미 王位에 오르셨고, 나는 일개 변객에 불과 하니, 내가 어찌 감히 上坐에 앉을 수가 있으리까."
그래도 韓信은 張良에게 상좌를 권하며, "내 일찍이 선생의 도움이 아니었던들 어찌 오늘의 영광이 있었겠나이까 ? 선생은 한왕의 軍師이시므로, 저 역시 선생을 지난 날과 마찬가지로 軍師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장량은 좌석을 사양하다 못해 한신과 동등한 자리에 앉으며 다시 말한다. "항우의 세력은 지금 보잘것없이 약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왕께서 항우와 講和條約을 맺었던 것은 太公이 항우의 손에 볼모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태공을 무사히 구출하였으므로 이제 항우를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할 때가 되었습니다. 齊王께서 항우를 정벌하는 데 힘을 써 주신다면, 齊王께서는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이 되셔서, 子孫 萬代에 이르도록 영광을 누리게 되실 것입니다."
韓信은 그 말을 듣고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이제야 드리는 말이지만, 선생께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 일전에 대왕께서 항우와 講和條約을 맺고 천하를 兩分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크게 실망했었습니다. 통일 천하의 聖業을 포기하고 천하를 둘이 나누어 가질 바에야 내가 나서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저는 제 나름대로 실속을 차리기 위해 대왕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옵니다. 그러나 오늘, 대왕께서 저를 三齊王에 封해 주시면서 천하 통일을 끝까지 완수 하시겠다 하시니, 제가 어찌 全力을 다하여 대왕을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그 점에 대해서는 저를 굳게 믿어 주시옵소서."
장량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齊王께서 그와 같은 결심을 가지고 계시다면 신속히 군사를 일으켜 대왕과 함께 항우를 정벌해 주소서. 나는 이제 英布 장군과 彭越 장군을 찾아가 齊王과 공동 보조를 취해 주도록 부탁할 생각입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며, "선생을 모시고 영포, 팽월 장군과 함께 힘을 같이한다면 천하 통일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장량은 한신과 작별하는 길로 곧 淮南에 있는 영포를 찾아갔다. 영포가 장량을 반갑게 맞아들이자, 장량은 印符와 漢王의 詔書를 내주며 말한다. "대왕께서는 이번에 장군을 淮南王에 封하심과 동시에, 九江 이남의 모든 郡縣을 장군께 하사하셨습니다. 장군이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영포는 그 말을 듣고 기쁨을 금치 못하며, 漢王이 있는 서쪽 방향을 향하여 謝恩肅拜를 올린다. 장량이 다시 말한다. "이로써 장군은 人臣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항우가 건재해 있는한, 장군의 지위가 결코 强固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한신 장군은 항우를 정벌하기 위해 불일간 군사를 이끌고 成皐城으로 대왕을 찾아뵙기로 하였으니, 장군도 한신 장군과 함께 천하 통일 성업에 적극 가담해 주심이 어떠하겠습니까 ?" 영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반색하며, "저 역시 금명간 군사를 이끌고 成皐城으로 대왕을 찾아뵙고, 통일 성업에 전심전력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굳게 맹세한다.
장량은 영포의 확약을 받고나자, 그 길로 大梁으로 가서 彭越을 만난다. 때마침 팽월은 참모들과 회의를 하다가, 장량이 찾아 왔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달려 나와 정중히 맞아 들인다." 張良은 大梁王의 印符와 함께 漢王의 詔書를 주니 彭越은 등불을 밝히고 漢王의 조서를 읽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公은 본래 魏나라의 相國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귀순하여, 楚나라의 糧道를 차단하는 等, 수차에 걸쳐 큰 功을 세워 주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포상을 못 해왔기에, 이번에 公을 大梁王으로 封함과 동시에 50 郡郡을 食邑으로 給與하는 바이니, 자손 만대에 이르도록 길이 영광을 누리기 바라오.
彭越은 漢王의 크나큰 은총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장량에게 말한다. "대왕께서 臣에게 이처럼 커다란 은총을 내려 주셨으니, 臣은 身命을 다해 대왕의 은총에 보답하겠습니다." 그 말에 장량이 말한다. "한신 장군과 영포 장군도 대왕의 통일 성업을 돕기 위해 이제 곧 군사를 이끌고 成皐城에서 漢 大王을 뵙기로 하였으니, 大梁王께서도 동참해 주시면 大王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 역시 군사를 이끌고 수일 내에 成皐城으로 대왕을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韓信, 英布, 彭越 등이 모두 자진하여 城皐城으로 군사들을 몰고 오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천하의 앞을 바라볼줄 아는 張良의 탁월한 智略의 결과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 楚漢誌 77
※ 征楚 百萬 大軍의 위용
三齊王에 임명된 韓信은 漢王을 돕기위해 15 萬의 군사를 이끌고 成辜城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蒯徹(괴철)이 찾아왔다. 일찍이 韓信에게 고 권했던 그 蒯徹인데 漢王의 忠臣 陸賈가 불시에 한신을 찾아왔다가 반역을 권유하는 괴철의 이야기를 문 밖에서 듣고 갑자기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기절초풍 하다시피 놀라 줄행낭을 놓았던 바로 그者였다.
한신은 蒯徹을 보고 묻는다. "公이 무슨 일로 또다시 나를 찾아 오셨소 ? " 蒯徹은 머리를 조아리며, "제가 그동안 장군의 은총을 받아왔사온데, 오늘은 장군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成辜城으로 떠나신다기에, 장차 장군의 신상에 일어날 커다란 災禍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어 찾아 왔사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저으기 놀란다. "커다란 災禍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게요 ?" 괴철이 다시 대답한다. "한왕이 전날 固陵城에서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한왕은 장군에게 급히 달려와 도와달라고 간청했으나, 장군은 끝내 가시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漢王은 장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장군을 三劑王에 封하고 많은 봉토까지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포상이 아니고, 장군을 이용하여 항우를 치기 위한 술책이라는 것을 아셔야 하옵니다."
"음 ...! 과연 그럴까 ? "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한왕은 장군의 힘을 빌려 천하를 통일하고 난 後에는 장군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니, 그 어찌 '커다란 災禍'라고 아니 할 수 있겠사옵니까 ? 하오니 장군은 成辜城으로 가셔서는 아니 되십니다. 이제 장군께서는 漢王을 돕지 마시고, 지난 번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하를 세 분이 나눠 갖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災禍를 방지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부귀영화를 길이 누리시게 되옵니다." 蒯徹은 또다시 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한신은, "다른 사람도 아닌 張良 선생이 직접 찾아오셔서 御命을 전달해 주셨기에, 나는 군사를 일으켜 楚나라를 칠 것을 약속하였소. 그 약속을 이제와서 번복하면, 나는 세 가지의 不義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오.
첫째는, 군령을 위반하는 불의요, 둘째는, 친구의 신의를 배신하는 불의요, 셋째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불의를 범하는 결과가 되오. 그와같은 불의를 범한다면, 내가 비록 三劑王의 자리를 유지 한다고해도, 여러 諸侯들이 나의 배신과 욕심에 대하여 얼마나 질타하겠소? 그러니 설혹 후일에 公의 말대로 '큰 災禍'를 당하는 한이 있다하더라도 그런 배은 망덕한 행위는 못 하겠소이다."
한신이 이처럼 一言之下에 물리치니, 蒯徹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한신의 앞을 물러나왔다. (蒯徹! ~ 司馬遷은 史記에서 괴철의 이름이 漢武帝의 이름인 '劉徹'의 '徹'과 같다하여 諱(휘 :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이 공경하는 死者의 이름과 같을 때, 이를 피하여 다른 이름을 쓰게 하는 것.)하였다. 우리나라도 作名時, 임금의 이름은 위와 같이 諱하였다. 蒯通'이라고 기록한 뒤부터는 괴통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쓰이게었다.)
韓信이 蒯徹의 '天下 3 分論'을 강력히 일축하고, 15만 군사를 이끌고 成辜城에 도착하니, 漢王은 轅門(원문) 밖까지 몸소 나와 韓信을 반갑게 맞았다.
"三劑王이 이렇게 와 주시니,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만 같구려." "대왕 전하! 鴻恩이 망극하옵나이다. 臣이 대왕 전하의 은총으로 三劑王이 되었으나, 대왕 전하를 가까이 모시고 있을 때는 예전처럼 장군으로 불러주시옵소서. 대왕 전하께오서 '三劑王'으로 부르시니 臣 한신, 망극하기가 이를 데 가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날 때는 예전의 돈독한 君臣之誼의 시절로 돌아가 격의없이 부르도록 하겠소이다. 이 점은 장군께서 양해하시기 바라오." "下命, 叩頭謝恩(고두사은 :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은혜에 감사함) 하옵나이다. 하오나 그동안 臣의 罪科가 백번 죽어 마땅하오나, 차후로는 身命을 다해 충성을 다할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 무슨 말씀을 ! 사람은 누구나 다소의 잘못은 할 수있는 법이오. 지난 일은 일체 거론치 않기로 하고 어서 大殿으로 들어갑시다." 이렇게 韓信을 대하는 漢王의 태도가 온후하자, 한동안 어색하였던 한왕과 한신간의 君臣之義가 예전처럼 다시 뜨거워졌다.
마침 그 때, 張良도 成皐城으로 돌아와 英布와 彭越도 大軍을 이끌고 수일 내로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아뢰니, 한왕은 크게 기뻐하며, "세 장군이 이처럼 합심하여 오게 된 것은 오로지 선생께서 애쓰신 덕분입니다." "천만부당한 말씀이시옵니다. 그들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오게 된 것은 오로지 대왕의 위덕에 감복한 소치인 줄로 아뢰옵니다."
그로부터 열흘쯤 지난 뒤, 英布, 彭越을 비롯하여 燕王, 魏王, 韓王 等도 자진하여 지원군을 이끌고 왔는데, 그 규모는 다음과 같았다.
燕王 : 15만 魏王 : 20만 韓信 : 15만 英布 : 5만 彭越 : 5만 삼진 세 : 6만 장다 세 : 3만
여기에 함양에 머물던 丞相 簫何도 咸陽의 군사 15 萬을 이끌고 오니, 연합군의 규모가 무려 80 여 萬이나 되었다. 거기에 漢王이 거느리고 있는 직속 부대 또한 20 萬에 이르렀음으로, 成辜城에 집결한 총 병력은 무려 1백만이 넘게되었다.
거기에는 각 나라에서 主公을 따라온 대장급 將帥만도 무려 8 백명에 이르렀다. 漢王은 韓信을 大元帥로 임명하여 各 軍을 통일된 명령과 軍호로 맹 훈련을 시켰다. 이와 더불어 簫何, 陣平, 夏侯瓔 등에게는 三秦으로부터 軍糧과 피복, 부상자를 치료할 약품까지 운송해 오게 하니, 漢나라 연합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연합군의 훈련 모습을 지켜 보던 漢王은 지극히 만족스러워 한신을 불러 상의한다. "楚軍을 정벌할 준비가 이미 완료된것 같은데, 항우를 이곳으로 유인해서 싸우면 어떻겠소 ? 나는 그 편이 훨씬 유리할 것 같은데, 장군 생각은 어떠시오 ? " 한신이 한왕에게 稟한다. "항우를 우리 진영으로 유인하여 싸우면 그처럼 유리한 싸움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楚軍은 군량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가, 원정 전투에서는 連戰連敗했기 때문에, 우리가 선전 포고문을 보내더라도 이제 항우는 결코 이곳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음 ...들어보니 과연 그렇겠구려. 그러면 어떤 전략이 좋겠소 ? " "대왕께서 彭城까지 군사들을 親히 거느리고 가셔서 싸움을 먼저 거셔야 하옵니다. 그러면 항우는 화가 치솟아 올라 몸소 달려 나올 것이니, 우리는 그때를 잘 이용하여 楚軍을 격파하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그것 참 좋은 전략이오. 그러면 장군의 계획대로 합시다."
이리하여 征楚 작전 계획은 완전히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그 날부터 수일이 지나도 한신은 웬일인지 출동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張良이 의아스러워 한신에게 묻는다. "楚軍에 대한 공격 준비는 완료된 것 같은데, 장군은 어찌하여 출동 지시를 하지 않으시오 ? " 그러자 한신이 대답한다. "출병을 하려면 먼저 地利의 吉凶부터 알아보아야 합니다. 제가 수일 전부터 여러 첩자를 파견하여 陽武에서 徐州까지의 地形을 샅샅이 조사해 보았는데, 우리측에 유리한 곳은 오직 九里山 남쪽에 있는 垓下라는 곳이 있을 뿐이옵니다." "해하가 어떤 곳이기에, 그곳만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말씀이오 ? " "예, 垓下라는 곳은 산이 높아 산기슭에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적당하고, 배후의 산은 험준하여 적으로부터 후방 공격을 받을 위험이 전혀 없는 곳이옵니다. 우리에게 유리한 싸움터는 오직 그곳 뿐인지라, 다시 한번 확실하게 알아 보고자 정탐꾼을 두 번째 보냈는데, 그 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대로 다시 한 번 검토하여 곧 출병할까합니다."
張良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감탄한다. "장군이야말로 과연 불세출의 大 戰略家시오. 그러면 나는 나대로 오늘 밤 天文을 살펴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해 보겠소." 그날 밤 장량은 홀로 山上에 올라가 天文을 바라보니 紫薇星(자미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五星은 전례없이 밝아 보였다.
** 楚漢誌 78
※ 劉邦의 百萬大軍과 항우
이에 張良은 크게 기뻐하며 韓信에게 와서, "지금 山上에서 天文을 보니, 漢나라의 氣運이 이 이상 더 왕성할 수가 없을정도로 좋아 보였소. 그러니 장군께서는 이제 發軍하여 楚를 징벌하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하루속히 구출해 주시오." 한신이 크게 기뻐하며, "天文이 그처럼 大吉하다면 大王殿에 품고하여, 발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한신은 바로 한왕을 배알한다.
한편, 항우는 彭城으로 돌아오자 몸에 쌓인 피로를 깨끗이 씻어 버리고, 오랫만에 虞美人과 더불어 부부간의 雲雨之情을 마음껏 풀고 있었다. 우미인은 항우에게 술잔을 따라 올리며 살갑게 말한다. "九重宮闕이 아무리 좋다해도 혼자 있을 때는 사막처럼 쑬쓸하기만 하였사온데, 폐하께서 돌아오시니 이렇게도 기쁠수가 없사옵니다."
항우도 우미인의 얼굴을 그윽히 바라보며, "나 역시 野戰에서 千軍 萬馬를 호령할 때도 머릿속에는 오직 당신 생각뿐이었소. 그러니 뭐니뭐니 해도 가장 소중한 것은 부부간의 情이라 생각하오." "말씀만 들어도 행복하옵니다. 그러기에 옛날부터 부부간의 情理를 일컬어 부부는 偕老同穴 (해로동혈 : 부부는 평생을 같이 지내며 죽어서도 같이 무덤에 묻힌다)하며, 終天之慕(종천지모 :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思慕의 情)라 하지 않았사옵니까 ?" "偕老同穴, 終天之慕라 !... 참으로 옳은 말이오. 戰場을 오랫동안 누벼오다 보니 이제는 싸우는데 지쳤는지 나도 평범한 지아비로, 그대와 더불어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구려."
이렇게 독백처럼 말하는 항우의 얼굴에는 일말의 감상조차 없지 않았다. 項羽의 얼굴에서 전에 없던 감상적인 모습을 보자 우미인은 속으로 놀라며 말한다. "폐하! 천하의 영웅답지 않으시게 오늘은 어찌 이처럼 나약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 폐하의 평생 소원이시오니, 통일천하만은 기필코 이루어 놓으셔야 하옵니다. 폐하가 아니면 누가 천하를 통일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 폐하께서 천하를 통일하시면 신첩은 쌍수로 축하의 기쁨의 祝盃를 올릴 것이옵니다."
항우는 그제서야 흔쾌하게 웃으며, "하하하, 당신이 그처럼 기뻐한다면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천하를 통일하여 당신을 황후로 만들어 주겠소." "그때는 신첩이 세상에 둘도 없는 '천하의 황후'가 될 것이옵니다."
오랜만에 內殿에서 이같은 情談을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폐하 ! 긴급히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라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항우는 방문을 열며, "무슨 일이오? ! "
문전에는 尙書令 項佰이 와 있었다. 項佰은, "지금 飛馬의 보고에 의하면, 漢王 劉邦이 우리와 일전을 벌이겠다며 백만 대군을 끌고 成辜城을 떠나 陽武로 進軍 中이라 하옵니다. 그리고 敵의 최고 사령관은 韓信이라고 하옵니다." "뭐요 ? 韓信이 최고 사령관이라고 ? "
옛날에는 형편없는 인물로 깔보았던 韓信이었지만, 지난 몇 차례의 對戰에서 連敗의 고배를 마시고 난 後 항우는 '한신'이라는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 지는것이었다. 항우는 곧 장중으로 나와 긴급 중신 회의를 소집했다. 상서령 項佰을 비롯하여 항장, 季布, 周蘭, 鐘離昧, 等等의 장수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은채, 굵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러자 자리에 함께한 대장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중 종리매가, "폐하! 회의 주재는 하지 않으시고, 어인 일로 눈물을 흘리시옵니까 ?"
항우는 그제서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故 范增 軍師께서는 일찍이 劉邦은 무서운 野心家니 일찌감치 죽여 없애지 않으면 큰일난다, 그리고 韓信을 크게 쓰지 않으려면 죽여 없애야 한다고 여러 차례 諫言을 한 일이 있었소. 나는 그 때 그 간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오늘날 이런 고난을 겪게 되었으니, 작고하신 范增 亞父가 새삼스레 떠오르는구려. 우리 군사는 30 萬인데 劉邦은 百萬의 대군을 몰아 오고, 게다가 韓信이 총사령관이라니, 이를 어찌해야 좋겠소!?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范增 軍師를 돌아가시게 만든 것이 생각할수록 절통하구려."
그러자 周蘭이 위로하며, "폐하! ..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舒六城을 지키고 있는 周殷도 10 萬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긴급 소집명령을 내리시면 주은도 즉각 10만 명을 몰고 올 것이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周殷은 본래 英布와 가까운 사이라, 나를 돕기 보다는 劉邦 편에 서기 쉬운 인물이오. 차라리 배신하기 전에, 주은을 넌즈시 불러다가 처치해 버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소."
項佰이 그 말을 듣고, "폐하의 말씀대로 주은은 위험한 인물이니, 미리 없애버리는 것이 상책이라 사료되옵 니다." 이리하여 항우는 李寧을 통하여 周殷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편지를 받아 본 주은은 편지를 보낸 항우의 의도를 수상히 여겨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 본다. (項羽가 무엇 때문에 별안간 나를 부를까 ? 그는 지금 政勢가 楚나라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내가 의심스러워 죽이 려고 부르는 게 아닐까 ? 그렇다면 나는 나대로 살 길을 찾아 英布 장군을 통해 漢王에게 협력하는 편이 上策이 아닌가 ?)
周殷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시치미를 떼고 李寧에게, "楚覇王 폐하께서 나를 부르셨는데, 이곳은 워낙 도둑이 들끓어 治安이 몹시 어지러운 까닭에 나는 한시도 이곳을 비울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貴公은 돌아가셔서 폐하께 그렇게 전해 주소서." 항우의 사신 李寧은 周殷의 거절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이제 곧 楚漢戰이 크게 벌어질 텐데, 장군이 도둑때문에 폐하의 명령에 복종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요 ?" 하고 대놓고 힐난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周殷은 정색을 하고, "귀공은 지금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오 ? 귀공은 楚漢戰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계시지만, 나로서는 내 고을의 治安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오."
李寧은 주은이 逆心을 품고 있음을 감지하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舒六城을 떠났다. 그리하여 彭城으로 돌아오는 길에 會稽(회계)에 들렸다. 회계 太守 吳舟도 군사를 동원하여 오라>는 항우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우의 서한을 받아 본 吳舟는 副將 鄭亨과 상의하더니 李寧에게, "폐하의 명령을 받들어, 본인은 열흘 안으로 군사 8 萬을 이끌고 彭城으로 가겠습니다."
** 楚漢誌 79
※ 百萬 大軍의 出征과 韓信의 計略
李寧이 彭城으로 돌아와 周殷과 吳舟를 만났던 경위를 소상하게 보고하니, 항우는 주은의 행위에 격노하여 "그렇다면 주은이를 먼저 치고, 유방은 그 다음에 상대하기로 합시다." 그러나 項佰이 諫한다. "劉邦이 몰고 오는 百萬 大軍을 상대하기 전에 다른 곳에서 힘을 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항우는 그 말을 일리있다고 여겨 유방에 맞설 군사를 규합해 보니, 그런대로 50만에 달하는 것이었다.
한편, 韓信은 구리산 지형을 자세히 담은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지도를 앞에 놓고, 廣武君 李左車와 상의한다. "구리산 계곡에서 싸운다면, 우리는 항우에게 승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항우를 구리산 계곡으로 유인해 올 지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 습니다. 선생께서 그 방도를 가르쳐 주소서."
이좌거가 대답한다. "항우는 워낙 우직한 사람이므로 그를 속이기는 쉬울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의 막하에는 項佰이나 鐘離昧 같은 우수한 策士들이 있어서, 항우를 구리산 계곡으로 유인해 오기는 쉽지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항우를 구리산 계곡으로 유인해 올 방도가 전혀 없으시다는 말씀입니까 ? "
李左車는 머리를 숙이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옵니다. 결국은 僞計를 쓰는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어떤 위계를 쓰면 되겠습니까 ?" 한신은 구체적인 내용을 물었다.
"項羽를 구리산 계곡으로 유인해 오려면, 楚軍이 믿을만한 우리측의 한 사람을 僞裝 投降시켜서, 항우를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항우는 고지식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利害관계로 부추켜 놓으면 項羽는 반드시 구리산으로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매복해 있던 우리 軍이 공격을 하면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과연 빼어난 묘계이십니다. 그러면 위장 투항할 사람은 누가 좋겠습니까 ?" "글쎄올시다. 위장 투항이란 워낙 고도의 지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적임자를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신은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며, "매우 어려운 부탁이오나. 선생께서 몸소 그 일을 맡아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 아무리 생각해도 이처럼 막중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선생 외에는 없을 것 같사옵니다. 간곡히 부탁드리오니, 선생께서 몸소 나서 주시옵소서."
이좌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제가요 ...? " "예, 그렇습니다. 선생 외 그 어떤 사람을 보낸다 하더라도 항우는 그 사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본래 趙나라 의 명망있던 大夫이셨으니, 선생이 그 임무를 맡으신다면 항우는 틀림없이 선생을 믿을 것이옵니다. 만약 선생의 수고로 楚를 征伐하여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면, 선생의 공로는 그 누구보다도 크실 것이옵니다."
이좌거는 그 말을 듣고 흔쾌히 웃으며 대답한다. "좋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원수의 각별한 대우를 받아오면서 아무런 보답도 못했었는데, 이번 일로 그동안의 신세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일이라도 떠날 것이니, 元帥께서는 구리산 계곡에 陣을 치고 기다려 주소서."
李左車는 다음날 길을 떠나 彭城에 도착하자, 우선 尙書令 項佰을 찾아갔다. 項佰은 李左車를 정중히 맞아 들이며 묻는다. "선생은 본래 趙나라의 大夫이셨는데, 趙나라가 韓信에게 멸망한 뒤에는 그의 막하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오셨습니까 ?"
이좌거가 숙연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장군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저는 본시 趙나라 사람입니다. 그러나 趙王께서 나의 諫言을 듣지 아니하시고 陳餘의 속임수에 넘어가 漢나라와 싸우는 바람에 趙나라는 결국 亡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한신 장군의 그늘에서 寄食 하고 있었지만, 그곳은 제가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은 한나라를 탈출하여 이곳 楚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항백은 '탈출'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탈출이라니요 ...? 한신의 그늘에서 이리로 도망쳐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 이좌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습니다. 사내 대장부가 남의 그늘에서 밥을 얻어 먹으며 지내자니 세상 만사가 비위에 거슬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면서 한숨조차 쉬는 것이었다.
그러자 項佰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선생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선생 같은 분이라면 韓信이 극진히 대우해 드렸을텐데, 무엇이 못마땅해 비위에 거슬렸다는 말씀입니까 ? " "물론 한신 장군도 처음에는 저를 극진하게 대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三劑王이 되고 난 後부터는 전에 볼 수없던 거드름을 피우며 저를 마치 자신의 家臣처럼 대하니,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楚ㆍ漢戰이 곧 벌어질 것 같아 내 비록 재주는 없으나 楚覇王 폐하께 도움이 될 수있다고 생각되어 이곳으로 도망쳐 오게 된 것이옵니다."
項佰은 오랫동안 심사 숙고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선생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韓信은 권모 술수가 누구보다도 능한 사람입니다. 선생이 한신의 使嗾(사주)를 받고 위장 투항해 오신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선생의 말씀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이까 ? "
그 말에 이좌거는 정색을 하며,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십니다. 나는 한 사람의 謨士일 뿐이지, 나 자신이 무기를 듣고 직접 전투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않습니까?. 따라서 제가 어떤 말씀을 드리더라도 取捨選擇은 장군 께서 하실 일이 아니옵니까 ?" "음, 그건 그렇지만 ...."
項佰이 끝까지 미덥지 않은 기색을 보이자, 이좌거는 개탄해 마지 않으며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나는 楚覇王의 그릇을 크게 보고 이곳까지 왔건만, 이제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인 것을!... 그렇다면 이제 나는 누구를 찾아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 )
항백은 그 말을 듣자 자신의 불찰을 의식한 듯, 이좌거의 손을 굳게 붙잡으며, "선생같은 분을 의심했던 것은 나의 큰 잘못이었습니다. 선생같은 분은 높이 받들어 모셔야 하는 법인데, 일시나마 의심했던 것을 용서하소서. 폐하께서는 선생같이 훌륭한 분이 스스로 찾아 오신 것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 집에서 술이나 같이 하시고, 내일 아침 일찍 입궐하여 폐하를 알현하도록 하십시다."
그리하여 이좌거는 이날 밤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음날 아침에 항우를 만나기로 하였다. 항우는 이좌거가 투항해 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뭐요 ? 李左車가 투항해왔다고 ? 세상에 이런 慶事가 있나!? 그러잖아도 范增軍師 死後로 지금 내 주변에는 모사다운 모사가 한 사람도 없어서 지혜로운 사람이 몹시 아쉽던 판인데, 이좌거가 왔다니 즉시 모셔들이시오."
이좌거가 항백의 안내로 어전에 나오자, 항우는 반갑게 맞아들이며 말한다. "나는 진작부터 廣武君을 무척 사모하고 있었소이다. 그러기에 진작부터 만나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찾아주셔서 이런 고마울 수가 없구려."
이좌거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신은 趙王의 버림을 받고 한신 장군을 찾아갔으나, 한신 장군도 저를 처음과 달리 중요하게 써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자결할 까도 생각했었는데, 폐하께서 보잘것없는 저를 이렇게 반갑게 맞아 주시니 무한 감격하옵니다."
"선생같이 훌륭하신 분이 그런 설움을 당하게 되신 것은, 趙王이나 韓信이 모두 知仁之鑑이 없었기 때문이오. 나는 선생을 잘 알고 있으니, 오늘부터는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시기 바라오." 이리하여 위장 투항한 이좌거는 그날부터 항우가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謨士가 되었다.
한편, 한왕은 건곤 일척의 대결전을 눈앞에 두고 한신에게 물었다. "우리가 항우와의 싸움에서 초전부터 승리를 하려면 智勇을 겸비한 장수가 선봉장이 되어야 할 것인데, 선봉장으로는 누구를 내세우는 게 좋겠소 ?"
한신이 대답한다. "신이 趙나라에 머물러 있을 때, 智勇을 겸비한 장수를 찾던 중, 천만 다행히 두 사람의 驍將(효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을 이번 싸움에 선봉장으로 내세우면 초전부터 우리가 대승을 거둘 수 있겠사옵니다." "오오, 그런 장수가 있다면 내가 직접 만나 보고 싶구려."
한신은 즉석에서 두 사람의 장수를 어전으로 불러 왔는데 두 사람은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 당당한 모습이 첫눈에 보아도 걸출한 장수임이 틀림없었다. 한신은 그들을 한왕에게 소개한다. "이쪽은 원요현 태생으로 이름을 '孔熙'라 하옵고, 이쪽은 비현 태생으로 이름은 '陳賀'라고 하옵니다. 두 사람 모두 智謨와 弓馬에 능한 백전 노장들이옵니다."
한왕은 그들을 만나보고 극히 흡족해 하면서 즉석에서, "내 그대들의 출신 지방의 이름을 따서 공희 장군을 蓼侯(요후)에 封하고, 진하 장군은 費侯에 封하니 부디 선봉장이 되어 많은 공을 세워 주기 바라오." 하고 특별 官爵을 내려주었다. 이렇게 한왕과 한신의 협력으로 백만 대군의 출정 준비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楚漢誌 80
※ 項羽의 무리한 出兵
大漢 5월. 漢王 劉邦이 百萬 大軍을 직접 거느리고 成辜城을 떠나 征途에 오르니, 旗幟槍劍이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데 山野를 뒤덮으며 數百 里에 이어진 장엄한 행렬은 그야말로 천하 장관이었다.
선봉 대장 '孔熙'와 '陣賀'는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을 편하게 慰撫해주니 지나는 고을마다 백성들은 漢나라 군사들을 열열한 박수로 환영해줌으로써, 백만 대군은 步武도 당당하게 구리산에 도착하였다.
漢나라 군사들은 구리산에 도착하자마자 韓信의 事前 명령에 따라 요소요소에 부대를 배치하고, 언제라도 즉시 싸울 수있는 전투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선봉장 孔熙와 陣賀가 漢王에게 稟한다. "대왕의 위덕이 워낙 높으시와, 우리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뜨겁게 환영해 주고 있으니, 이는 대왕께서 천하를 통일하실 吉兆가 분명하옵니다." 한왕 유방이 기뻐하며 말한다.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환영해 주는 것은 오로지 장군과 군사들의 덕택이지, 어찌 나의 德이라 할 수가 있으리오."
이렇게 君臣之間에 위덕과 노고를 서로에게 돌리니, 漢나라 군사들의 사기는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는 중에도 韓信은 첩자들을 여러 방면으로 보내, 楚나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對楚 교란 작전을 치밀하게 펼쳐가고 있었다. 한신이 어느 날, 한왕의 고향인 沛縣에 도착해 보니, 언덕 위에 樓閣이 하나 있었다. 한신은 그 누각을 보자, 아무도 모르게 그 누각 위의 현판을 떼어내고 다음과 같은 詩를 써서 현판을 새로 걸었다.
倡義會諸侯 창의회제후
平將道無收 평장무도수
人心咸背楚 인심함배초
天意屬炎劉 천의속염류
나라를 구하고자 제후들이 모이니, 따르지 않는 장수가 없도다. 인심은 모두 楚나라를 등지니, 하늘의 뜻은 劉氏에게 있노라
指日亡垓下 지일망해하
臨時喪沛樓 임시상패루
劍光生烈焰 검광생열염
馘斬項王頭 괵참항왕두 (*馘 : 괵<목벨 괵, 귀 벨 괵)
언제가 그날에 垓下 전투에서 敗하고마니 때가 임하여 沛樓에서 죽으리라 번쩍이는 칼빛은 타는 불꽃 같으니, 項王의 머리가 잘리도다.
楚나라 첩자들이 그 詩를 읽어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그리고 그 詩를 써 가지고 彭城으로 돌아와 항우에게 올린다. 항우는 그 詩를 읽자마자 불같이 怒하여, "한신이란 놈이 나를 이렇게 모욕할 수가 있는가? 내 당장 三軍을 출동시켜 韓信 이놈을 오늘은 내 손으로 기어코 죽여 없애고야 말겠다 ! " 하고 全軍에 벼락 같은 출동령을 내린다.
그러나 아무 준비도 없이 벼락 출동령을 받은 楚軍 장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하여 季布와 周蘭이 급히 달려와 항우에게 諫한다. "폐하 ! 한신이 누각 현판에 그같은 글을 써붙인 것은 폐하를 노엽게 하여 판단을 흐리게 할 목적이 분명하오니, 그 점을 각별히 경계하셔야하옵니다." 그러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項羽에게 장수들의 忠言이 귀에 들어올리 만무하였다. "그대들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가? 내가 천하를 누벼왔지만, 지금까지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 韓信 이 놈이 번번히 나를 모욕하는데, 이런 놈을 그냥 내버려두면 천하의 제후들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는가 ?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놈을 없애 버릴 것이니 全軍은 속히 출동 준비를 하라 !"
그러자 周蘭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폐하 ! 지금 劉邦의 군세는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막강하옵니다. 또한, 韓信은 僞計가 누구보다도 능한 장수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나가서 싸울 것이 아니라 방어 태세를 취하면서, 군사도 새로 징집하여 보충하고 군량도 충분히 비축해가며 군사들의 훈련을 시키는 것이 좋으리라 사료되 옵니다. 이렇게 우리가 先 守備 戰略을 세워놓아야만 후일의 대승을 기대할 수가 있사옵니다. 우리가 철저한 준비로 대응하다보면 敵의 군량도 소진되고 군사들도 피로해질 것이니, 우리가 그때를 適期로 보아 총공격을 퍼붓는다면, 제아무리 韓信과 劉邦이라 한들 우리를 당해낼 수가 있겠사옵니까? 그때에 가서는 成辜城과 榮陽城을 싸우지도 않고도 접수하게 될 것이오니, 그와같은 방법을 쓰도록 하시옵소서."
周蘭이 간곡하게 諫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虞美人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든다. "폐하 ! 신첩이 무엇을 아오리까마는, 周蘭 장군의 諫言은 지극히 타당하신 말씀인 줄로 아뢰옵니다." 항우는 끔찍이 사랑하는 우미인까지 그렇게 말하고 나오니, 용기가 크게 좌절되었다.
그리하여 중신들을 불러들여 회의를 열고, "周蘭 장군은 지금은 싸우지 말고 수비 위주의 작전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데, 다른 장수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 특히 廣武公 (광무공 : 이좌거의 훈작명)의 의견을 듣고 싶소이다." 이좌거는 심사 숙고하는 척하다가 대답한다. "만약 폐하께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수비만 하신다면, 漢나라 군사들은 폐하를 우습게 보고 총공격을 해 올 것이옵니다. 彭城이 함락되면 폐하께서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싸우실 것이옵니까? 그러므로 <수비 위주>의 소극적인 전략을 보다는 그동안 폐하께서 싸워 오신 전략대로 적극적인 공격으로 맞써 나가셔야 유리하실 것 같사옵니다."
이좌거는 항우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부추겨 놓았다. 항우가 싸움을 걸어야만 구리산으로 유인해 갈 계기가 마련될 수있기 때문이었다. 이좌거가 主戰論을 들고 나오자, 季布와 周蘭은 크게 못마땅해하였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실정도 모르면서, 어디다 근거를 두고 그런 주장을 하시오 ?" 그러나 이좌거는 태연히 대답한다.
"폐하께서 나의 의견을 물으시기에 나는 나의 私見을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지, 반드시 싸우시라고 권한 것은 아니오. 나의 의견을 채택하고 안 하는것은 여러분의 뜻에 달려있을 뿐이오. 그러나 내가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소. 兵法에 <수비를 하면 힘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공격을 하면 힘이 갑절로 불어난다>는 말이 있소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공격은 대책 없는 수비에 비해 유리한 법이오."
이좌거가 거기까지 말하자, 항우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선생의 말씀은 옳은 말씀이오. 겁쟁이처럼 수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오. 나는 선생의 말씀대로 선제 공격을 하도록 하겠으니, 모든 장수들은 그런 줄 알고 출동 준비를 갖추도록 하라 ! " 하고 서슬 푸른 군령을 내린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虞美人은, 처음부터 불길한 예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머리를 숙여 항우에게 말한다. "폐하 ! 신첩이 각별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항우는 우미인의 뜻밖의 말에 매우 놀란다. "아니, 皇后가 새삼스럽게 무슨 부탁이 있다는 말이오 ?" 우미인이 머리를 숙이며, "신첩은 폐하를 모셔온 지 10년이 가깝도록 아직까지 폐하께서 직접 싸우시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본 일이 한 번도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 용감히 싸우시는 모습을 꼭 한 번 보고 싶사오니, 이번만은 신첩을 일선에 꼭 데리고 나가 주시옵소서. 신첩의 평생 소원이옵니다."
그것은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던 부탁이었다. 그런 부탁을 하는 우미인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까지 엿보였다. 그렇다면 우미인은 어찌하여 전에 없던 각오로 남편의 싸움판에 직접 따라나설 결심한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沛縣 누각에,
臨時喪沛樓 (임시상패루 : 때가 임하여 沛樓에서 죽을 것이니) 劒光生烈焰 (검광생열염 :번쩍이는 칼빛이 화염처럼 빛나니) 馘斬項王頭 (괵참항왕두 :항왕의 목이 잘리 는구나)
라는 詩가 걸려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미인은 누가 그 시를 써 놓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만약 그 시대로 된다면 남편은 이번 싸움에서 죽게 될 것이 아닌가 ? 그런 비극을 당하게 되면 우미인 자신은 남편과 운명을 같이 하려는 결심에서 從軍을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우미인의 내심을 알 길 없는 항우는 아내의 요구를 일언 지하에 거절해 버린다. "女人의 몸으로 싸움터에 따라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내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 테니 전과 다름없이 대궐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나 우미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남편을 따라 나설 결심이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항우에게 애원한다.
"폐하 ! 신첩은 폐하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는 폐하의 아내이옵니다. 남편의 용감한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여자들의 공통된 소원일 것이옵니다. 신첩이 싸움터에까지 폐하를 따라 간다면, 폐하께서는 용기 백배하셔서 평소보다 더 잘 싸우실 수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 그런데 어찌하여 신첩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옵니까 ? 간곡히 부탁드리오니, 이번 에는 신첩을 꼭 데리고 가 주시옵소서."
우미인이 눈물로 호소하니 항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너털웃음을 웃는다. "허허허, 싸움터란 弓矢가 亂舞하는 곳이어서, 어쩌다 잘못되어 화살이라도 맞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는데, 그래도 좋다는 말이오 ?"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인 줄로 아옵니다. 설사 화살에 맞아 죽는다손 치더라도, 지아비를 따라 갔다가 죽는다면 무엇이 원통하오리까 ? 그러니 이번만은 신첩을 꼭 데리고 가 주소서." "으음 ...."
항우는 아내의 비장한 결심을 더 이상 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용감무쌍한 모습을 한 번쯤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음 ...그렇게 소원이라면 이번만 데리고 나가 주지." 항우는 마침내 아내의 요구를 쾌락하고 즉석에서 부하들을 돌아다 보며 명한다. "여봐라 ! 이번 전투에는 황후께서도 동행하실 것이니, 황후가 타고 가실 수레를 준비하도록 하라."
이리하여 우미인은 五頭馬車를 타고, 선두로 달려가는 항우를 멀찌감치 뒤에서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바람이 어떻게나 세차게 부는지,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大旌旗(대정기)의 깃대가 거센 바람에 두 동강으로 부러져 버렸다. 모든 장수들은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항우만은 그런 일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진군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玉樓橋를 건너고 있는데, 이번에는 항우가 타고 있는 龍馬 烏추가 느닺없이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별안간, "우호호호" 하고 슬프게 울어대는 게 아닌가 ?
이런 두 가지 일이 연이어 일어나자, 項佰과 周蘭은 凶兆라고 여겨, 부리나케 항우에게 달려와, "폐하 ! 조금 전에는 대정기의 깃대가 부러지더니 이번에는 용마가 까닭없이 울어대고 있으니, 이는 결코 吉兆라고 볼 수 없사옵니다. 오늘은 진군을 일단 중지했다가, 吉日을 택해 다시 發軍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항우가 조심스런 사람이었다면, 깃대가 부러지고 愛馬가 슬피 우는 것을 매우 불길하게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항우는 성품이 남달리 우직하고 거친지라, 吉凶 따위는 염두에도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項佰과 周蘭의 간언을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武將답지 못하게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가 ? 전쟁이란 천하 대사인데, 바람이 불어도 안 되고, 말이 울어도 안 된다면, 도대체 싸움은 어느 세월에 한단 말인가 ? 쓸데 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행군이나 계속하라."
항우가 호통을 치는 바람에 항백과 주란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깃대가 부러지고 용마가 슬피 운 것이 흉조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되자, 항백과 주란은 항우의 장인인 虞一公에게 다시 한번 간언을 부탁한다. 虞一公이 선두로 달려와 항우에게 말한다. "폐하 ! 대정기의 깃대가 부러지고 용마가 슬피 운 것은 不祥之兆가 분명하니, 오늘은 일단 회군하셨다가, 후일에 다시 發軍하는 것이 어떠하시겠소이까 ? 그동안 敵情을 살펴 두었다가 며칠 후에 발군하여도 결코 늦지 않을듯 하오만..."
그러나 옹고집의 대명사라 할 수있는 항우는 장인의 권고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장인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그 옛날 紂王이 망한 날은 甲子日이었는데, 周武王이 왕위에 오른 날도 똑같은 甲子日이었소. 바람에 깃대가 부러지고 용마가 운 것이 뭐가 흉조라는 말씀이오? 우리는 이미 대군을 발동시켰소. 군사를 출동시켰다가 그런 사사로운 일로 回軍해 버리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비웃을 것이오. 더구나 그런 사실이 敵軍에게 알려지면, 敵將들은 나를 <천하의 겁쟁이>라고 업신여길 게 아니오 ? 하니 장인께서는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고 저기 보이는 停子 그늘에서 잠깐 쉬어나 갑시다."
항우는 정자 앞에서 말을 내려 잠깐 쉬며 땀을 씻고 있었다. 마침 그때 젊은 호위 무사 한 사람이 항우 앞으로 달려와 서한을 올리며 아뢴다. "폐하 ! 이 서한은 뒤따라오고 계시는 황후 마마께서 폐하께 올리는 서한이옵니다. 폐하께서 직접 뜯어 보시라는 분부이셨사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황후가 편지를 보내면서 나더러 직접 뜯어보라고 하더라구 ? 그렇다면 이 편지는 사랑의 편지인가? " 항우는 우미인이 보내온 편지를 손수 뜯어보니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폐하! 그 옛날 周文王은 后妃의 간언을 들음으로써 帝位에 오르시게 되었고, 禹王은 塗山夫人의 충고를 들음으로써 夏나라를 창업하였다고 하옵니다. 자고로 모든 제왕들은 부인의 간언을 잘 들음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려 왔사옵니다. 신첩은 비록 그들처럼 원대한 식견은 없사오나, 간언 한 말씀을 올리고자 하오니, 귀담아 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漢나라 장수 韓信은 僞計가 신출 귀몰하다고 하는바 우리는 각별히 방비책을 잘 세워야 할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周蘭 장군의 諫言은 진실로 金科 玉條와 같은 忠言이오니, 폐하께서는 그의 諫言을 반드시 들어 주시옵소서. 대정기의 깃대가 부러지고, 용마가 슬피 운 것은 결코 범상한 징후가 아니오니, 폐하께서는 고집을 버리시고 속히 回軍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