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楚漢誌 81
※ 무리한 出兵, 불길한 徵兆
項羽는 虞美人의 간곡한 書翰을 읽고나자 마음이 크게 동요되었다.
李左車가 재빨리 그러한 눈치를 알아채고 항우에게 달려와 告한다.
"지금 沛縣에서 온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漢王은 이미 철군하여 成辜城으로 돌아갔고. 韓信은 철군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臣이 생각컨데, 漢나라는 병력이 지나치게 많음으로써 군량의 조달에 곤란을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進軍하시기만 하면 敵은 스스로 물러가게 될 것이옵니다. 兵書에 '兵多將累'라는 말이 있사옵니다. 이것은 군사가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큰 짐이 된다는 뜻이옵니다. 폐하는 그 점을 고려 하시어 과감한 결단을 내리시도록 하시옵소서."
虞美人의 편지로 동요되었던 항우는 이좌거의 말에 다시금 용기가 치솟아,
"선생은 참으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소이다.. 모두들 듣거라. 우리는 처음 계획한대로 나갈 것이니, 全軍은 계속 전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행군을 계속한 楚軍은 沛縣앞, 50 里 밖에 陣을 치고 敵情을 살펴 보는데,
정찰병들이 돌아와 항우에게 보고한 내용은,
"漢王은 沛縣에서 60 里 가량 떨어진 서봉파라는 곳에 陣을 치고 있고,
韓信은 구리산 동쪽에 陣을 치고 군사 훈련만 시킬 뿐, 철군할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이좌거의 말과는 너무도 차이가 있는 지라, 항우는 좌우를 돌아보며 이좌거를 찾았다. 그러나 李左車는 어디를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좌거가 어디 있는지, 빨리 찾아 오라."
항우는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불호령을 내렸다.
이좌거를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營門의 경계 책임 장수가 달려와 아뢴다.
"폐하 !
그 어른은 皇命을 받들고 敵情을 살피신다며, 어젯밤에 敵陣을 향하여 나가셨습니다."
항우는 그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란다.
"무어라 !? 그러면 李左車는 가짜로 귀순해 온 敵의 첩자였단 말이냐 ? 그 자를 나에게 데려온 사람이 상서령 項佰이었으니, 상서령을 당장 불러오라 ! "
項佰이 달려오자 항우는 벼락 같은 호통을 친다.
"그대는 李左車의 내력을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그런 놈을 謨士로 나에게 천거했단 말인가 ? 이제 그 자가 도망을 치고 없으니 그 罪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
項佰이 死色이 다 되어 머리를 조아리며,
"이좌거는 워낙 유명한 智略家라, 臣이 그를 믿었다가 이런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어떤 罰을 내리시더라도 臣은 달게 받겠사옵니다."
"그대는 朕과 叔姪간이지만 이번의 실책은 결코 용서할 수 없노라. 여봐라 ! 상서령을 당장 監車에 가두어라 !"
하고 命했다.
그러자 周蘭이 달려 나와 諫한다.
"폐하 !
尙書令이 이좌거를 천거한 것은 폐하를 위한 충성심 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과오를 범했다 하더라도 상서령에게 重罰을 내리시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인 줄로 아뢰옵니다. 우리는 이미 大軍을 여기까지 몰고 왔으니, 기왕지사 잘못을 후회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과감하게 싸워 敵을 격파하는 것이 최 상책일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그 점을 각별히 통찰해 주시옵소서."
항우는 그제서야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싶어, 항백의 과오를 용서함과 동시에 季布와 周蘭의 간언을 일찍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였다.
그리하여 장중으로 돌아와 虞美人에게 말한다.
"나는 이좌거의 간계에 빠진 줄도 모르고, 그대의 諫言을 무시한 것이 참으로 후회스럽소."
우미인은,
"이미 지나간 일은 후회하셔도 소용없사오니, 폐하께서는 지금부터라도 모든 장수들과 합심 하시어, 敵을 과감하게 쳐부수도록 하옵소서. 폐하께서 평소부터 갈망하시던 天下 統一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길만이 있을뿐이옵니다."
항우는 우미인의 말을 듣고 크게 감격하여,
"오!, 그대가 아니면 나에게 이처럼 용기를 북돋아 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 것인고 ! "
항우는 결전을 각오하고, 모든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그대들은 오늘까지 나와 더불어 수백 번을 싸워 오는 동안에 우리가 크게 패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들의 전쟁의 역사는 이처럼 天下無敵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이번 싸움에 동원된 적의 兵力이 우리보다도 엄청나게 많음으로, 적을 가볍게 보았다가는 큰일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힘을 合하지 않으면 승리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諸將들은 그런 줄 알고, 최후의 일각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 주기를
바란다."
"......."
모든 장수들은 숙연히 머리를 숙이고 경청하자 항우가 구체적인 군령을 내린다.
"鐘離昧 장군은 정병 3 萬을 거느리고 左翼軍이 되고, 季布 장군은 정병 3 萬을 거느리고 右翼軍이 되고, 항초 장군은 선봉장을 맡으라. 그리고 虞子期 장군은 後備軍이 되어 中軍인 나의 뒤를 따르라. 韓信이 무슨 僞計를 쓸지 모르니, 우리는 싸움에 이기더라도 결코 추격은 하지 마라.
우리가 장기전으로 나가면 敵은 한 달이 못되어 軍糧 부족으로 지리 멸렬하게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기해 총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면 승리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에 모든 장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폐하의 戰略은 참으로 神機妙算(신기묘산 : 神이 하는 뛰어난 계략) 이옵니다."
그러나 항우의 戰略에는 커다란 착각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한 달이 지나면 漢軍의 軍糧이 부족해질 것만 생각했지, 楚軍은 그보다도 더 빨리 軍糧 부족으로 큰 곤경에 처하게 될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무렵,
韓信은 전투 준비를 완벽히 갖춰 놓고 敵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飛馬가 달려오더니
"楚나라에 가셨던 李左車 선생이 돌아오시옵니다."
하고 알리는 게 아닌가 ?
韓信은 轅門(원문 = 軍門 : 軍營이나 陣營의 營門을 말함)밖까지 달려나가 이좌거를 맞아들였다.
"항우를 만나 보신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
李左車가 그간의 경과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난뒤,
"季布와 周蘭이 發軍을 반대했으나, 제가 항우를 교묘하게 부추겨 沛縣으로 출동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항우는 지금 20 萬 군사를 끌고 沛縣 50 里 밖에 陣을 치고 있으니 이제는 장군께서 대책을 세우소서."
한신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소이다. 선생이 아니셨다면, 뉘라서 項羽를 沛縣까지 유인해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이좌거가 한신에게 묻는다.
"이제부터가 문제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옵니까?"
한신이 대답한다.
"項羽를 沛縣으로 유인해 오신 것은 크게 잘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항우를 철저히 때려부수려면 구리산 계곡까지 끌어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그를 구리산까지 유인해 올지, 그것이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이좌거가 그 말을 듣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옵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그 일 또한 선생이 아니면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니, 선생께서 다시 한번 지혜를 빌려 주소서."
"무슨 말씀을요.
元帥께서도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마는, 저로서도 한 가지 계략이 없지는 않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자 크게 기뻐하며,
"선생의 金玉같은 그 계략을 어서 말씀해주소서."
그러자 이좌거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고개를 들며,
"지난날 元帥께서는 項羽와 싸우실 때는 번번히 거짓으로 쫒기다가, 복병을 이용해 항우를 골탕먹이곤 하셨습니다. 항우는 元帥에게 그런 일을 번번히 당해왔기에, 이번에는 그런 수법에는 항우가 더 이상 말려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같은 작전을 쓰더라도 이번에는 원수께서 표면에 직접 나셔서는 안 될 것이옵니다."
그 점에는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누구를 내세워 항우를 유인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大王께서 직접 나가 싸우도록 하셔야 합니다. 대왕께서 직접 싸우시더라도 項羽는 지난날 여러 번 혼이났기 때문에 좀처럼 추격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나서겠습니다. 제가 나가 조롱을 한다면, 항우는 저한테 속은 일이 너무도 憤하여, 부하 將帥들이 말려도 듣지않고 맹렬히 추격해 올 것 입니다. 그렇게 항우를 구리산 계곡으로 꾀어 오는 方策이 가장 좋을 것입 니다."
韓信은 李左車의 계략에 실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漢王 劉邦에게 달려가 사실대로 告하니, 유방은 기뻐하며,
"그렇다면 내가 孔熙, 陣賀 두 장수를 좌우에 거느리고 나가 직접 싸우다가 항우를 유인해 오도록 할 것이니, 元帥께서는 구리산 계곡에 군사를 미리 매복시켜두었다가, 항우의 군사를 일거에 괴멸시키도록 하시오."
韓信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왕께서 항우를 구리산 계곡으로 유인해 오시기만 하면, 臣은 기필코 楚軍을 괴멸시켜 버릴 것을 명예를 걸고 엄숙히 맹세 하옵니다."
** 楚漢誌 82
※ 韓信의 作戰計劃
韓信이 九利山 작전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이끌고 온 兵力도 많지만, 세력이 약해진 항우를 격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한신은 장중으로 돌아오자마자 밤을 새워가며 체계적이고 치밀한 作戰 計劃을 수립하였다.
布陳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한신은 구리산 계곡에서는 지형의 특성을 살린 周易陳法을 쓰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밤을 세워 작전겨획을 세운 韓信은 다음날 아침, 張良과 陣平을 비롯한 모든 신료와 장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소에서 비장하게 말한다.
"大王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 우리들은 지난 5년 동안 수 많은 전투를 계속해 왔소. 때로는 이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고배를 마신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소. 이렇게 항우를 상대로 싸우기가 무려 70 여 회, 항우의 세력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弱化되어 있소. 그러므로 이번 大戰이야말로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승리를 거두게 되면, 이번 싸움에 나선 모든 장수들은 모두가 列侯에 冊封되어 子孫 萬代까지 영화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니, 모든 將帥들은 심혈을 기울여 이번 전투에 임해 주기 바라오."
모든 장수들은 는 말을 듣고 저마다 異口 同聲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元帥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저희들은 물ㆍ불을 가리지 않고 싸워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이같은 장수들의 맹세를 듣자, 韓信이 즉각 軍令을 내린다.
"이번 싸움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던 '周易陣法'의 '十面埋伏陳'을 펼치도록 하겠소. 8 명의 장군들에게 각각 副將16명과 정병 4萬 5 千씩을 줄 테니, 구리산의 각각 정해진 곳으로 즉시 달려가 매복하고 있다가 楚軍이 몰려 오면, 결정적인 순간에 기습작전으로 그들을 쳐부수도록 하시오.
첫째, 王陵 장군은 구리산 계곡의 서북쪽에 매복한다.
둘째, 盧관 장군은 구리산계곡 북쪽에 매복한다.
셋째, 曺參 장군은 구리산 동북쪽에 매복한다.
넷째, 彭越 장군은 구리산 동남쪽에 매복한다.
다섯째, 英布 장군은 구리산 동쪽에 매복한다.
여섯째, 周勃 장군은 구리산 남쪽에 매복한다.
일곱째, 張耳 장군은 구리산 서남쪽에 매복한다.
여덟째, 장다 장군은 구리산 서쪽에 매복한다.
이렇게 친 八掛陳에, 夏侯嬰 장군은 10만 군사를 이끌고 대왕 전하의 뒤를 따른다.
張良과 陣平 선생께서는 防護使로써 각각 10만 군사와 함께 대왕 전하를 측근에서 호위하소서.
이상과 같은 명령에 諸將들은 바로 군사를 배당 받아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
大元帥 韓信의 명령은 간단 명료하고 거침이 없었다. 장수들은 명령에 따라 군사를 분류하고 조직을 점검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신의 계획대로 항우와 일선에서 처음으로 맞서게 될 漢王 劉邦이 먼저 출발하자, 孔熙와 陣賀가 군사 2 萬 씩을 이끌고 좌우 선발대로 漢王의 앞에서 進軍을 시작하고, 呂馬通과 呂황은 군사 2 萬 씩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근흠과 陣武는 10 萬의 군사를 각각 左右로 나누어 張良과 陣平을 비롯한 중앙의 漢王을 겹겹히 둘러싸고, 그 뒤를 따라 夏侯嬰이 進軍을 시작하니 그 行列의 威容은 문자 그대로 천하 장관이었다.
漢王 劉邦이 3 千 騎만을 측근에 거느리고, 구리산에 가까운 계명산에 도착하여 陣을 치자, 韓信은 수행하던 장수들에게 새로운 군령을 내린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되면 유고, 박소, 손가희, 고기, 장창, 척사 장군은 각각 군사 1천 명을 이끌고 楚軍의 後方을 크게 교란시도록 하라.
그러면 彭城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 나와 그대들을 격퇴 하고자 할 것이니, 그 때를 이용하여 진희, 유가, 부필, 오예 等 네 장수는 각각 精兵 5 千씩을 거느리고 徐州를 돌아 彭城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 城門이 열리고 楚軍이 나오면 그 행렬이 끝날 때, 城 안으로 밀물처럼 쳐 들어가 城을 점령함과 동시에 항우의 일가족을 모조리 生捕하고, 城樓에 붉은 깃발을 높이 올리도록 하라. 城을 점령한 뒤,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 점을 각별히 명심하라 ! "
한신은 또 다른 부대에 다음과 같은 군령을 내린다.
"灌嬰 장군은 대왕께서 항우와 싸움을 시작하거든 즉시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맡으라. 그리하여 항우와 20 여 합쯤, 접전을 벌이다가, 회해 계곡으로 쫒겨 오도록 하라. 그러면 항우는 맹렬히 추격해 올 것이니, 그 때에 楊喜, 楊武, 양익, 여승 等은 각각 5 千 의 군사를 이끌고 烏江 강변에 매복해 있다가 추격해 오는 항우를 공격하여 즉시 생포하도록 하라. 項羽는 천하 무쌍의 무용을 자랑하는 인물이므로 웬만해서는 생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각별히 유념하여 각자 임지로 출발하도록 하라 !"
대원수 한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은 장수들은 각각 임지로 자기가 몰고온 병사들을 이끌고 떠나는데, 王陵을 비롯한 몇몇 將帥들이 한신을 찾아와 묻는다.
"元帥께서 小將에게 구리산 북쪽에 매복해 있으라고 명령하셨사오나, 구리산은 워낙 넓고 광활하여 그 북쪽은 여기서 2백 리나 떨어져 있사옵니다. 그 사이에는 楚軍이 가는 곳마다 陣을 치고 있어서, 어느 길로 가야 적의 눈을 피하여 매복할 수가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韓信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將帥는 戰場의 地理에 정통해야 하는 법이오. 다른 사람도 아닌 王陵 장군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王陵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 沛縣 지방의 지리를 익히지 못하였사옵니다."
한신이 웃으며 대답한다.
"兵法에 아무리 통달하였다고 해도 作戰 지역의 地理를 몰라서는 결코 이길 수가 없는 법이오. 구리산은 徐州에서 10 里쯤 떨어진 곳인데, 계곡이 깊고 많아서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최적의 좋은 산이오. 項羽가 李左車 大夫에 속아 沛縣까지 군사를 몰고 오기는 하였으나, 구리산 계곡이 워낙 깊고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쯤은 군사를 몰고 온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오. 따라서 항우는 한 번 싸워 보아 이기지 못하면 彭城으로 되돌아갈 공산이 크오.
하여, 나는 항우의 근거지를 빼앗기 위해 陣熙, 오예 等 네 장수로 하여금 항우가 없는 틈을 타서 彭城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소. 항우는 한 번 싸워 敗하게 되면 근거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江東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래서 강동으로 가는 길목인 烏江에는 楊武, 여승 等 네 장수를 잠복시켜 놓았소. 결국 항우는 烏江을 건너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손에 생포되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王陵 장군은 신속히 임지에 도착해 매복해 있어야 하오. 장군이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가려면 固陵 북쪽으로 黃河를 따라가다가, 귀덕군을 지나 우성현으로 가면 구리산 북쪽에 무사히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오."
王陵은 韓信의 戰略과 作戰地域 地理의 정통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원수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길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다시 말한다.
"九利山은 九의산이라고도 부르오. 그곳에는 네 개의 산이 있는데, 東北 쪽에 있는 산이 계명산이고, 서쪽에 있는 산은 초왕산, 그 뒤에 있는 산이 성녀산이오. 그 주위는 무려 2백여 리나 되오. 항우가 일단 彭城으로 쫒겨갔다가, 城樓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면, 城을 탈환할 생각을 버리고 반드시 王陵 장군이 매복해 있는 북쪽으로 도망쳐 올 것이니 그때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면, 제아무리 항우라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오. 그리 알고 장군은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시오."
大元帥 韓信의 귀신같이 치밀한 작전 계획을 듣고, 지켜보던 漢王을 비롯한 모든 장수들은 혀를 내두르며 임지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좌중에서 장수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볼멘 소리로 크게 외치는데 또 한사람의 장수도 따라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元帥께서는 저와 무슨 감정이 있으시다고 小將은 아무데도 써주지 않으십니까 ?"
그 목소리가 너무도 크고 거칠어 모두가 그 쪽을 바라보니, 대원수 한신에게 정면으로 항의하고 나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9尺 거구의 舞陽侯 樊噲(번쾌)와 신기 장군이었다.
** 楚漢誌 83
※ 埋伏작전과 突破작전
모든 장수 들에게 제각기 중책을 맡기면서, 유독 번쾌와 신기에게는 마무런 임무도 주지 않아 크게 화가 났던 것이었다.
韓信은 번쾌와 신기를 보고 가볍게 웃으면서,
"내가 번쾌와 신기 장군에게 원수질 일이 있겠소 ? '원수'란 말은 천만부당한 말씀이오."
번쾌는 큰소리로 다시 말한다.
"漢 大王께서 褒中(포중)에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 小將은 수많은 전투에서 한 번도 빠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결전'이라고 누누히 말씀하신 이번 전투에서는, 모든 장수를 총동원 하시면서 저와 신기 장군만 쏙 빼놓으시니,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사옵니까 ?"
한신은 엄숙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정중하게 말한다.
"장군의 말씀대로, 이번 싸움에서는 모든 장수를 총동원 하여 임무를 부여하면서도 장군과 신기 장군을 빼놓은 것은 다 이유가 있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임무가 하나 남아 있는데, 두 분 장군에게 특별히 그 일을 맡기려고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 일은 너무도 중요한 임무라, 만약 그 일이 실패하면, 백만 대군의 승리가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소."
번쾌와 신기는 그제서야 진지한 자세로 돌아서며,
"무슨 일인지는 모르오나 원수께서 그 일을 저희 두 사람에게 맡겨 주시면 小將들은 신명을 다하여 기필코 그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軍法에 의하여 斬刑에 처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저 신기 역시 번쾌 장군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두 장수의 말을 듣고나서, 한신이 엄숙히 말한다.
"지금 우리는 九利山에 군사들을 十面埋伏해 놓고, 項羽를 일거에 생포하려고 하고 있소. 그런데 兩軍이 흩어져서 싸움을 하게 되면, 누가 敵이고 我軍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누군가가 산 위에서 양쪽 군사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우리 軍이 평소 훈련 했던대로 깃발 신호를 통하여 작전을 지시할 旗手가 꼭 필요하오. 그러므로 그 임무는 실로 우리 軍의 勝敗를 판가름 낼 수있는 사실상의 實戰 지휘관이 되는 것이오. 두분 장군이 그 임무를 맡아 주셔야 겠소이다."
번쾌와 신기는 그제서야 얼굴에 희색이 돌며,
"원수께서는 그 임무를 소장 들에게 맡겨 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소장 들은 목숨을 걸고 그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韓信은 그제서야 정식으로 군령을 내린다.
"우리가 그동안 각 나라에서 모여든 군사를 일사 분란하게 훈련시킨 결과를 이번 전투에서 펼쳐 반드시 승리해야 하오. 그러니 번쾌 장군과 신기 장군은 각각 3 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九利山 山上에 도착하여, 敵의 이동 경로를 잘 관찰하여 깃발로 三軍을 총지휘할 준비를 하고 계시오. 두 분 장군 중 한 사람이 여의치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두 장군을 같은 임무에 배치하는 것이오 만약 大事를 그릇칠 경우, 두 분 장군은 군법에 회부하여 엄중 처벌할 것이니, 그 점은 미리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오."
그러자 번쾌가 한신에게 반문한다.
"낮에는 깃발로 신호를 보낼 수 있지만, 야간에는 어떻게 신호를 보내야 하옵니까 ? 혹시 횃불로 신호를 보내라는 말씀입니까 ?"
한신은 머리를 좌우로 저으며,
"야간 전투에서는 어느 軍이나 횃불을 이용함으로, 야간에는 횃불을 써서는 안 되오. 야간에는 지난 수 차례에 걸쳐 훈련한대로 燈籠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도 횃불과 혼동하지 않도록 반드시 우리 軍의 색깔인 붉은 색의 등롱을 써야 하오. 그리고 또 한 가지, 我軍이 야간에 싸울 때는 훈련한 대로 대오를 지어 싸울 것이니, 燈籠과 횃불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敵과 我軍을 식별할 수가 있을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야간에는 등롱의 숫자로써 공격의 방향과 進退를 조절하겠습니다."
번쾌와 신기는 한신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구리산으로 떠난다.
한편,
항우는 많은 정찰병을 보내 敵情을 탐지시켰던바, 그들은 돌아와 異口同聲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漢나라 군사들은 百萬 名이 넘을 뿐만 아니라, 士氣가 무섭게 왕성하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불안하였으나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장수들을 불러 놓고 군령을 내린다.
"敵이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하더라도 나는 싸우기만 하면 이긴다. 내가 20 萬 군사를 이끌고 선두로 치고 나갈 것이니, 鐘離昧 장군과 周蘭 장군은 각각 左軍과 右軍이 되어 나를 돕도록하라.. 나머지 30 萬의 군사는 여섯 명의 장수 들이 각 5 萬 씩 나누어 진격하고, 虞子期 장군은 本陣을 지키고 있으라."
항우는 군령을 내린 後,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일선으로 달려 나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漢王 劉邦은 싸울 용기가 있거든 곧바로 나오거라. 韓信이란 놈처럼 武將답지 못하게 거짓으로 도망가는 수법을 쓰면, 이번에는 용서하지 않겠다."
劉邦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鐵甲을 입힌 龍馬를 타고 孔熙, 陣賀 두 장수를 좌우에 거느리고 항우가 소리치고 있는 최 일선으로 달려 나왔다.
항우는 유방이 나타나자 다시 한 번 유방을 향하여 외친다.
"그대는 지난날 나와 이곳에서 싸워서 크게 敗한바 있거늘, 오늘은 무슨 용기로 또다시 나타났느냐? 그대와 나는 지난 5 년여 동안 70여 회의 전투를 치렀지만, 그대는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똥배짱으로 또다시 나타났느냐?"
劉邦이 크게 웃으며 질책한다.
"그대는 자신의 혈기만 믿고 호언 장담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찌 참다운 용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
나는 오늘 그대에게 지혜로써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나왔노라. 전쟁은 혈기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로 싸워 승리하는 것이다."
"이놈아 ! 싸우는 데는 혈기가 제일이지,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
항우가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자 유방은 하늘을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 우매한 자는 끝까지 어리석은 石頭일 뿐이구나."
항우는 유방이 자신을 라고 하는 말에 화가 치솟아 올라, 장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항우와 유방이 단둘이 싸운다면,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기에 유방이 달려 오는 항우를 옆으로 피하자, 좌우에 대기하고 있던 孔熙와 陣賀가 싸움을 가로맡고 나섰다.
항우는 성난 사자처럼 좌충 우돌로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큰소리로 외친다.
"이 놈들아 ! 너희들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도 들어보지 못하였느냐 ?"
실로 항우의 창검술은 놀라웠다.
그러나 孔熙와 陣賀도 一當百의 용장 들이었다.
1대 2로 싸우기를 무려 30 여 합. 孔熙와 陣賀는 점점 힘에 부쳐가는데, 항우는 싸울수록 왕성해지는 것 같았 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항우는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비호같이 달려들어 공희의 가슴을 長 槍으로 찌른다. 이에 陣賀가 날쎄게 덤벼들자, 항우는 다시 창을 돌려 이번에는 진하를 찔렀는데, 다행스럽게도 진하가 날세게 몸을 숙이며 피하자 창이 빗나가 陣賀의 투구를 찌르니 투구만 땅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진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본진으로 쏜살같이 쫒겨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근흠과 陣武가 달려 나와 항우와 접전을 벌였다.
항우가 근흠과 陣武를 상대로 싸우다가 문득 유방을 찾아 보니, 유방이 저 멀리 언덕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항우는 유방을 발견하자 싸우다 말고 劉邦을 향하여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덕으로 달려 올라가는 도중에 夏侯嬰이 일군을 몰고와 길을 가로막고 싸움을 걸어 온다.
그러나 夏侯嬰은, 항우와 9~10 합을 겨룬 뒤,
동북쪽으로 후퇴하는데 그 틈에 유방의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劉邦이란 놈이 패잔병들과 함께 도망간 것이 분명하니, 바로 추격하라."
항우가 左.右 軍을 거느리고 맨 앞에서 5 里쯤 추격을 계속하니, 어지럽게 쫒겨가던 漢나라 군사들이, 거기서부터는 좌우로 정연하게 양분되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季布가 項羽에게 급히 諫한다.
"敵들이 좌우로 질서 정연하게 갈라지는 것을 보니, 敵은 거짓으로 쫒겨 온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 부근에 분명 伏兵이 있을 것이 오니, 더 이상의 추격은 삼가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 楚漢誌 84
※ 埋伏 작전과 突破 작전 2
項羽는 季布의 諫言을 옳게 여겨, 말을 멈추고 적진을 주시한다. 韓信의 僞裝逃走에 여러 차례 당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추격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漢나라 陣營에서 李左車가 홀로 말을 타고 나오는 게 아닌가 ?
항우는 이좌거를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자신도 모르게 長槍을 움켜 잡으며 외쳤다.
"네 이놈, 잘 만났다. 가짜 항복으로 나를 여기까지 꾀어온 罰로 오늘을 네 제삿날로 만들어주마"
李左車가 말을 멈추더니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지난날 제가 폐하를 찾아갔을 때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폐하께서는 지금 韓信의 계략에 빠져 있사오니, 모든 것을 단념하시고 깨끗이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옵니다. 그러면 제가 漢王에게 稟告하여 목숨만은 살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憤을 참지못하고 벽력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이 우라질 놈아 ! 네 놈이 아직도 나를 조롱해? 내 오늘 너를 잡아 반드시 四枝를 찢어놓고야 말겠다"
며 달려든다.
이좌거가 잡힐 듯 잡힐 듯 도망가니, 항우는 더욱 약이 바짝 올라 추격을 계속한다.
이렇게 10 里쯤 추격하여 어떤 山 기슭에 다다랐을 때, 이좌거는 보이지 않고, 돌연 四方에서 伏兵들이 들고 일어나 일제히 항우를 향하여 공격해 오는 게 아닌가?
항우와 그를 따라온 군사들은 불시에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大敗하고 만다.
그리하여 진용을 가다듬어 퇴각하 는데, 5 里도 채 못 갔을 때, 이번에는 韓信이 大軍을 이끌고 나타났다.
季布와 鐘離昧가 항우를 호위하며 가까스로 군사들을 추스려 本陣쪽으로 후퇴하려는데 이번에는 근흠과 陣武가 나타나 사방에서 겹겹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것이었다.
항우는 혼비백산,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아 결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韓信이 직접 대군을 몰고 추격해 오는데, 그 기세는 눈 사태처럼, 海溢이 덮쳐오듯 거대하였다. 항우는 그런 기세에 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도망가는데, 천만다행으로 周蘭이 대군을 몰고와 항우를 구한다.
항우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본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적의 기습해올지 몰라, 항우는 본진을 지키고 있는 虞子期에게,
"敵의 氣勢가 워낙 막강하여, 우리가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 밤에 일단 彭城으로 철수했다가, 戰力을 재 정비하여 다시 오도록 하자."
그러자 虞自期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뢴다.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사오나, 韓信의 군사들이 이미 彭城을 점령하고 폐하의 일가족을 모조리 생포했다는 소식이 있었사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彭城으로 가시더라도 대책이 없사옵니다."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기절 초풍 할 듯이 놀라며,
"무어라 ? 韓信이 이미 彭城까지 점령해 버렸다고! ?"
項羽가 大驚 失色하는 모습을 보고 虞子期는,
"폐하 !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우리에게는 아직 10 萬의 군사가 남아 있사옵니다.
지금부터 먼 훗날, 海東의 東方禮義之國으로 불리는 朝鮮에 李舜臣 이라는 불세출의 名將은 前任者가 大敗하여 나라가 百尺簡頭에 처해 있을 때, 당시 朝鮮王 宣組에게 "臣에게는 아직 13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라며, 그 적은 數의 함선으로 수 백척의 倭船들을 격파하여 水葬시킨다 하옵니다.
하오니,
우리도 그 일을 거울 삼아 오늘 밤 우리 군사들을 荊楚湖 방면으로 후퇴시켜 후일을 대비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항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李舜臣이라는 조선의 장수가 불과 13척의 배로 數 百척의 倭軍 함대를 격침시킨다는 것이 사실로 일어난다는 말이오?!...^^
허나,
彭城이 함락되었다는 소문은, 敵이 퍼뜨린 유언비어일 가능성이 크니 우리가 다른 곳으로 후퇴하더라도 일단 彭城에 들러 가족들을 데리고 가야 하오. 그래서 山東에 있는 魯郡을 근거지로 再起를 모색할 것이오"
모든 장수들은 항우의 명령에 따라, 한 밤중에 三軍을 거느리고 彭城을 향하여 출발한다.
그리하여 楚軍은 밤을 새워가며 행군하여 蕭縣에 도착하였다. 거기서부터 彭城까지는 50 里 거리였을 뿐이었다.
항우는 그제서야 군사들과 함께 마음놓고 休息을 취하고 있는데, 문득 사방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 되어 척후병을 보내 정탐해 보니, 漢軍이 남쪽에서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고, 동쪽에서는 수 백개의 붉은 깃발이 새벽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데, 그들 역시 수십만은 되어 보인다는 보고가 아닌가 ?
項羽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며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친다.
"敵兵들이 그렇게 많다니, 세상의 군사들이 모두 劉邦의 군사가 되어 버렸다는 말이냐 ?"
鐘離昧가 머리를 조아리며,
"앞에서는 敵兵이 막고있고, 뒤에서는 韓信이 끈질기게 추격해 오는 것으로 보아, 彭城이 함락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사옵니다. 하오니 우리는 신속히 山東으로 피신함이 좋을 듯 하옵니다. 彭城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곳에서 어물쩡거리다가는 再起의 기회를 끝내 놓치게 될 것이옵니다."
周蘭도 뒤를 이어 諫한다.
"鐘離昧 장군의 간언은 지당한 말씀인 줄로 아뢰옵니다. 폐하! 빠른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항우는 격노하여 외친다.
"내 일찍이 수많은 곤경에 처해 보았으나, 完敗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敵軍이 막강하기로, 나를 당할 자가 과연 누가 있단 말이냐? 내가 여기서 도망갈 수는 없다. 그대들은 나를 따라와 내가 敵將들을 때려죽이는 광경을 보고나 있으라. 나는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彭城을 빼앗긴채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항우가 이처럼 완강하게 나오니, 장수들은 하는 수없이 항우의 命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彭城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얼마후, 飛馬가 달려와 항우에게 아뢴다.
"彭城이 敵에게 함락되어 城樓에는 수많은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사옵니다. 또한 그들은 四大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사옵니다."
그 말을 듣자 楚軍 장수들은 크게 낙심하였으나
項羽는 투구 끈을 새로이 졸라매며,
"어떤 일이 있어도 彭城만은 탈환해야 한다!"..
항우가 彭城을 탈환하려고 九利山으로 향하여 나아가는데, 문득 山 위에서 커다란 붉은 깃발이 前後 左右로 움직이자, 사방에서 수많은 伏兵들이 들고 일어나는 게 아닌가 ?
西北方에서는 王陵의 군사가,
北方에서는 盧灌의 군사가,
東北方에선 曺參의 군사가, 東쪽에서는 英布의 군사가,
東南方에선 彭越의 군사가, 南쪽에서는 周勃의 군사가,
西南方에선 張耳의 군사가, 西쪽에서는 장다의 군사가..
이렇게 8개 부대의 군사가 항우를 향하여 천천히 죄어 들어 오니 깊은 산중에 殺氣가 돌기 시작했다.
항우는 이판사판의 심경이 되어, 長槍을 꼬나잡고 8 명의 漢나라 將帥들을 향하여 외친다.
"좋다 ! 여덟 놈이 한꺼번에 덤벼라. 내 槍은 너희들을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항우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8 명의 장수들이 일시에 항우에게 덤벼 들었다.
그러나 항우는 번개처럼 날쌔고 들소같이 강해서 여덟 명의 漢나라 將帥들을 신들린 사람처럼 막아내며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자 楚陣에서도 鐘離昧, 周蘭, 虞自期 등이 총동원 되어, 양군은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진 일퇴를 거듭하더니 마침내 漢軍이 쫒기기 시작한다.
그러자 漢나라 軍에서는 박소, 손가회, 고기, 장창, 척사 등의 제 2陣이 파상 공세를 가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항우는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들과 20 여 합을 싸우면서 손가회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척사를 槍대로 후려갈겨 죽였다.
이에 박소, 고기, 장창 등이 달아나니, 이번에는 성녀산 계곡에서 진희, 전관, 진무, 오예 등이 공격해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 또한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니 항우와 맞짱뜬지 불과 10여 합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후퇴하고 말았던 것이다.
韓信은 에 의한 '十面埋伏' 작전으로 항우를 생포하려고 하였으나, 항우는 60 여 명의 漢나라 將帥 들을 거의 혼자서 막아냈던 것이다.
'十面 埋伏'의 겹겹이 둘러 싼 무서운 전법을 혼자의 힘으로 막아낸 항우는 실로 超人的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그날의 戰鬪가 끝나자 楚나라 장수들은 땅에 엎드려 항우의 위력을 찬탄한다.
"폐하는 진실로 하늘이 내리신 神將이시옵니다. 폐하가 아니면 60 여 명의 敵將들을 어떻게 혼자서 물리칠 수가 있었겠나이까 ?"
사실 항우는 이날 60 여 명의 敵將들과 싸웠지만, 창검을 손에서 떨어뜨린 일이 한 번도 없었고, 큰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
항우는 장수들의 찬사에 龍馬 烏騅의 목덜미를 두드리며,
"오늘 싸움에서 내가 敵의 장수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의 덕분이었소."
그러자 烏騅는 주인의 말을 알아듣는 듯, 두 귀를 쫑끗 세우고 머리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히히힝 ! "
하며 큰소리로 울어댄다.
이윽고 항우가 장중으로 돌아와 투구를 벗으니 虞美人이 달려와,
"폐하께서 무사하심을 감축하나이다."
하고 큰절을 올린다.
項羽는 虞美人을 보고 흔쾌히 웃으며 말한다.
"당신은 오늘 엄청난 敵의 숫자를 보고 무척 놀랐겠지? ! "
우미인은 머리를 조아리며,
"신첩은 폐하의 天威와 모든 장수들의 노력으로 적군을 물리친 것을 무엇보다도 기쁘게 생각하옵니다. 폐하께서는 60 여 명의 敵將을 상대로 싸우시느라고 얼마나 피곤하시겠사옵니까 ?"
"무슨 소리 !
나는 그 옛날 秦나라 장수 章悍과 아홉 번을 싸우면서 여러 날을 굶은 일도 있었지만, 그때도 피로를 몰랐소. 오늘 같은 정도의 싸움으로 피로를 느낄 내가 아니오."
항우의 말을 듣고 좌중은 모두 혀를 내두른다.
이때 周蘭이 항우에게,
"폐하 !
敵들은 오늘의 敗北를 설욕하려고 야간에 기습해 올지도 모르옵니다. 이제는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옵니다."
항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놈들이 그만큼 혼이 났는데, 설마 또다시 덤벼 올라구."
周蘭이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자고로 모든 일은 有備無患이라 일러오고 있사오니, 설사 적이 來襲해 오지 않더라도 대비는 꼭 해두어야 하옵니다."
"그렇다면 四方에 陣을 치고, 中軍을 철저히 방비하게 하라."
항우는 軍令을 내려 놓고 우미인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크게 싸우며 敵도 물리치고, 사랑하는 여인과 더불어 마시는 술맛은 오늘따라 훨씬 감미로웠다.
** 楚漢誌 85
※ 가을 달밤, 퉁소 소리에 무너지는 楚軍
韓信은 項羽를 생포하려고 九利山에 의 덧을 설치 했지만 실패하자 크게 낙심하였다.
그리하여 李左車를 불러 상의한다.
"項羽가 워낙 천하 의 猛將이어서, 우리가 그를 생포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戰車로 구리산을 포위하고 있으면, 항우가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楚軍은 軍糧이 떨어지고 구원병은 오지 못해 결국은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선생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
李左車가 대답한다.
"항우가 제아무리 용맹이 뛰어나다고 하여도 한갖 필부의 만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염려되는 것은 그의 곁에 季布와 周蘭, 鐘離昧 등 몇몇 용장들과, 항우를 지근거리에서 밀착 호위하고 있는 8 千 여 명의 親衛部隊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비록 軍糧이 떨어지더라도, 끝까지 필사적으로 저항해 올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옥쇄를 각오한 그들을 이겨내기가 쉽지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똘똘 뭉쳐 있는 항우의 친위 부대를 어떻게 하면 흐트려 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번 싸움에서의 최대 관건이라고 생각하옵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포위망을 뚫고 江東으로 이동하여 軍備를 새로 갖추게 되면 그때에는 항우를 영원히 정벌할 수가 없을 것이온바, 元帥께서는 그 점에 각별한 대책이 있으셔야 하옵니다."
韓信은 머리를 끄덕이며,
"선생께서는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좋은 계략이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張良 선생을 모셔다가 함께 의논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그것 참 Good Idea 이십니다. 張良 선생이라면 반드시 좋은 묘책을 가지고 계실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한신은 즉석에서 陸賈를 보내 張良을 모셔 왔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과를 낱낱이 설명해주고 나서 물었다.
"항우에게는 季布, 周蘭, 鐘離昧 등 몇몇 충신들과 8 千 여 명의 친위 부대가 철통같이 뭉쳐 있어서 그들의 단결을 깨기 전에는 우리가 승리할 가망이 보이지 않사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결속을 깨뜨릴 수가 있는지,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
張良은 즉석에서,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걱정을 하시오 ? 장수들의 충성심을 무너뜨리고, 친위 부대를 뿔뿔이 흩어 놓기만 하면 항우를 生捕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무슨 수를 써야 그들을 흩어놓을 수가 있는지,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해주소서."
張良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들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는데는 옥퉁소 (玉洞簫)한 가락이면 충분할 것이오."하고 극히 간단하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
한신과 이좌거는 너무도 뜻밖의 대답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옥퉁소 한 가락이면 敵의 결속을 산산조각으로 부술 수가 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
장량은 너털 웃음을 웃으며 말한다.
"두 분은 퉁소도 모르시오 ? 퉁소, 이 퉁소 한 곡만 잘 불면, 親衛部隊 병사들의 결속을 산산조각으로 와해 시킬 수가 있다는 말이오."
"퉁소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소리는 들어왔사오나, 그같은 옥퉁소를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분다는 말씀입니까 ?"
"누가 불기는!?.. 퉁소를 제대로 불 줄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겠소 ? 결국은 내가 불어야 하겠지요."
"옛 ?!.... 선생께서 퉁소를요? "
韓信은 張良의 대답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선생께서 퉁소를 잘 부신다는 말씀을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사온데, 선생께서는 퉁소를 그 처럼 잘 부시옵니까 ?"
하고 물었다.
장량은 싱긋이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퉁소를 배우게 된 연유를 말씀드리지요.
그 옛날 내가 젊었을 때, 나는 하비라는 곳으로 놀러 갔다가, 퉁소를 잘 부는 奇人을 한 사람 만난 일이 있지요.
그 사람은 퉁소를 氣막히게 잘 불었는데, 그 사람 말에 의하면 "퉁소는 모든 古樂의 근본으로서, 황제께서 創始한 악기"라고 하였소. 그 사람은 퉁소를 어찌나 잘 부는지, 그 사람이 퉁소를 불기만 하면 孔雀과 白鶴 들이 몰려와 춤을 추는 것이었소. 그러나 그뿐인줄 아시오 ? 그 사람이 퉁소를 기쁘게 불면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하고, 그 사람이 퉁소를 슬프게 불면 고향을 떠나 왔던 사람들은 고향 그리움에 모두들 눈물을 흘리더란 말이오.
그 사람이 퉁소를 그렇게도 잘 불어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仙人蕭史' (선인소사)라는 별칭으로 불려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퉁소 소리에 반해, 며칠을 두고 퉁소 소리를 들으며 즐기다가, 결국은 그 분에게 퉁소를 배우기로 했지요. 물론 '仙人簫史' 에 비하면 나의 퉁소 실력은 비교가 안 되오. 그러나 나도 퉁소를 어느 정도는 불 수 있다오."
韓信은 그 소리를 듣고 또 한 번 놀라며,
"그러면 선생께서 퉁소로써 항우의 친위 부대를 산산조각으로 흩어 주시옵소서.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꼭 부탁드리옵니다."
하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張良이 웃으며 대답한다.
"나의 퉁소는 '선인 소사' 처럼 神의 경지에 도달해 있지는 못하오. 그러나 고향을 떠나 戰場에 나와있는 병사들이 感傷에 빠지기 쉬운 가을철이라, 내가 불어도 효과는 반드시 있을 것이오."
韓信과 李左車는 張良의 말을 듣고 머리를 숙이며 부탁한다.
"선생께서 그런 秘術을 가지고 계시면, 퉁소를 꼭 불어 주시옵소서. 그래 야만 저희들이 쉽게 승리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장량이 대답한다.
"두 분이 이처럼 부탁하시니 내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소?
그러나 퉁소를 불어서 神效를 거두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걸맞는 노래가 따라야 하는 법이오. 歌詞는 물론 내가 짓겠지만, 퉁소의 曲에 따라 그 노래를 불러 줄 목소리 좋은 歌手도 백여 명 가량 선발하여 연습을 시켜야 하오. 그러므로 아무리 빨라도 준비 기간이 4~5일은 걸릴 것이니 元帥는 그동안 布陳을 주도면밀하게 쳐 놓고 기다리시오."
韓信은 張良의 권고대로 軍糧의 비축상태를 확실하게 점검한 後, 번쾌와 신기에게는 山上에서 敵의 동태를 계속 정찰 감시토록 하는 한편, 灌嬰을 楚軍 진지 좌우에 埋伏시켜 놓았다. 이리하여 항우가 나타나기만 하면 즉각 生捕해 버릴 준비를 갖춰 놓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항우는 聖女山(구리산의 별칭. 우리의 금강산이 4 계절에 따라 호칭이 다르듯 九利山도 마찬가지라..) 기슭에 陣을 치고, 날마다 漢軍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季布와 項佰이 달려와 아뢴다.
"지금 우리는 軍糧도, 馬草도 떨어져 가고 있어서, 군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옵니다. 이럴 때, 敵이 쳐들어 오면 우리는 속수 무책으로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하오니 目前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우선 철수하는 것이 上策일 것 같사옵니다."
항우는 그 보고를 받고 氣가 막혔다.
"우리가 지금 敵에게 몇 겹으로 포위되어 있는데, 어디로 철수하자는 말인가 ?"
"폐하께서는 親衛隊 8 千 명을 거느리고 이곳을 먼저 떠나시어 荊州, 양양을 거쳐 江東으로 가시옵소서. 그러면 저희들도 뒤따라가, 江東에서 再起를 노리도록 하겠습니다.
"敵의 포위망을 어떻게 돌파할 수가 있을지, 그게 문제가 아니오 ?"
項羽의 입에서 이처럼 나약한 말이 나올 줄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기에 季布는 크게 낙심하여 대답한다.
"8 천 여 명의 친위 부대만은 아직도 사기가 꺾이지 않았사오니,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 데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지금까지 보여 주신 勇力으로 敵의 포위망을 돌파해 주신다면, 저희들은 虞后(우후 : 우미인) 를 모시고 뒤따라 퇴각하겠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항우는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면 내일 밤 夜陰을 틈타 철수하기로 합시다."
이리하여 항우는 全軍에 철수 준비령을 내렸다.
때는 고향이 그리워지는 가을철! 楚軍 兵士들은 지루한 싸움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에 부풀어, 모두들 마음이 싱숭생숭 하였다.
楚나라 兵士들은 철수 준비를 서두르며, 자기들끼리 서글픈 말을 지껄여대고 있었다.
"제기랄, 싸움에 이기고 있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인데, 이건 마냥 지고만 있으니 어느 세월에 고향에 돌아갈 수나 있겠나 ?
그러나저러나 고향에 겨신 父母와 妻子는 생사조차 모르고, 우리는 이렇게 배를 곯고 있으니, 이런 상태로 어떻게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漢나라 군사들을 뚫고 나갈 수는 있을지 ?"
"그러게 말이네 ! 이번 싸움에서 살아서 돌아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때마침 가을 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풀벌레 조차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렇게 병사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三三 五五 무리 지어 고향 생각에 잠겨 있는데...
홀연 저 멀리 산 위에서 퉁소 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득하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 楚漢誌 86
※ 張良의 心理戰에 무너지는 楚軍
"아니, 저게 웬 퉁소 소린가?"
楚軍 병사들은 하나 둘, 하던 말을 멈추고 아득히 들려 오는 퉁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퉁소 소리였다.
모두들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여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절로 흘러내리는 애절한 퉁소 소리였다.
퉁소 소리는 이를 듣는 楚軍 병사 들의 심금을 울리고 肝腸을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楚나라 병사들은 너 나 할 것없이 가슴을 메어오는 아픔을 달래며, 아득히 들려오는 퉁소 소리에 넋이 나간듯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윽고,
퉁소 가락에 맞추어 노래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데...
九月深秋兮
四野飛霜
(구월심추혜 사야비상)
구월의 가을은 깊어 들판에는 서리가 내리고
天高水涸兮
寒雁悲愴
(천고수후혜 한안비창)
하늘은 높고 물은 마르니 차가운 가을 기러기떼 슬피우네
崔高戌邊兮
日夜疆場
(최고술변혜 일야강장)
싸움은 그저 고달파 밤낮없이 괴로운데
披堅執銳兮
骨立沙岡
(피견집예혜 골입사강)
敵은 몰아쳐 오고 모래 언덕에는 백골만 서있네
難家十年兮
父母生別
(난가십년혜 부모생별)
고향을 떠난지
어느덧 십 여년,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妻子何堪兮
獨宿閨房
(처자하감혜 독숙규방)
처자식은 얼마나 외로울까?
홀로 자는 규방이여!
故山涸土兮
孰與之守
(고산수토혜 숙여지수)
메마른 고향땅 밭은
누가 가꾸며 누구와 더불어 지킬 것인가
隣家酒熱兮
誰與之嘗
(인가주열혜 수여지상)
이웃에도 술이 익었을텐데 누구와 더불어 마실까
白髮倚門兮
望穿秋月
(백발의문혜 망천추월)
백발의 부모님은 문간에 기대 서
가을 달만 바라보고
穉子啼飢兮
沮斷肝腸
(치자제기혜 저단간장)
어린 것은 배고파 우니 애간장이 끊어질 듯 하구나
胡馬嘶風兮
尙知戀土
(호마시풍혜 상지련토)
말도 바람소리에 울부짖으니
짐승도 고향이 그리워서일까?
人生客久兮
寧忘故鄕
(인생객구혜 영망고향)
나그네 인생길
어찌 고향을 잊을 손가!?..
구슬픈 노래소리는 옥퉁소 가락을 타고 끊어질 듯 이어지며 한없이 계속되자, 하염없이 듣고 있는 楚軍 兵士들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말할 것도 없이 肺腑를 파고드는 哀切한 曲의 옥퉁소와, 가을 달밤 고향 생각에 만사를 잊게 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張良과 그가 선발한 목소리 좋은 부하들이었다.
이렇게 張良과 그의 부하들이 계명산을 오르내리며 옥퉁소를 불며 애잔한 노래를 이어가자, 그 여운은 萬鶴이 九天에서 흐느껴 우는 듯, 때로는 간장을 녹여내는 듯 병사들의 가슴 속을 후벼놓았다.
달빛은 밝고 바람은 찬데 퉁소 소리와 그 가락에 맞춰 부르는 노래소리는 楚軍 병사들의 五腸 六腑를 파고들어 고향 생각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병사가 없었다.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던 楚軍 병사들은 이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탄식한다.
"天地 神明께서 우리를 살려 주시려고 神仙을 보내 퉁소를 불게 하심이 분명하지 않은가 ?"
"조만간 漢軍이 쳐들어 오면 제대로 먹지도 못한 우리가 어떻게 싸울 수가 있는가 ?"
"그러니 天地 神明께서 우리를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저렇듯 哀切한 가락을 들려 주시는 게 아닌가 ? 이제 우리가 이런 啓示를 무시하고 끝까지 싸움에 나서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마침 달이 밝아 고향으로 떠나기도 좋으니, 나는 이제 그만 軍營을 떠나 고향으로 가겠네."
몇몇 병사가 이런 말을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누군가가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좋은 생각일세. 우리가 도망가다 붙잡히기로, 漢王이 설마 우리를 죽이기야 하겠나 ?
그러니 더 이상 주저말고 모두들 고향으로 가세나! "
상황이 이렇게 되자 楚軍 兵士 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武器와 갑옷을 던져 버리고 총총히 고향 하늘이 보이는 쪽으로 떠나기 시작 한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그 數가 불어나 나중에는 10 여 명씩, 20 여 명씩, 공공연하게 떼를 지어 떠나가는 게 아닌가 ?
이렇게 밤이 三更에 이르렀을 때는, 그토록 충성심이 강했던 項羽의 親衛部隊 병사들 거의 모두가 고향을 향해 떠나가 버렸다.
季布와 鐘離昧 項佰등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당황하며 中軍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이미 때는 三更을 넘긴 시간으로, 항우는 우미인과 함께 깊은 잠에 빠졌는지 아무리 인기척을 해도 대답이 없었다.
項佰은 한숨을 쉬며 季布와 鐘離昧에게 묻는다.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親衛兵 들조차 모두 뿔뿔이 달아나 버려서 이제는 우리만 남게 되었소.
만약 漢나라 군사들이 이런 때 쳐들어 오게 되면 대왕은 포로가 되어도 생명을 건질 수가 있겠지만, 우리들은 죽음을 免하기 어려울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도 군사들과 같이 멀리 떠났다가 후일에 다시 모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將軍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
季布와 鐘離昧도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아닌게아니라, 모두가 여기서 함께 죽는 것은 그야말로 개죽음이오. 우리도 병사들 처럼 우선 이곳을 떴다가, 후일을 기약하기로 합시다."
이리하여 楚나라의 核心 지휘관 들 조차 자고 있는 항우를 그냥 둔 채, 제각기 짐을 꾸려 뿔뿔이 떠나기 시작한다.
項佰은 친구인 張良을 찾아 발길은 어느덧 漢軍 陣營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項佰은 자신이 漢王 劉邦과는 妻男 妹夫之間이므로 어쩌면 項羽를 대신하여 후일, 楚의 王后로 책봉될 수도 있을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음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周蘭과 환초는 떠나가는 동료들을 눈물로 비웃으며,
"命理에 눈이 어두워 義理를 배반하는 자는 개만도 못한 者들이다. 우리 두 사람은 大王과 끝까지 生死를 같이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楚나라를 지킬 것이다."
라고 말하며 남아 있는 군사 8백여 명을 규합하여 陣中을 지키고있었다.
이처럼 楚覇王 項羽는 이미 바람앞의 등불의 신세가 되어 버렸건만, 周蘭과 환초만은 끝까지 남아 있는데, 이들을 忠臣이라고 해야할지 우둔한 머저리 들 이라고해야할지 !?...
** 楚漢誌 87
※ 自決하는 虞美人과 項羽
虞兮虞兮 可奈何 (우혜 우혜 가내하)
우미인아! 우미인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항우는 밤 사이에 異變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우미인과 함께 잠을 자다가 문득 잠결에 楚나라의 노랫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 ?
"아니, 이게 웬 楚나라 노래소리냐 ? 내가 지금 고향에 돌아왔단 말이냐 ?"
항우는 놀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 보아도 그 곳은 틀림없는 軍營 막사가 아닌가 ?
그러자 항우는,
"밖에 누구 없느냐 !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周蘭과 환초가 황급히 달려와 울며 아뢴다.
"폐하 !
韓信이란 놈이 간밤에 山上에서 퉁소로 楚나라 노래를 불러대는 바람에, 우리 군사들이 심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고향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8천여 명에 달하던 친위대 병사들은 물론, 季布와 鐘離昧, 項佰 장군조차 떠나버려서, 이제 남은 군사는 우리 두 사람과 8 백 여 명의 결사대 뿐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기절할 듯 놀랐다.
"뭐?.... 季布와 鐘離昧와 項佰까지 달아나 버렸다고 ? "
"그러하옵니다. 폐하. 모두 달아나 버려서 이제는 敵을 막아낼 수가 없사오니, 폐하께서도 몸을 피하셔야 하옵니다."
그 말을 들은 항우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는다.
"세상에 이럴 수가 ! 오!.., 하늘이시여! 정녕 나를, 나를 버리시나이까 ?"
그 탄식이 너무도 비통하여 周蘭과 환초도 흐느껴 울었다.
虞美人은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항우와 함께 듣고, 눈만 커다랗게 뜬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온 몸을 떨고만 있었다.
항우는 그러한 우미인을 돌아보며,
"내가 당신과 함께 槍劍과 화살이 난무하는 敵의 포위망을 뚫고 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가 敵의 포위망을 뚫고 싸우는 틈을 보아서 피신하시오. 이제 나는 당신과 헤어져 어디론지 도망 갈 수밖에 없게 되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구려. 그대와 더불어 부부의 情을 나눠 온지가 어언 7~8 년.
그 거친 戰亂 中에도 떨어지지 않았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기약없는 이별을 해야하니 가슴이 미어지는구려 !"
하며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것이었다.
項羽에게는 나라가 亡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아팠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우미인과 영원히 헤어진다는 사실이 가슴을 더 아프게 했던 것이다.
우미인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땅에 쓰러져 울기만 하였다.
애절한 슬픔이 계속되자, 항우는 우미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한다.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 그대는 속히 일어나 살 길을 찾도록하시오 ! "
우미인은 정신없이 흐느끼다가, 문득 얼굴을 들어 항우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말한다.
"폐하 !
지어미가 지아비를 떠나 어디로 가라고 신첩을 버리시려 하시옵니까 ?! 신첩은 폐하의 말씀이 너무도 원망스럽사옵니다 ! "
항우는 북받치는 슬픔을 씹어 삼키며 냉정한 어조로 달래듯이 말한다.
"당신은 아직도 젊은 몸이니, 어디를 간들 살 길이 없겠소 ? 나를 생각하지 말고 빨리 이곳을 뜨도록 하오."
우미인은 탄식하며,
"신첩은 그동안 폐하의 은총을 입어 오면서, 언제든지 폐하와 生死를 같이할 결심을 해왔사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혼자만 살 길을 찾아 떠나라고 하시니, 그 무슨 無情한 말씀을 그리 하시옵니까."
항우는 가슴이 메이는듯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나라가 亡했으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죽어야 할 몸이오. 그러나 앞길이 창창한 그대까지 나를 따라 죽을 필요는 없지 않소 ?"
항우는 그 한 마디를 던지고 부랴부랴 갑옷을 추스려 입고 밖으로 나와 愛馬 烏騅의 등에 올라타 박차를 가한다. 아내를 내버려둔 채 자기만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길을 찾아 나서려는 것이었다.
항우가 우미인을 두고 혼자 敵陣을 돌파하려는 것은 그만큼 우미인을 아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항우가 말 위에 올라 아무리 박차를 가해도, 烏騅는 웬일인지 그 자리에 선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때, 우미인이 황급히 쫒아 나와 항우의 옷소매를 움켜 잡고 애원하듯 말한다.
"폐하 ! 아무리 떠나시더라도 신첩의 離別酒 한 잔은 드시고 떠나셔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
"오!, 당신이 주는 이별주를 내 어찌 마다 하겠소? "
우미인은 몸소 술병을 들고 나와 馬上의 항우에게 이별주를 따라 올리며 말한다.
"폐하께서는 신첩의 仙女舞를 무척 좋아하셨으니, 마지막으로 仙女舞를 한 사위 추어 올리겠나이다."
그리고나서, 虞美人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仙女舞를 추기 시작한다.
그녀의 선녀무는 그야말로 천하 일품이었다. 사뿐사뿐 옮기는 발걸음에서는 三炫六角이 소리 없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고, 긴 옷소매를 하늘을 향해 치켜올릴 때는 선녀가 羽化登仙하는 것 같아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춤에서는 슬픔이 가득해보이는지라 손에 술잔을 든 채 우미인의 선녀무를 바라보고 있는 항우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다.
항우는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는 虞美人을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춤사위에 맞추어 즉흥시를 읊는다.
"力拔山兮 氣蓋世 ( 역발산혜 기개세 )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천하를 덮었건만
時不利兮 騅弗逝 (시불리혜 추불서)
때가 불리한지 오추조차 나가지 않는구나
騅弗逝兮 可奈何 (추불서혜 가내하)
오추가 나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虞兮虞兮 可奈何 (우혜우혜 가내하)
우미인아 우미인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虞兮虞兮 可奈何 (우혜우혜 가내하)
...
항우가 즉흥시를 눈물로 읊고 나자, 우미인은 춤을 추며 즉석에서 和答한다.
"漢兵巳略 四方楚歌聲
(한병사략 사방초가성)
漢나라 軍이 쳐들어와 사방에는 楚나라 노래뿐이고
大王意氣盡 賤妾何聊生
(대왕의기진 천첩하료생)
대왕께서 뜻을 잃으셨는데
신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오리까?"
항우와 우미인은 이별이 슬퍼 노래를 주고 받으며 언제까지나 헤어질 줄을 모른다.
夫婦의 애절한 이별을 눈물로 지켜 보던 周蘭과 환초는 먼 동이 터오는 하늘을 손으로 가르키며 항우에게 아뢴다.
"폐하 !
동이 터오기 시작하니, 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옵니다. 어서 빨리 떠나셔야 하옵니다."
항우는 그제서야 달래듯 말한다.
"敵들이 몰려오기 전에 이제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겠소. 당신도 속히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토록 하오. 우리들의 운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오."
우미인은 항우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호소한다.
"대왕께서 혼자만 떠나시면, 저더러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시옵니까 ?"
항우가 대답한다.
"당신은 罪가 없어 劉邦도 당신은 결코 죽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마오."
그러자 우미인은 몸부림치며 외친다.
"신첩은 폐하와 함께 도망가다가 적의 손에 붙잡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이옵니다. 설사 肉身이 塵土가 되더도 혼백만은 폐하를 따라 楚나라로 돌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안 될 말이오. 아무 罪도 없는 당신을 내 어찌 나와 함께 죽자고 할 수가 있겠소 ? 나는 도망치다 여의치않으면 죽을 결심이지만, 당신까지 죽게할 수는 없소."
우미인은 항우의 옷소매를 움켜잡으며 다시금 애원하듯 말한다.
"정말로 그러시다면 신첩의 마지막 소원 하나만 들어주시옵소서."
항우도 만은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이 판국에 무슨 소원이 있단 말이오?. 그것만은 들어 줄테니, 어서 말해 보오."
우미인이 말한다.
"바라옵건대 폐하의 寶劍을 신첩에게 이별의 情표로 내려 주시옵소서. 신첩은 어디를 가나 그 보검을 폐하로 알고 받들어 모시겠사옵니다."
눈물겨운 아내의 마지막 간청이었다.
항우도 그것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허리에 차고 있던 보검을 풀어주며 말한다.
"그런 소원이라면 어찌 들어주지 않겠소. 어서 받으오."
虞美人은 보검을 받아들고 나더니, 비장한 어조로 항우를 부른다.
"폐하 ! "
"무슨 일이오 ? "
"신첩이 폐하를 따라 나서면 폐하는 저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실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신첩은 이 자리에서 죽기로 결심하였으니, 폐하께서는 이 순간부터 신첩을 잊으시고 속히 피하시옵소서."
虞美人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그 자리에서 項羽로부터 받아든 보검으로 가슴을 찔러 앞으로 엎어지며 자결해 버리는 것이었다.
우미인이 항우에게 이별의 보검을 달라고 한 것은 스스로 자결을 하기위한 구실이었던 것이었다.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참극을 눈앞에서 당한 항우는 말에서 뛰어내려 우미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통곡한다.
한참 동안 지켜보던 周蘭이 다가와 항우를 잡아 흔들며 諫한다.
"폐하!
지금 더 이상 슬픔에 잠기실 때가 아니옵니다. 사태가 위급하오니 속히 이 자리를 뜨셔야 하옵니다."
항우는 눈물로써 우미인의 시신과 작별 하고, 8백여 騎의 부하들과 함께 눈물을 뿌리며 도망길에 올랐다.
** 楚漢誌 88
※ 生死의 기로에 선 項羽
얼마를 앞으로 달려 가니, 漢軍의 포위망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항우는 일행을 둘 로 나눠, 자신이 먼저 포위망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데. 漢나라 장수 灌嬰이 부하 兵士들을 이끌고 항우의 앞길을 막아선다.
항우가 질풍같이 달려 나가 관영과 싸우기를 20 여 합, 灌嬰이 힘과 技에 밀리자 후퇴한다.
그러나 항우는 추격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간다.
이때,
번쾌가 山上에서 이 광경을 보고 붉은 깃발을 휘두르려 하자, 신기가 앞으로 나서며,
"장군, 내 항우에게 진 빚이 있소이다.
이곳은 장군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으니 小將이 항우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樊噲가 그 뜻을 알아채고 머리를 끄덕이자 신기는 말을 몰아 쏜살같이 산을 내려간다. 이에 樊噲는 前後 左右 四方으로 붉은 깃발을 휘두르니, 이번에는 漢나라 군사들이 사방 팔방에서 동시에 들고일어나는 것이었다.
한편,
周蘭과 환초도 항우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漢나라 將帥 曺參이 유가, 왕수, 주종, 이봉 등의 네명의 부장 들과 함께 일제히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周蘭과 환초는 필사적으로 싸워 漢軍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뒤를 돌아 보니, 남아 있는 병사가 고작 20 여 騎 뿐이 아닌가 ?
"이제 앞으로도 漢軍을 수없이 만나게 될 텐데, 20 여 騎로 어찌 그들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 그렇다면 敵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어 버리자 ! "
周蘭과 환초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니, 남아있던 20 여 명의 親衛隊 병사들도 두 장수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떠오르는 Alamo 전투! Texas를 두고 미국 이주민 민병대와 멕시코 정규군과의 싸움!
스페인이 점령한 뒤, 당시 멕시코 영토가 되었던 텍사스의 Alamo에서 미국의 이주민 민병대와 멕시코 정규군과의 싸움에서 민병대 187명 전원이 玉碎하는데...
결국 그들의 죽음은 텍사스가 미국의 영토가 되게하는 밑거름이 된다.
韓半島의 3 배보다도 더 넓은 자원의 寶庫 Texas!
추신수가 뛰고있는 그곳이...)
項羽는 周蘭과 환초가 自決한 사실도 모른채, 1백 여 騎의 부하들과 함께 漢軍의 포위망을 뚫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 나갔다.
그리하여 淮河(회하)에 당도하니, 마침 물가에 나룻배 한 척이 있었다.
"모두들 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도록 하자 ! "
나룻배는 몇 번을 왕복한 끝에 항우를 비롯한 백여 명의 親衛隊는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또다시 떠오르는 壬辰倭亂!
都城과 백성을 버리고 임진강을 건너 도망가려는 朝鮮王朝 最惡으로 비겁한 君主 宣祖가 떠오른다.)
그러나 거기서 10 여 里를 더 달려 陰陵이라는 곳에 당도하니, 산 길은 두 갈래로 갈려져 있어, 江東으로 가는 길이 어느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마침 늙은 농부 하나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항우는 농부에게 달려가 물었다.
"여보게 ! 江東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
"....."
농부는 아무 대답도 없이 항우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다. 그는 속으로,
(이 사람이 비단 戰袍에 황금 투구를 쓴 것으로 보아, 보통 사람이 아닌게 분명하다 ! 혹시 楚覇王이 아닐까 ? 楚覇王이라면 우리 백성들을 그렇게도 괴롭혀 온 인물이니, 이런 자를 도와주면 내가 天罰을 받지...)
늙은 농부는 이런 생각을 하느라고 대답을 하지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항우는 다급한 어조로 다시 묻는다.
"이 사람아 ! 나는 楚覇王일세. 지금 漢나라 군사들에게 쫒겨 江東으로 후퇴하는 길이니, 길을 빨리 알려 주게 ! "
농부는 상대방이 스스로 楚覇王 項羽임을 밝히자,
"江東으로 가는 길은 왼쪽 길이옵니다."
하고 일부러 반대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것이었다.
항우는 농부의 말을 믿고 그 길로 달려 가다가 깊은 수렁을 만나 무진 애를 먹었다.
가까스로 수렁에서 빠져나와 얼마를 더 달려가다 보니 우연히도 그 지방 太守인 楊喜를 만나게 되었다.
楊喜는 一軍의 군사를 몰아 급히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항우는 크게 반가워하며 양희에게 사정하듯 말한다.
"여보게 楊喜 장군 ! 그대는 나의 부하가 아니었던가 ? 내 지금 江東으로 가는 길이니, 그대도 나와 함께 강동으로 가세. 내가 강동에서 再起하면 자네를 萬戶侯에 封해 주겠네."
그러자 楊喜가 냉소하며,
"당신은 賢士들의 忠諫을 듣지 않았다가 오늘날 이렇게 된 게 아니오이까 ? 당신이 강동으로 도망친다 한들 어떻게 再起를 한단 말이오 ? 나는 이미 漢王에게 귀순하여 당신을 생포하러 나온 사람이오. 그러나 옛날의 義理를 생각해 당신을 차마 내 손으로 잡아 갈 수는 없으니 당신도 나처럼 漢王에게 귀순하여 오래도록 영화를 누리면 어떻겠소이까?."
項羽는 楊喜에게 항복 권고를 듣는 순간, 모욕감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하여 장창을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며 양희를 찔러 죽이려고 하니, 양희가 날쎄게 몸을 피하며 정면으로 덤벼든다.
두 장수가 무섭게 싸우기를 10 여 합, 기회를 잡은 항우가 양희의 머리를 철퇴로 내려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항우의 투구가 벼락에 맞은 것처럼 화살에 꿰뚫려 날아가버리는게 아닌가?
바로 신기가 뒤쫒아와 항우의 황금투구 상단을 꿰뚫어 날려버린 것이었다.
날아오는 호랑이 정수리를 정확히 꿰뚫어 즉사시킨 신기!
당대의 神宮 李廣 못지않다는 신기의 神技같은 弓術로 황금투구가 날아가버린 항우는 혼비백산하여 무조건 도망치고자 하는데, 樊噲의 깃발신호에 따라
양무, 왕익, 여승, 呂馬通 等의 猛將들이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항우에게 달려드니
항우도 마음을 고쳐먹고 그 많은 漢나라 將帥 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生死를 걸고 싸우는 무서운 싸움이었다. 項羽의 용맹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7~8 명의 漢나라 猛將들과 싸우는데도, 오히려 항우가 유리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英布, 彭越, 王陵, 周勃 등이 한꺼번에 항우에게 덤벼드니
항우는 그들을 상대로 10 여 합을 더 싸우다가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東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한다.
항우가 타고 있는 는 천하의 名馬라, 그를 따라잡을 장수는 아무도 없었다.
항우는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깊은 산길을 무작정 달렸다. 그리하여 50~60 里쯤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그를 따라오는 부하는 불과 50 여 騎에 불과하였다.
항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덧 해는 서산 너머로 저물어 가는데, 모두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부하들이 항우에게 아뢴다.
"말(馬)도 그렇지만, 우선 저희들이 배가 고파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사옵니다. 敵들이 여기까지는 쫒아오지 못할 것이오니, 오늘 밤은 가까운 民家를 찾아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야간에 진군을 무리하게 계속하면 어떤 불상사가 있을지 염려 되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숲속에 희미한 불빛이 하나 보였다.
"저기에 人家가 있는 것 같으니, 거기로 가보자."
일행이 말을 끌고 불빛을 찾아가 보니, 그 집은 여염집이 아니라 興敎院이라는 古院이었다. 그곳은 뜰 앞에 시내가 흐르고 있고, 마당에는 기묘한 괴석들이 층층을 이루고 있었다.
안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데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항우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부하에게 말했다.
"칼날이 무뎌졌으니, 여기서 내 칼을 좀 갈아 다오 ! "
그러나 부하들은 일어날 생각도 않고 주저앉은 채 대답한다.
"지금은 한 발짝도 움직일 기운이 없사오니, 저녁이나 먹은 후, 갈아 드리겠습니다."
皇命을 거역하는 것은 斬刑에 해당한다.
그러나 항우는 마지막까지 자기를 따라온 그들의 충성이 너무도 고마워, 그 누구도 罰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칼만은 미리 갈아 두지 않을 수가 없기에, 항우는 몸소 물가로 걸어가 자신의 칼을 손수 갈기 시작한다.
항우는 장군이 된 이후, 제 손으로 칼을 갈아 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항우는 칼을 다 갈고 난 뒤에, 愛馬 에게 물도 손수 먹여 주었다.
이렇게 부하 군사들 조차 꼼짝도 할수 없이 피로에 지쳐 있었던 것이었다.
항우는 말에게 물까지 먹여 주고 나서 흥교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후원으로 들어가 보니 4~5명의 백발 노인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 큰 院에 사람이 이렇게도 적으니 웬일이오 ?"
항우의 질문에 노인들이 대답한다.
"이곳에는 院生들이 20 여 명이나 있었으나,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모두들 피난을 가버리고, 우리 같은 늙은이 들만 남아 院을 지키고 있다오. 그런데 貴公은 누구신데 이 밤중에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
항우가 대답한다.
"나는 楚覇王이오. 戰鬪에 敗하여 피신해 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
노인들은 그 말을 듣자 일제히 땅에 엎드리며 말한다.
"폐하이신 줄 모르고 大罪를 지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항우는 그들을 일으켜 앉히며 말한다.
"괜찮소. 그대들은 속히 일어나 밥이나 좀 지어 주시오. 우리들은 지금 하루 종일 싸우느라 밥 한술 먹어 보질 못하였소. 밥을 지어 준다면, 고마움의 댓가로 江東에 돌아가는 길로 백 섬의 쌀로써 갚아 드리겠소."
노인들 중 유식한 노인 한 사람이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이곳은 楚나라의 경계 안에 있는 땅이옵니다. 저희들이 폐하께 진지를 지어 올리기로, 어찌 황공하게도 보상을 바라겠사옵니까? 진지를 넉넉히 지어 올릴 터이오니, 마음껏 드시옵소서."
그리고 노인들은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차려 왔는데, 식탁에는 온갖 山菜가 푸짐히 차려져 있었다.
항우와 그 부하들은 노인들 덕분에 여러 날 만에 포식하고, 그날 밤을 편히 쉴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잠자리에 들게 된 항우는 새벽녘에 있었던 사랑하는 아내, 虞美人과 헤어지기 前, 詩의 마지막 구절이 자꾸만 떠올라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다.
虞兮 虞兮 可奈何
(우혜 우혜 가내하)
虞美人, 虞美人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 力拔山氣蓋世의 楚覇王 項羽도 이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마감합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虞美人을 먼저 보내고 烏江 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마는 이 아픈 역사를 누구인들 안타까워 하지 않을까?
** 楚漢誌 89
※ 英雄의 最後 1
興敎院 노인들에게 저녁 대접을 받은 항우는 하루종일 漢將들과 싸우느라고 무척 피곤하였으나, 虞美人과의 死別의 슬픔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에 새벽녘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들게 되었는데, 꿈을 꾸게된다.
項羽는 저멀리 地平線에서 아침 해가 힘차게 솟아 오르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황금빛 태양이었다.
항우는 연실 눈을 비비며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太陽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 劉邦이 五色이 영롱한 구름을 타고 나타나더니 그 찬란한 태양을 가슴 가득히 품어 버리는 게 아닌가 ?
그 광경을 보는 순간, 項羽는 劉邦으로부터 태양을 빼앗으려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러나 項羽가 劉邦을 따라잡는 순간, 劉邦이 項羽를 발길로 차더니 저 멀리 서쪽하늘로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유방이 태양을 안고 사라진 서쪽 하늘가에는 祥光 (상광 : 성스러운 빛)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고,
하늘과 땅에서는 향기로운 내음이 그윽하게 풍겨 오고 있었다.
(아!,
내가 劉邦에게 태양을 빼앗기고 말았단 말인가 ?! )
항우는 발을 구르며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르다가, 자기 고함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항우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비통하게 탄식한다.
"아!,
나의 천하 통일의 꿈은 이제 끝나는 모양이구나 ! "
마침 그때 밖에서 군사를 불러 모으는 고각(鼓角: 북소리) 소리가 나더니 별안간 함성이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보나마나 항우와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興敎院이 漢軍에게 포위 당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항우는 武裝을 갖추자마자 밖으로 달려 나와 무작정 숲속으로 말을 몰았다.
어느덧 먼동이 훤하게 밝아오는데, 가는 곳마다 漢나라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 함성을 지른다.
項羽는 漢나라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거나 말거나, 쏜살같이 오추마를 몰아 달려나갔다.
이처럼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데 문득 漢將 관영이 앞을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항우야 ! 어디로 가느냐. 너는 이미 독 안에 든 쥐로다. 네 목을 나에게 맡겨라 ! "
항우는 말을 멈추며 관영을 노려보다가 저돌적으로 관영에게 덤벼들었다.
그리하여 10여 합쯤 싸우는데, 이번에는 양무, 여승, 진무, 근흠 등 猛將들이 한꺼번에 돌진해오는 것이었다.
항우는 勢不利를 깨닫고 다시 도망가기 시작한다.
만약 추격해 오는 자가 있으면, 후퇴하면서 한 놈씩 처치해 버릴 계획이었으나
적장들은 더 이상 추격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50 里쯤 달려가니 烏江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항우는 그제서야 말을 멈추고 강물을 내려다 보았다.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있건만, 이를 바라보는 항우의 심정은 마냥 처량하기만 하였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
갑자기 밀려오는 아득한 생각을 접고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산과 들에 우글대는 것은 오로지 漢軍뿐이 아닌가 ?
바로 며칠 전만 하더라도 수 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였다. 그때는 어느 누구도 그의 앞에서는 감히 얼굴조차 들지 못했었다. 그야말로 자신은 天下의 有一 無二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
그러나 그토록 많던 부하들과 수많은 백성들은 다 어디로 가고, 그토록 넓던 封土는 어디로 사라지고, 이제는 갈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
항우는 山野에 깔려있는 漢軍들을 눈물로 바라보며 혼자서 탄식한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 한들 저 들의 포위망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 어젯밤의 꿈으로 나의 운명은 이미 끝났음이 분명하구나 !
아!,
하늘이 정녕 나를 버리시는구나 ! )
그제서야 뒤를 돌아다보니, 자기를 따라온 부하는 겨우 20 여 騎에 지나지 않았다.
항우는 그들을 모아 놓고 말한다.
"나는 군사를 일으킨 지 8년간 수백 번을 싸워 왔지만, 완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굴복하지 않은 장수는 한 사람도 없어, 마침내 나는 覇王의 자리를 차지했건만,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이 나를 버렸기때문이다. 사태가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내 마지막으로 세 번만 더 싸워 보겠다. 세 번을 싸워서 지게되면, 하늘이 나를 버린 것이니, 나를 後世에 용기 없는 놈이라고 부르지 마라."
"....."
20 여 騎의 부하들은 머리를 숙연히 숙인채 말이 없었다.
항우가 다시 말한다.
"내가 혼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갈 테니, 너희들은 각자 흩어져, 포위망을 벗어나면 東山 밑에 숨어 나를 기다리거라."
부하들은 그제서야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저희들은 최후까지 폐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항우는 부하들이 제각기 흩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으로 적진을 날카롭게 살펴보았다.
最後의 일전을 준비하는 항우의 마음은 이미 生과 死를 떠난 超人의 모습이었다.
항우는 마침내 에게 박차를 가하며 적진을 향하여 질풍 같이 돌진한다.
그리하여 마주 달려 나오는 敵將 하나를 단 칼에 베어버리니, 뒤따라 오던 군사들이 혼비 백산하며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버린다.
항우가 최초의 포위망을 돌파하니, 이번에는 제 2의 포위망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적장은 양희였고, 양희는 항우를 보자마자 제풀에 도망가 버린다.
항우가 두 번째의 포위망을 뚫고 東山에 와 보니, 20 여 騎의 부하들이 그곳에서 항우를 감격의 눈물로 반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漢軍은 어느 새 또 다시 3 面으로 項羽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
항우는 적진을 노려보며 부하들에게 비장한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닥치는대로 적을 격파하는 수밖에 없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뒤를 따르라."
항우는 명령을 내리자마자 비호같이 달려나가 싸웠다. 그리하여 漢將 이우와 도위, 왕항 등을 한칼에 베어 버리고 달려드는 兵士들도 수백 명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뒤이어 漢將 여승과 양무가 數 千의 군사를 몰고 달려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여승과 양무는 10합도 채 싸워 보지 못하고 후퇴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부대가 달려나왔는데, 그러나 그들도 항우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 하였다.
이날 항우는 연달아 아홉 번을 싸워, 한나라 장수 아홉 명을 죽이고 덤벼들던 적군 병사들도 수 백명을 죽였지만 항우 자신은 큰 상처는 거의 입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가자 漢나라 군사들은 모두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러자 남은 부하들이 땅에 엎드려 항우에게 큰절을 올리며 아뢴다.
"폐하께서는 세 번만 싸우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아홉 번을 싸우셔서 敵將 아홉을 참살하셨고, 敵兵도 수천 명을 제압하셨습니다. 폐하야말로 사람이 아닌 天神 이시옵니다."
항우가 쓸쓸히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아무리 용맹스럽기로 天運이 따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우선 오늘 밤 잠잘 곳이나 찾아 보자."
일행이 烏江 북쪽 강가에 도착해 보니, 동산 고을의 亭長이 강가에 배를 대놓고 있다가 항우를 보자 말한다.
"江東이 좁다고 하오나, 地廣(지광 : 땅의 넓기)은 千 里가 넘사옵니다. 그곳에 가시면 수십만 군사를 쉽게 양성할 수 있사오니 폐하께서는 강을 속히 건너도록 하시옵소서. 만약 적들의 눈에 띄면 이나마도 건너기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항우는 배에 오를 생각을 하지않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숙연히 바라보며 탄식한다.
"하늘이 이미 나를 버리셨는데 江을 건너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그 옛날 江東에서는 8 千 명의 親衛 部隊가 나를 따라와 주었지만, 이제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으니, 내 무슨 면목으로 강동 땅을 다시 밟는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항우의 두 볼에서는 굵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 楚漢誌 90
※ 英雄의 最後 2
* 오늘로써 項羽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짧지만 파란만장한 그의 生을 마감한다. 이에 따라 劉邦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지만 건국 初期에 벌어지는 혼란期에 불만을 품은 부하 장수들의 반란, 後繼者에게 걸림돌이 될수있는 천하통일의 特等 功臣 韓信의 제거와 英布, 彭越 등의 죽임은 朝鮮 건국 初期, 李방원이 王權 강화와 후계자 의 안전한 장래를 위해 外戚 들과 功臣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모습과 오버랩되며 더욱 더 다음 편을 기다리게 한다.
"정치에는 영원한 친구도 敵도 없다"
는 東西 古今의 진리와, 권력의 속성을 보는 것은 어지러운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데, 먼 장래를 바라볼 줄 아는 천하의 智略家 張良이 落鄕을 끈질기게 고집함으로써 결국 숙청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며 司馬遷의 명언이 또다시 떠오른다.
("頂上에 오래 머무르지 말아라")
**********************
亭長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폐하!
생각을 달리해보 시옵소서. 자고로 勝敗는 兵家之常事라고 하지않았사옵니까?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로 劉邦은 수수 대전에서 폐하에게 大敗하여 20 여 萬의 군사들을 송두리째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수수 大江은 漢나라 軍士들의 시체로 뒤덮여 물조차 흐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劉邦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홀로 산 넘고 물을 건너, 오늘날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 아니옵니까?. 폐하의 지금의 형편도 지난날 劉邦의 경우와 다름이 없사온데 어인 일로 체념하시옵니까?
옛 말에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않사옵니까?. 하오니,
폐하!
지금의 상황을 추스리시어 어서 江을 건너시도록 하옵소서."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그대의 말이 옳다 하여도 나는 江東 땅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겠네 ! 수많은 젊은이 들을 죽게 만든 내가 무슨 낯으로 그 많은 그들의 父兄들을 볼 수가 있단 말인가 ?"
亭長은 더 이상 渡江을 권할 수가 없어서 그저 망연히 서있기만 하였다.
그러자 항우가 정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말한다.
"그대의 厚意에 보답할 길이 없어 안타깝구나."
그러면서 애마 烏騅馬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말은 하루에 千 里를 달리는 名馬일세. 나는 오랫동안 이 말을 타고 수백 번의 싸움터를 달렸지만, 가는 곳마다 나를 당해 낸 敵이 없었다네. 이 말을 그냥 두면 반드시 유방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니, 그대의 후의에 보답하는 뜻으로 이 말을 자네에게 주겠네.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게."
정장은 깜짝 놀라며 사양한다.
"폐하!
어인 말씀이시 옵니까 ? 폐하의 愛馬를 어찌 小人이 받을 수 있사옵니까 ?"
"아닐세. 나는 이미 이 말을 가질 자격이 없게 되어서 그대에게 주려는 것이니 사양 말고 받아 주게."
그러자 < 烏騅馬>도 항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항우의 얼굴을 바라 보며 큰소리로 울부짖는 것이었다.
항우는 烏騅의 고삐를 잡고 얼굴과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와 나의 인연은 오늘로써 끝이 나는데, 우리가 무슨 미련을 더 가질 수 있겠느냐. 그동안 너는 나를 위해 너무나도 수고가 많았다. 지금부터는 새 주인을 따라가, 여생을 편히 보내도록 하거라. 나는 죽든 살든 너의 공로를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다."
烏騅馬는 주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듯 얼굴을 숙인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항우는 그런 烏騅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비록 말 못하는 畜生이지만, 戰場에서 생사 고락을 같이 해오는 동안 정신적으로 완전히 한몸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구나 바로 전날에는 그토록 아끼던 虞美人과 死別한 마당에, 이제 제몸처럼 아끼던 烏騅와도 生 이별을 하자니 항우의 비통함은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항우는 烏騅의 목덜미를 정겹게 두드려 주면서,
" 烏騅야 ! 너는 내 말대로 정장을 따라 烏江을 건너가거라. 너와 나의 인연이 남달리 깊은 것은 사실이지만, 만나면 이별이라는게 있는데 우리가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된 것 같구나."
烏騅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여보게 亭長 !
어서 烏騅馬를 데리고 강을 건너가게."
항우의 명에 의해 오추를 배에 태우려 해도, 烏騅는 한사코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있었다.
그러자 항우가 烏騅의 고삐를 끌어당기며,
"평소에는 내 말을 그렇게도 잘 듣던 네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도 애를 먹이느냐 ?"
하고 나무라니 烏騅는 그제서야 순순히 배에 오른다.
烏騅馬는 배에 오르자마자 항우가 보이는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
이윽고 배가 떠나자, 항우는 강가에 우뚝 서서 떠나가는 烏騅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배는 점차 항우에게서 멀어져서 이제는 서로가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을 때, 船上의 烏騅馬는 별안간 괴상한 울음 소리를 두 세 번 지르더니, 그대로 어둠에 묻힌 江으로 뛰어들어 죽어 버리는 것이었다.
烏騅馬의 자살은 동물로써는 참으로 靈妙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항우는 멀리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가슴을 움켜잡고 울었다.
그때였다.
횃불을 치켜 든 漢나라 군사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었다.
항우는 말도 없이, 남아 있는 20 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몰려오는 漢軍 들과 좌충 우돌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어둠 속에서 수백 명의 漢나라 병사를 쓰러뜨렸는데
항우 자신도 전신에 10 여 곳의 상처를 입게되었다.
항우가 '이제는 끝났구나' 하고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呂馬通이 손에 손에 횃불을 밝혀든 군사들을 몰고 달려오는 게 보이는 것이었다.
여마통은 과거에는 항우의 부하였었다. 이에 항우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여마통을 향하여,
"네놈은 지난날에는 내 부하가 아니었더냐 ?! 네놈이 감히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 "
하고 고함을 쳤는데, 그 고함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여마통이 타고 있는 말이 놀라 별안간 두 앞발을 허공으로 떴다 내린다.
항우의 고함소리에 놀란 것은 말뿐이 아니었다. 항우를 향해 달려오던 呂馬通도 깜짝 놀라 전신을 떨며,
"대왕 전하 !
臣은 틀림없이 대왕의 부하였습니다. 대왕께서는 무슨 말씀이 계시온지 해주시옵소서."
하고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항우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우뚝 서서 여마통에게 묻는다.
"너에게 한 가지만 묻겠다. 漢王은 너희들에게 <내 목을 잘라오는 장수에게 千金의 포상금을 주면서 萬戶侯에 封해 주겠다>고 했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 "
呂馬通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그런 분부를 내린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렇다면 알았다. 내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몸. 이왕 죽을 바에는 내 목을 옛날의 부하였던 너에게 주고싶구나. 너는 내 목을 가지고 가서, 상금도 타고 萬戶侯도 되도록 하여라."
말을 마친 項羽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찔러 自決하고만다.
참으로 비장한 自決이었다.
項羽는 秦始皇 15년에 출생한 己巳生으로, 20세 초반에 세상에 뛰어들어 천하 통일의 야망을 품고, 東奔西走하다가 大漢 5년 己亥年 (BC 202년) 12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그의 나이 불과 31세 때였다.
* 項羽의 死亡시기에 관하여
項羽의 사망 시기는 司馬遷의 '史記'가 중국의 역사서로써 공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BC 202년 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는 劉邦이 漢나라를 건국한지 5 년째가 되고, 그 뒤 7 년 후인, 大漢 12 년 4 월 (BC 195년)에 劉邦은 63 세를 일기로 病死한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보면, 두 사람의 나이가 小說 楚漢誌의 내용과는 달리, 中國人名事典에는 劉邦이 項羽보다 15 세가 더 많은 것으로 나와 있다.
史實과 歷史小說과의 괴리라 생각하고 양해하여주시기 바람.
( 항우 : BC 232~202 ,
유방 : BC 247~195)
어쨌든,
이렇게 항우는 비록 천하 통일의 웅지가 꺾이자 스스로 生을 마감하지만, '力拔山氣蓋世' 라는 項羽만이 가진 영웅호걸의 대명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을 떨쳐 오고있다.
그리하여,
呂馬通이 항우의 首級을 받들고 가려는데 양희, 양무, 왕영, 여승 等이 달려와 항우가 屍身을 확인하고 항우의 首級 앞에서 揖하며 애도하였다.
다음날,
劉邦은 여마통이 가지고 온 항우의 수급을 친히 살펴보니
은쟁반 위에 놓여 있는 항우의 수급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다름없이 보였다.
이에 劉邦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 있는 사람을 대하듯이 말한다.
"나는 지난날 大王과 兄弟의 義를 맺었지만, 그 후에는 천하를 다툼으로서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大王은 太公과 呂后를 볼모로 잡아두고 있으면서도 깍듯이 받들어 주셨으니, 그것은 烈丈夫가 아니고서는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제 大王이 가셨으니, 이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사오리까!? "
하면서 목놓아 痛哭하니, 滿座의 重臣들도 한결같이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이리하여,
劉邦은 楚나라까지 완전히 평정하자, 呂馬通을 <中水侯>에 封하는 한편, 그가 自決한 烏江 부근에 항우의 嗣堂을 짓고 사계절 제사를 정중하게 올리도록 命하였다.
項佰은 項羽와는 叔姪 間이었음에도 劉邦의 온후한 인품에 끌려 비밀리에 유방을 여러 차례에 걸쳐 도와주었다. 그러한 인연은 그의 妻가 病死하자 劉邦의 간청으로 유방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劉邦과는 妻男 昧夫 之間이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항백은 <射陽侯>로 책봉되어 영화를 길이 누리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인간미에 運이 따라주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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