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이 장안으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나면서 지은 시를 보면, 소식을 들은 '이백'이 얼마나 기뻤던지 목청 높여 시를 읋었다.
仰天大笑出門去(앙천대소출문거)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문을 나서니
我輩豈是蓬蒿人(아배개시봉호인)
내 어찌 초야에 묻혀 죽을 사람이더냐!
'이백'은 그야말로 눈썹 휘날리고 짚신이 타버릴 정도로 '현종'에게 달려갔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기회가 온 것이다. 그가 장안행에 많은 기대를 걸었음을 알 수 있다.
황제의 부름을 받아 장안으로가 황제의 측근인 한림공봉(翰林供奉: 궁중에서 전문적으로 시를 창작해서 황제나 公卿大夫들에게 감상하게 하여 흥을 돋우게하는 관직)으로 일했다.
장안에 들어간 이백은 환대를 받고 1~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기다리던 벼슬 길에 오른 이백은 양귀비가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는 장안에 머무르는 동안 총 3편의 양귀비 찬양시를 지어 바쳤다.
바로 청평조(淸平調) 3首 이다.
雲想衣裳花想容(운상의상화상용)
구름 보니 옷 생각나고 꽃 보니 얼굴 떠오른다
春風拂檻露華濃(춘풍불함로화농)
춘풍은 난간을 스치고 꽃이슬은 짙게 내렸구나
若非群玉山頭見(약비군옥산두견)
만약 群玉山(군옥산: 서왕모(중국 신화에 나오는 선녀의 이름, 불사약을 가진
선녀라는 여신)이 살았다는 옥돌이 많이 난다는 전설의 산) 위에서 보지 못한다면다
會向瑤臺月下逢(회향요대월하봉)
정녕 달 밝은 瑤臺(요대: 옥으로 만든 집)에서 만났겠지
李白이 지은 <淸平調>에 너무도 기뻐 양귀비가 춤을 추고 현종이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양귀비 마저 이백을 좋아하게 되니 현종은 더욱 이백을 아끼게 되었다.
장안에 있는 동안도 이백은 결코 술과 자유를 속박당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종 곁에 있던 동안 술에 대취하여 길바닥에 쓰러져 잠을 잔 나날이 800일이었다 한다.
이때부터 자신을 '취선옹(醉仙翁)'이라 불렀고 술이 덜 깨었을 때는 아예 '미치광이(狂人)'라 비하했다.
'이백'을 부러워했던 두보(杜甫)가 이백을 <주태백(酒太白)>이라 부르며 쓴 시가 있다.
飮中八仙歌(음중팔선가)술 마시는 여덟 선인의 노래 (중에서 일부분)
李白斗酒詩百扁 (이백두주시백편)
이백은 술 한말에 시 백편을 지으며
長安市上酒家眠 (장안시상주가면)
장안 저자거리 술집에서 잠자네
天子呼來不上船 (천자호래불상선)
천자가 오라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自稱臣是酒中仙 (자칭신시주중선)
스스로 자신을 주선이라 칭하네
이백이 얼마나 기고만장했던지 식사 때에는 현종의 손으로 국맛을 보고 양귀비에게는 먹을 갈게 하고, 당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부리던 환관 고력사(高力士)에게는 술에 취한 채 신발을 벗기게 하는 상상도 못할 행동을 했다.
현종이 이백을 얼마나 총애했는지 알 만하다.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역사상 이런 기행을 하고도 무사했던 사람은 별로 없다. 李白의 신발을 벗긴 것에 심각한 수치심을 느꼈던 환관 고력사가 반격을 시도하는데...
Etc/한시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