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이 세운 한나라 후기에는 조정이 부패하고 북으로는 황건족이 위세를 높이고 있었다. 이에 조정은 의병을 모집하게 된다.유비, 관우, 장비는 나라의 쇠퇴를 한탄하며 셋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맹세하고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의병과 정부군의 공격으로 황건 반란군을 진압했으나 조정내 10명의 내시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갖 가지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는 대장군을 죽인다. 이에 원등 청년 장군 하진이 궁중에 난입하여 이들을 몰살한다.궁궐이 불타고 수천명의 내시들이 죽자 황제는 서둘러 궁 밖으로 피신했다. 이 때 동탁을 병력을 이끌고 도읍 낙양으로 들어간다. 실권을 잡자 제멋대로 새 황제를 옹립하고 전횡을 일삼는다.동탁은 자기 군사으리 숫자가 부족한 것을 알고 꾀를 낸다. 그난 매일 동탁군이 낙양에 입성하는 것처럼 꾸미는 한편 집금오 정원ㅇ의 양아들 여포를 유혹한다. 동탁의 보좌과 이숙은 여포와 동향출신으로 금은보화와 적토마을 여포에게 뇌물로 주면서 정원을 죽이라고 회유한다.동탁의 폭정이 심해지자 원소들이 낙양을 떠났고 조조는 동탁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찾아간다. 그러난 동탁을 칼을 들고 서 있는 조조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자 돌아누우며 웬 칼이냐고 묻는다. 조조는 보검을 선물하러 왔다 고 재빨리 둘러대고는 도망친다. 동탁을 나중에 조조의 의도를 깨닫고 체포령을 내린다.유비는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안희현위가 되어 부임한 후 고을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던 어느날 상급 관청에서 독우가 내려와 뇌물를 요구한다. 이에 화가 난 장비가 독우에게 폭행을 가하고 그일로 유비, 관우, 장비는 멀리 피신하게 된다.낙양을 탈출한 조조는 고향으로 가는 도중 부친의 친구인 여백사 일가를 살해하는 등 우여곡절끝에 고향에 도착한다. 그는 역적 동탁을 물리치자는 기치를 내걸고 의병을 모집하는 한편, 각지의 군웅들에게 반동탁 연합군을 편성하자는 격문을 띄운다. 이에 호응해 함곡관 동쪽의 군웅들이 산조 땅에 모여 군사를 일으킨다.연합군이 쳐들어 오자 동탁은 여포에게 호뢰관으로 가성 그들을 막으라고 하고 자신은 장안으로 도망칠 궁리를 한다. 호뢰관에서 여포는 수많은 연합군을 격파한다. 한편 유비 삼형제가 공손찬을 따라 참전해 여포와 일진일퇴를 거듭하자 마침내 여포는호뢰관 안으로 도망친다.호뢰관의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동탁을 마침내 낙양성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향한다. 황제를 비롯한 낙양의 백성들은 장안으로 향하면서 추위에 떨고 배를 곯으며 마친 피난길에 나선 무리첢 고생을 많이 한다. 흔히 이를 장안천도라 한다.장안으로 간 동탁은 공포정치를 더욱 강화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하는 등 폭정을 일삼는다. 이에 왕윤이 미녀 초선을 설득시켜 여포와 동탁사이를 떼어놓고, 여포는 초선이를 동탁에게 빼앗기자 끝내 동탁을 죽이고 만다. 장안의봄이라 일컫는 해방이다.구 동탁군의 이각과 곽사는 여퐁의 기병대를 물리치고 장안성을 점령한 후 황성에 이른다. 이에 동탁을 죽인 왕윤이 이 성 위에 있다가 뛰어내려 그들과 담판지으려 했지만 오히려 잡혀 참수를 당한다. 결국 황제는 이각과 곽사에게 벼슬을 내리고, 조정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다.반동탁 연합군을 일으켯다가 동탁을 잡는 데 실패한 조조는 동군으로 가서 세력을 기르로 연주 땅을 다스리며 소군벌로 자리 잡는다. 그 후 남야에 피신해 있던 부친 조승을 초청하는데 그만 서주 땅을 지날 때 재산에 눈이 먼 서주지사 도경의 부하들에게 피살당한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서주로 쳐들어가 대살륙전을 펼친다.장안의 황제는 이각과 각사의 횡포에 시달리다. 장안을 나와 낙양으로 간다.이각과 곽사의 추격병을 피하는 등 온갖 난관을 격으며 낙양에 도착한 항제는 페허가 된 모습에 크게 낙담하였다. 조정 대신들은 산야에 흩어져 먹을 만한 것을 구하는 등 처절한 생활을 한다.서주 살륙전으로 인해 내부의 반란을 겪은 조조는 식량이야말로 중요한 전략 물자라 여겨 둔전제를 실시한다. 농사를 지으며 병역의 의무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중원의 종업경제를 되살리 조조는 황제를 설득시켜 자신의 거점인 허도에 궁궐을 짖고, 황제를 옯겨오게 된다.조조가 허도에 자리잡고 기세를 떨치고 있을때 강남에서는 손책이라는 젊은이가 주유, 장소 등 인재를 모아 대군벌로써 세을 키운다. 그는 용맹과 무예를 갖추어 옛날 진시황 말리에 유방과 천하를 다투었던 패왕 항우와 닮았다 하여 소패왕이란 칭호를 얻을 정도로 용맹무쌍한 용사였다.유비는 도겸으로부터 서주를 물려받고, 여포를 맞이하여 환대하는 등 의리를 지켰으나 여포에게 배신 당해 궁색한 처지에 빠졌다. 이 때 원술과 손을 잡은 여포는 유비와도 일정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원술과 유비의 싸울을 말리고자 방천화국에 화살을 쏘아 맞히면 양쪽이 화해하고 맞추지 못하염 싸우라고 하면서 화극을 꽂아놓과 쏴 맞춘다.구동탁군의 일파인 장수가 식량이 딸리자 완성으로 이동하여 기세를 떨치고 있어 조조가 이를 공격했다. 장수는 몇번 싸우다가 크게 패한 후 항복했는데 조조가 장수의 숙모인 추부인을 데리고 살자 화가 난 조조의 영채를 기습했다. 이 때 술에 취해 있던 조조의 호위대장 전휘는 장렬히 장사한다.조조 남방을 향해 출격했던 때였다. 병사들에게 보리밭을 밟으면 참형에 처한다고 하여 모두들 조심스럽게 행군하는데 조조가 탄 말이 날아오르는 산비둘기에 놀라 그만 보리밭을밟고 말았다. 조조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집법관에 묻자 법은 존귀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조조는 그럴 수 없다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다.여포는 유비를 배신하고 오갈 데가 없어진 유비는 허도로 가서 조조에게 의지한다. 얼마 후 조조는 유비를 데리고 여포를 공격하여 그를 사로잡았다. 여포를 도운 모사 진궁은 살려허도의 조조는유비가 영웅의 그릇임을 알아보고 어느날 자기 집 후원으로 청해 술을 마시다가 용이 승천하듯이 구름이 일어나자 천하의 영웅에 대해서 설파하며 유비의 속마음을 알아보고자 한다.이 때 유비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켯다고여겨 수저를 떨어뜨리는데 때마침 번개치는 소리에 놀라다는 듯이 둘러대 조조의 예리한 눈빛에서 벗어난다.허도의 조정대신 일부가 반조조파를 규합하여 조조를 죽이려는 계책을 꾸미고 있었다. 길평이라는 의사도 이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어느 날 조조가 몸이 아프다고 하자 약탕에 독약을 넣어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동숭의 하인이 조조에게 이 사실을 모조리 고했다. 독살에 실패한 길평은 잡혀 죽는다.유비의 배반에 분노한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자 유비는 북방의 원소에게 도망치고, 장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때 관우는 서주에서 유비의 가족을 돌보다 조조의 계략에 걸려 고립무원에 처했는데 장료가 항복을 권유했다. 관우는 항복조건으로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에 한다 등 세가지 조건을 내걸었다.일명 관도대전, 원소와 조조가 격돌한 대전인데 원소군이 다소 우세했다. 그러나 관우는 조조로부터 선물받은 적토마을 타고 원소군의 선봉대장 안량과 문추를 베는 등 활약했고, 조조가 원소군의 군량 보급창인 오소를 불태움으로써 대승을 거둔다. 원소는 도망쳤다가 끝내 죽고만다.관우는 홀로 유비의 두 부인을 모시고 천리길을 돌파했다. 이때 앞을 가로막는 조조휘하의 관문 수비장 여섯의 목을 베었는데, 조조는 이를 용서하고 무사히 떠나게 해준다. 관우는 이때 양자 관평을 얻었고, 측근인 주창을 받아들여 헤어졌던 유비, 장비화 합류한다. 조자룡도 이 무렵에 유비진영에 가담한다.관도에서 승리한후 조조진영은 수많은 서류를 노획했다. 특히 원소의 집무실에서는 허도의 조정 대신을 비롯해 조조 휘하 참모들이 보낸 각종 서찰이 많이 나왔다. 소위 양 다리를 걸치고 허도의 사정을 원소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조조는 이것을 모두 불태우게 했다. 이로써 허도의 참모들과 장수들 모두가 안심하게 되었다.
중원 일대를 평정한 조조는 각종 원호대책을 실시하여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편 북방 오랑캐까지 물리친후 남쪽의 유표와 손권 진영이 장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대비한 수전 훈련이었다.원소에게 의지했다가 여의치 않게 된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했다. 그런데 유표의 처남이자 형주군 사령관 채모는 유비를 미워하며 죽이려 했다. 유비는 채모의 흉계를 피해 격류로 알려진 단계에 뛰어들어가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이때 유비를 태우고 단계를 건너간 말이 적토마였다. 이무렵 사마휘로부터 왕룡과 봉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유비는 신야라는 작은 성에 있으면서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며 좋은 인재를 얻어 자신의 처지를 바꿔보려 했다. 때마침 서시라는 참모가 허도를 떠나면서 제갈량을 추천했다. ㅇ비는 관우, 장비를 데리고 자기보다 20년이나 어린 청년 재사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융중으로 향했다.유비는 관우 장비의 불만을 누르고 세 차례나 제갈량을 찾아간다. 제갈량을 휘하의 군사로 맞아들인다. 이를 삼고초려라 한다. 주군이 좋은 신하를 맞이하기 위해 지극정성을 다한 사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후 유비는 제갈량의 도우을 받아 천하 쟁패에 나선다.제갈량이유비에게 설명한 전략은 천하 삼분지계이다. 즉 대륙의 중원땅은 이미 조조가 차지했으니 어쩔 수 없고, 장강 이남은 손권이 3대에 걸쳐 기반을 마련했으니 쉽지않고, 결국 서쪽으 파촉 땅에 근거지를 마련하여 세력을 기른 후 손권과 힘을 합쳐 조조에 대항하는 삼국 체제로 나서야 한다는 진언이다.조조는 전쟁준비를 마치고 스스로 승산이 되어 행정과 군사를 모두 장악하고 남쪽으로 진격했다. 형주의 북쪽에 자리잡은 신야성은 첫 번째 싸움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조조군과 제갈량이 지휘하는 유비군이 마주친 첫 싸움에서 제갈량은 보기조게 조조군을 물리치지ㅏ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조조군의 본대가 쳐들어오자 유비 진영은 도망치기에 바빳다. 물론 후퇴하는 의도는 장차 손권 진영과 손을 잡고 반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망치던 유비군은 당양 장판파에서 조조군에게 대패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 조자룡은 십만대군을 뚫고 들어가 유비의 아들 아두를 찾아 갑옷속에 품어 구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한다.유비의 군사는 거의 전멸당했다. 그 때 장비가 혼자서 장팔사모를 꼬아 쥐고 장판교 다리위에서 "덤빌려면 덤벼라"하고 호통을 치자그 소리가 마치 우뢰처럼 울려 조조의 장수들과 십만대군이 겁을 집어먹고 추격을 중단하고되돌아 갔다. 장비가 홀로 십만대군을 상대했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유비는 제갈량을 손권진영에 보내 동맹을 맺고 조조는 형주군을 흡수하여 십여만 대병력으로 장강 적벽에 거대한 수채를 만든다. 손권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쳐들어 가겠가고 협박한다. 이 때 제갈량이 주유에게 화살 10만개를 부탁받자 배에 집단을 가득 실은 후 밤중에 북을 기며 습격하는 척하자 , 영문도 모르는 조조 진영에서 활을 마구 쏴, 화살 10만개를 거져 얻는다.손권군의 총사령관 주유는 육지에서 싸우면 조조군에게 이기기 힘들겠지만 물에서 싸우면 오랫동안 장강에서 단련한 자신의 수군이 이긴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조조군의 거대한 수채를 ㅂ자 쉽게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고민하게 된다. 주위에서 여러가지로 걱정하는 가운데 주유는 결단을 내린다.손권 군의 노장 황개는 주유에게 조조군의 거대한 수채를 공격하는 방법은 화공뿐이라고 하면서 고육계를 진언하다. 즉 주유가 작은 트집을 잡아 황개를 심하게 처벌하고 황개가 거짓 투항서를 조조 진영에 보낸다. 그러면 이를 믿게 될 테니 투항하기로 약속한 날에 불타기 쉬운 물질을 배에 가득 싣고 조조진영으로 가서 불은 지른다는 계책이다.시인으로 출중한 조조는 달빛잉 교교히 비치는 수채에서 크게 연회를 열고 흥에 겨워 시를 읊는다. 이 시가 그 유명한 "가막까치 둥지를 떠나...." 하는 시구다. 이때 부한 가운데 하나가 이 시가 좋은 조짐이 아니라고 진언하자 조조는 화가 나서 그를 처형한다. 조조가 지은 시는 이외에도 많이 있어 건안 문학을 꽃피웠다.고육계가 성공하여 조조진영에서는 황개의 투항을 기다리게 되고, 마침 동남풍이 불자 황개는 조조 진영으로 가 배에 불을 질러 수채속으로 밀어넣는다. 이리하여 ㅈ조의 수채는 거대한 불기둥에 휩싸이고 불길은 육지에도 번져 조조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다. 이른바 주유의 거대한 승리로 기록된 적벽대전이다.적벽에서 대패하여 허도로 퇴각하던 조조 일행은 화용도라는 언덕에서 매복하고 있던 관우와 조우하게 된다. 예전에 관우는 허도에서 조조에게 각별한 대우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조조의 부하들은 무릎을 꿇고 동정을 구하자 못 본체 등을 돌려 그들을 통과시킴으로써 마음의 빛을 갚는다.관우는 형주의 일대를 평정하러 갔다가 황충이라는 노장과 싸우게 된다. 두사람은 용호상박의 접전을 벌이는데 급기야 장사 태수가 황충을 오해함으로써 관우에게 귀순하고 황충은 후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유비군의 맹장으로써 수많은 싸움에서 활약한다.손권은 누이동생을 유비와 정략 결혼을 시킴으로써 양쪽진영의 친선을 도모한다. 강동으로 건너가 유비는 처남이 되는 손권과 감로사 뜰에서 바윗돌을 향해 칼을 내리치며 각자 소망을 빌었다. 유비는 자신의 패업과 천하가 태평해지기를 기원하며 바윗돌을 두 조각 내었다.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돌아온 조조는 의기소침하지 않고 화려한 동작대를 세워 연회를 열고 시를 짓고 활쏘기 대해를 열어 시상하면서 군신간에 친목을 꽤했다. 이 동작대 기공식에서 조식이 노래한 동작대부는 훌륭한 작품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당시 서촉땅은 유장이라는 인물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유약하고 덕망이 부족했다. 이에 장송을 비롯하여 법정, 맹달 등이 훌륭한 인물을 찾아가 서축을 맡아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자세한 지도를 그렸는데 이를 유비에게 바친다.유비가 서촉 땅을 차지하기 위해 방통을 군사로 삼고, 위연등 장수를 거느리고 들어간다. 마중나온 유장이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는데 이 때 방통은 "서촉을 차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며 위연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고, 기회를 바서 유장을 죽이라고 지시한다.유비의 의도를 눈치챈 유장과 유비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유비군이 낙성이라는 요충지를 차지하려고 출동한다. 그날 방통이 탄 말이 흥분하여 방통을 낙마시켜 유비는 자신이 타던 백마를 대신 타게 한다. 방통이 이 말을 타고 계곡을 지나려 할 때 유장 군의 매복병이 쏘아대는 화살에 맞아 그만 죽고 만다.방통이 죽고 어려움에 처하자 제갈량과 장비, 조자룡 등이 총 출동하여 서촉으로 공격해 들어가자 사태의 불리함을 느낀 유장은 유비에게 항복한다. 유비가 공명, 장비, 조자룡 등을 거느리고 , 유장의 안내를 받아 성도성에 입성함으로써 서촉을 차지한다.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차지했ㄷ넌 유비가 서천땅을 점령하자 손권 진영에서는 형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유비는 손권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고 거절하기도 힘들어 일부를 넘겨주려고 했다. 그런데 형주를 다스리는 관우가 이마저 단호히 거부하자 손권 진영의 노숙이 담판을 짓기 위해 관우와 만난다.어린 시절 후한의마지막 황제 헌제에게 시집온 복황후는 온갖 고생을 다 한다. 동탁을 비롯해 이각, 곽사등에게 시달리다가 허도로 와선 잠시 평안을 맞보았지만 조조의 위세에 눌려 지내야 했다 결국 반조조파에 친정식구들이 가담하고 이를 지원하다가 들켜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형주 총사령과 관우는허도를 공략할 작정으로 조조군이 지키는 번성을 공격한다. 관우는 이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적이 쏜 독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는다. 명의 화타가 대수술을 하는데 그는 안색 하나 찌푸리지 않고 마량가 바둑을 두면서 수술을 받는 인내심을 보여준다.관우의 번성 공격이 시작되자 손권 진영에서는 형주를 탈환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여몽, 육손 등 명장들이 정예병을 장사꾼으로 위장시켜 형주로 잠입시킨다. 결국 손권군이 형주를 점령하게 되고 관우는 서황엣 패하여 사방에 구원병을 청했으나 오지 않는다.육손,여몽의 공격을 받은 관우는 구원병마저 오지 않자 서촉을 향해 도망치다가 손권군에게 포로가 된다. 손권은 관우에게 자신과 손 잡을 것을 간곡히 부탁하지만 관우는 도원결의를 예로 들면서 손권을 강하게 질타한다. 결국 아들 관평과 함께 처형당한다.이 무렵 조조는 두통을 앓고 있었다. 명의 화타를 불러 치료를 했는데 화타가 머리 수술을 권하자 화를 내면서 "천하에 의사들은 수없이 많다."고 하며 화타를 옥에 가두고 죽이려 한다. 이때 옥리가 화타에게 친절히 대해 주어 화타는 자신의 의서을 옥리에게 주고 죽는다.화타를 죽인 수 조조는 노쇠한 데다가 중병이 들어 죽게 된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던 조조는 자신의 관 속에 금은 보석을 넣지 말고 철따라 입는 시복이나 넣어 달라며 운명한다. 그는 "상복을 입지 말고, 전군은 근무지를 떠나지 말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조조이후의 승계를 경쟁하던 조비는 위왕이 되자 동생 조식을 불러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ㅇ이에 조식을 콩과 콩깍지를 예로 들어 그 유명한 칠보시를 지었다.조조의 아들 조비는 위왕이 되자 곧 후한의 황제 헌제를 윽박지러 제위를 내놓게 하고 선양이라는 이름을 빌어 자신의 위 제국을 창설하여 황제가 된다. 폐위당한 헌제는 마지막으로 새 황제 조비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고, 산양공으로 강등되어 멀리 쫒겨난다.조비가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헌제를 위해 통곡하고 한나라를 이어야 한다는 제갈량 등 신하들의 주장에 못이겨 황제 위에 오른다. 나라 이름은 촉한이라고 정했는데 이는 한나라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였다. 이후 촉한을 정통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황제가 된 유비는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 관우의 복수전을 결심하고 장비에게 출전 명령을 내렸다. 장비는 관우 형님의 복수전이므로 전군에 흰 상복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하들을 심하게 매질했는데 그들이 몰래 숨어 들어와 장비를 죽인다.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촉한의 병력 대부분을 이끌고 손권의 오나라로 쳐 들어간다. 선봉은 장비의 아들과 관우의 아들, 초전에서 복수시미에 불타는 이들 청년 장군의 활약으로 승승장구하지만 오나라의 총사령관 육손의 수비 전략에 막혀 오랫동안 대치하게 된다.오랜 대치기간에 유비 진영은 목책으로 담을 쌓았고, 보급선은 몇 백리에 걸쳐 늘어졌다. 오나라의 육손은 이런 유비군의 허점을 파고들어 마침내 화공작전을 세운다. 병사들에게 마른 풀과 불붙기 쉬운 인화물질을 준비시켜 유비의 영채를 불살라 대승을 거둔다.육손군은 패주하는 유비군을 추격하며 어복포라는 곳에 당도했다. 그런데 어복포에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돌무더기에 불과하지만 마치 대군이 주둔해 있는 듯 살기가 피어 오르는 곳이 있었다. 제갈량이 이 곳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팔진ㄷ 즉 기무둔갑의 요새였던 것이다.육손에게 대패하고 도망친 유비는 현재의 장강 상류에 있는 백제성이란 곳에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유비는 패전의 부끄러움을 보여주기 싫어 이 곳에 머물렀는데 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 아들 유선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유비가 죽고 촉한을 다스리게 된 제갈량은 남쪽 경계지대인 남만을 평정하여 장차 북벌을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남만에 진격한 제갈량은 그 곳의 추장 맹획을 일곱번 잡아 일곱번 풀어줌으로써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항복을 받고 성도로 돌아온다.남만을 점령한 제갈량 군이 노수라는 강을 건널 때였다.풍랑이 거세고 일기변화가 심하여 못 건너고 있는데이는 원귀들 때문이라고 하여 제사를 지냈다. 그당시는 제사용품으로 오랑캐의 머리를 잘라 사용했는데 제갈량은 오랑캐의 머리 형태로 음식을 만들어 썼다. 이것이 만두의 유래이다.제갈량은 자신이 살이 생전에 북벌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출사표를 바친다. 즉 북벌을 하게 된 이유와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 제왕의 자세 등을 밝힌 이 출사표는 명문장으로 현재 오장원의 제갈량 사당에 악비가 쓴 전문이 걸려있다.북벌에 나선 제갈량은 조자룡을 앞세워 진격했다. 조자룡은 맹활약을 하여 위나라의 한덕 등 다섯 장수의 목을 베고 서전을 장식했다. 이후 조자룡은 위나라 대장군 조진과 맞섰는데 제갈량 휘하의 부대 가운데 피해를 입지 않고 용맹을 떨친 유일한 부대였다.북벌을 시작할때 원래 촉으 장수였다가 위나라에 투항 배신한 맹달을 주목했다. 당시 맹달은 국경 지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촉한으로 돌아온다면 위나라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맹달은 사마의에게 잡혀 죽고 만다.맹달이 잡혀 죽어 크게 낙담한 제갈량이지만 재차 용기를 내어 북진을 거듭했다. 이때 가정이란 요충지에 마속을 선봉장으로 보냈으나 군령을 어기고 포진했다가 패하고 말았다. 마속을 아끼면 사랑한 제갈량이지만, 군법을 세우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처형했다.1차 북벌에서 실패하고 돌아온후 제갈량은 또 다시 북벌전에 나섰는데 이때 위나라의 청연 장수 강유를 궁지에 몰아넣는 계책을 촉한으로 귀순하게 만든다. 강유는 제갈량으 제자라 해도 좋은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먼저 군사 훈련 등의 계책을 바친다.제갈량이 장수들은 각각의 방향으로 진격시키고 약간의 병력만 거느리고 산성에 있는데 위나라 총사령관 사마의가 대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싸워봤자 패배는 자명한 일,, 이때 제갈량은 마치 사마의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 처럼 태연히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를 물러나게 했다.상대와의 끊임없는 접전을 희망하는 제갈량을 두고 사마의가 수비작전의로 나서자, 제갈량은 상방곡에 함정을 마련하고 결정적으로 유인하여 몰살시킬 수 있는 호기를 만난다. 그러나 때아닌 소낙비로 인해 실패하고 제갈량은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탄식한다.위수강가에 평지보다5장이 높은 고원지대에서 수비 일변도로 나가는 사마의의 진영을 바라보는 제갈량의 마음은 착잡했다. 벌써 가을 바람이 불어오고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감회는 어떠했을까? 북벌의 꿈을 접어야 하는 이 불세출의 전략가 눈에 이슬이 맺혔으리라.마침내 제갈량이 쓰러졌다. 운명의 시간이 된 것이다. 그는 강유를 불러 평소에 적어 두었던 병법서를 비롯해 사마의를 격파하는 전략, 병사를 훈련시키는 법 등 평생의 유작을 넘겨 주고 자신이 죽은 후에 퇴각하는 요령까지 일러준다. 이 계책으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는 고사가 나온다.촉군이 퇴각하고 승전 장군이 된 사마의의 위세는 이제 위나라의 어느 누구도 막을 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한 발 물러서서 마치 권력에 뜻이 없는 듯 위장해 상대를 방심시킨후 결정적 기회가 오자 혁명을 단행한다. 사마의를 반대하는 꾀주머니 환범은 낙양성을 탈출한다.북벌의 꿈을 계승한 강유는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위나라를 공격하지만 이미 촉한의 국운은 기울고 있었고 강유에게도 넉넉한 보급을 해주지 못했다. 결국 강유는 몇차례의 북벌전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끝내는 위나라의 군사들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게된다.위나라의 등애가 쳐 들어와 성도를 함락하고 촉을 멸망시킨다. 강유는 전선에 나가 있다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한다. 그는 촉을 부흥시키기 위해 등애와 대립하는 위나라 장수 종회를 설득해 종회로 하여금 등애를 체포하게 만들고 위나라 조정에 반기를 들게 한다.
삼국귀진 : 최후의 통일을 이룩한 것은 사마의이 손자가 세운 진나라이며 황건족의난으로 천하가 분열된지 꼭 98년만이었다. 쓰러져 간 영웅 호걸들 그리고 한세기에 가까운 난세속에 유명한 지략과 많은 인생사의 삼국지시대는 막을 내린다.
1.黃巾起義(황건기의) : 유방이 세운 한나라의 후기에는 조정이 부패하고 북으로는 황건족이 위세를 높이고 있었다. 이에 황건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조정은 의병을 모집하게 된다.
2.桃園決義(도원결의) : 유비, 관우, 장비는 나라의 쇠퇴를 한탄하며 셋이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맹세하고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
3.十常侍(십상시) : 의병과 정부군의 공격으로 황건 반란군을 진압했으나 조정 내 10명의 내시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갖가지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는 대장군을 죽인다. 이에 원등 청년 장군 하진이 궁중에 난입하여 이들을 몰살한다.
4.童卓進京(동탁진경) : 궁궐이 불타고 수천명의 내시들이 죽자 황제는 서둘러 궁 밖으로 피신했다. 이 때 동탁은 병력을 이끌고 도읍 낙양으로 들어간다. 동탁은 실권을 잡자 제멋대로 새 황제를 옹립하고 전횡을 일삼는다.
5.李肅設呂布(이숙설여포) : 동탁은 자기 군사의 숫자가 부족한 것을 알고 꾀를 낸다. 그는 매일 동탁군이 낙양에 입성하는 것처럼 꾸미는 한편 집금오 정원(오늘의 경찰청장)의 양아들 여포를 유혹한다. 동탁의 보좌관 이숙은 여포와 동향출신으로 금은보화와 적토마를 여포에게 뇌물로 주면서 정원을 죽이라고 회유한다.
6.捉放曺(착방조) : 동탁의 폭정이 심해지자 원소는 낙양을 떠났고 조조는 동탁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찾아간다. 그러나 동탁은 칼을 들고 서 있는 조조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자 돌아 누우며 웬 칼이냐고 묻는다. 조조는 보검을 선물하러 왔다 고 재빨리 둘러대고는 도망친다. 동탁은 나중에 조조의 의도를 깨닫고 체포령을 내린다.
7.怒鞭督郵(노편독우) : 유비는 의병을 일으킨 공로로 안희현위가 되어 부임한 후 고을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급 관청에서 독우가 내려와 뇌물을 요구한다. 이에 화가 난 장비가 독우에게 폭행을 가하고 그 일로 유비, 관우, 장비는 멀리 피신하게 된다.
8. 反童卓聯合(반동탁연합) : 낙양을 탈출한 조조는 고향으로 가는 도중 부친의 친구인 여백사 일가를 살해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도착한다. 그는 역적 동탁을 물리치자는 기치를 내걸고 의병을 모집하는 한편, 각지의 군웅들에게 반동탁 연합군을 편성하자는 격문을 띄운다. 이에 호응해 함곡관 동쪽의 군웅들이 산조 땅에 모여 군사를 일으킨다.
9. 虎牢關戰鬪(호뢰관전투) :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동탁은 여포에게 호뢰관으로 가서 그들을 막으라고 하고 자신은 장안으로 도망칠 궁리를 한다. 호뢰관에서 여포는 수많은 연합군을 격파한다. 한편 유비 삼형제가 공손찬을 따라 참전해 여포와 일진일퇴를 거듭하자 마침내 여포는 호뢰관 안으로 도망친다.
10. 棄洛陽(기낙양) : 호뢰관의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동탁은 마침내 낙양성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향한다. 황제를 비롯한 낙양의 백성들은 장안으로 향하면서 추위에 떨고 배를 곯으며 먼 피난길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 흔히 이를 장안천도라 한다.
11. 美人計(미인계) : 장안으로 간 동탁은 공포정치를 더욱 강화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하는 등 폭정을 일삼는다. 이에 왕윤이 미녀 초선을 설득시켜 여포와 동탁 사이를 떼어놓고, 여포는 초선이를 동탁에게 빼앗기자 끝내 동탁을 죽이고 만다. 장안의 봄이라 일컫는 해방이다.
12.犯長安(범장안) : 구 동탁군의 이각과 곽사는 여포의 기병대를 물리치고 장안성을 점령한 후 황성에 들어간다. 이에 동탁을 죽인 왕윤이 이 성 위에 있다가 뛰어내려 그들과 담판 지으려 했지만 오히려 잡혀 참수를 당한다. 결국 황제는 이각과 곽사에게 벼슬을 내리고, 조정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다.
13.徐州殺戮(서주살육) : 반동탁 연합군을 일으켯다가 동탁을 잡는 데 실패한 조조는 동군으로 가서 세력을 기르고 연주 땅을 다스리며 소군벌로 자리 잡는다. 그 후 남야에 피신해 있던 부친 조승을 초청하는데 그만 서주 땅을 지날 때 재산에 눈이 먼 서주지사 도경의 부하들에게 피살당한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서주로 쳐들어가 대살륙전을 펼친다.
14.車鴐東行(거가동행) : 장안의 황제는 이각과 각사의 횡포에 시달리다 장안을 나와 낙양으로 간다. 이각과 곽사의 추격병을 피하는 등 온갖 난관을 겪으며 낙양에 도착한 황제는 페허가 된 모습에 크게 낙담하였다. 조정 대신들은 산야에 흩어져 먹을 만한 것을 구하는 등 처절한 생활을 한다.
15.屯田制(둔전제) : 서주 살륙전으로 인해 내부의 반란을 겪은 조조는 식량이야말로 중요한 전략 물자라 여겨 둔전제를 실시한다. 농사를 지으며 병역의 의무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중원의 농업경제를 되살리며 조조는 황제를 설득시켜 자신의 거점인 허도에 궁궐을 짓고, 황제를 옮겨오게 한다.
16.小覇王孫策(소패왕손책) : 조조가 허도에 자리잡고 기세를 떨치고 있을때 강남에서는 손책이라는 젊은이가 주유, 장소 등 인재를 모아 대군벌로써 세를 키운다. 그는 용맹과 무예를 갖추어 옛날 진시황 말기에 유방과 천하를 다투었던 패왕 항우와 닮았다 하여 소패왕이란 칭호를 얻을 정도로 용맹무쌍한 용사였다.
17.轅門射戟(원문사극) : 유비는 도겸으로부터 서주를 물려받고, 여포를 맞이하여 환대하는 등 의리를 지켰으나 여포에게 배신당해 궁색한 처지에 빠졌다. 이 때 원술과 손을 잡은 여포는 유비와도 일정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원술과 유비의 싸움을 말리고자 방천화극에 화살을 쏘아 맞히면 양쪽이 화해하고 맞추지 못하면 싸우라고 하면서 화극을 꽂아놓고 쏴 맞춘다.
18.戰宛城(전완성) : 구동탁군의 일파인 장수가 식량이 딸리자 완성으로 이동하여 기세를 떨치고 있어 조조가 이를 공격했다. 장수는 몇 번 싸우다가 크게 패한 후 항복했는데 조조가 장수의 숙모인 추부인을 데리고 살자 화가 나서 조조의 영채를 기습했다. 이 때 술에 취해 있던 조조의 호위대장 전휘는 장렬히 장사한다.
19.法不 可於尊(법물 가어존) : 조조는 남방을 향해 출격하던 때였다. 병사들에게 보리밭을 밟으면 참형에 처한다고 하여 모두들 조심스럽게 행군하는데 조조가 탄 말이 날아오르는 산비둘기에 놀라 그만 보리밭을 밟고 말았다. 조조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집법관에 묻자 법은 존귀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조조는 그럴 수 없다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20. 白門樓(백문루) : 여포는 유비를 배신하였으며 오갈 데가 없어진 유비는 허도로 가서 조조에게 의지한다. 얼마 후 조조는 유비를 데리고 여포를 공격하여 그를 사로잡았다. 여포를 도운 모사 진궁을 살려주려고 했으나, 진궁은 죽기를 청했다. 그들의 처형장이 백문루였다.
21.煮酒論英雄(자주논영웅) : 허도의 조조는 유비가 영웅의 그릇임을 알아보고 어느 날 자기 집 후원으로 청해 술을 마시다가 용이 승천하듯이 구름이 일어나자 천하의 영웅에 대해서 설파하며 유비의 속마음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때 유비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켯다고 여겨 수저를 떨어뜨리는데 때마침 번개치는 소리에 놀랐다는 듯이 둘러대 조조의 예리한 눈빛에서 벗어난다.
22.吉平下毒(길평하독) : 허도의 조정대신 일부가 반조조파를 규합하여 조조를 죽이려는 계책을 꾸미고 있었다. 길평이라는 의사도 이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어느 날 조조가 몸이 아프다고 하자 약탕에 독약을 넣어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동숭의 하인이 조조에게 이 사실을 모조리 고했다. 독살에 실패한 길평은 잡혀 죽는다.
23. 關羽 約三事(관우 약삼사) : 유비의 배반에 분노한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자 유비는 북방의 원소에게 도망치고, 장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때 관우는 서주에서 유비의 가족을 돌보다 조조의 계략에 걸려 고립무원에 처했는데 장료가 항복을 권유했다. 관우는 항복조건으로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 조정에 항복한다며 세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24.戰官渡(전관도) : 일명 관도대전, 원소와 조조가 격돌한 대전인데 원소군이 다소 우세했다. 그러나 관우는 조조로부터 선물 받은 적토마를 타고 원소군의 선봉대장 안량과 문추를 베는 등 활약했고, 조조가 원소군의 군량 보급창인 오소를 불태움으로써 대승을 거둔다. 원소는 도망쳤다가 끝내 죽고 만다.
25.千里走單騎(천리주단기) : 관우는 홀로 유비의 두 부인을 모시고 천리길을 돌파했다. 이때 앞을 가로막는 조조휘하의 관문 수비장 여섯의 목을 베었는데, 조조는 이를 용서하고 무사히 떠나게 해준다. 관우는 이때 양자 관평을 얻었고, 측근인 주창을 받아들여 헤어졌던 유비, 장비와 합류한다. 조자룡도 이 무렵에 유비진영에 가담한다.
26.曺操燒書(조조소서) : 관도에서 승리한 후 조조진영은 수많은 서류를 노획했다. 특히 원소의 집무실에서는 허도의 조정 대신을 비롯해 조조 휘하 참모들이 보낸 각종 서찰이 많이 나왔다. 소위 양 다리를 걸치고 허도의 사정을 원소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조조는 이것을 모두 불태우게 했다. 이로써 허도의 참모들과 장수들 모두가 안심하게 되었다.
27. 玄武地(현무지) : 중원 일대를 평정한 조조는 각종 원호대책을 실시하여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한편 북방 오랑캐까지 물리친 후 남쪽의 유표와 손권 진영이 장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수전 훈련에 집중하였다.
28. 麻躍檀溪(마약단계) : 원소에게 의지했다가 여의치 않게 된 유비는 유표에게 의탁했다. 그런데 유표의 처남이자 형주군 사령관 채모는 유비를 미워하며 죽이려 했다. 유비는 채모의 흉계를 피해 격류로 알려진 단계에 뛰어들어가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이때 유비를 태우고 단계를 건너간 말이 적토마였다. 이 무렵 사마휘로부터 왕룡과 봉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29. 隆中行(융중행) : 유비는 신야라는 작은 성에 있으면서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며 좋은 인재를 얻어 자신의 처지를 바꿔보려 했다. 때마침 서시라는 참모가 허도를 떠나면서 제갈량을 추천했다. 유비는 관우, 장비를 데리고 자기보다 20년이나 어린 청년 재사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융중으로 향했다.
30.三顧草廬(삼고초려) : 유비는 관우, 장비의 불만을 누르고 세 차례나 제갈량을 찾아간다. 제갈량을 휘하의 군사로 맞아들인다. 이를 삼고초려라 한다. 주군이 좋은 신하를 맞이하기 위해 지극정성을 다한 사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후 유비는 제갈량의 도움을 받아 천하 쟁패에 나선다.
31.三分之計(삼분지계) : 제갈량이 유비에게 설명한 전략은 천하 삼분지계이다. 즉 대륙의 중원땅은 이미 조조가 차지했으니 어쩔 수 없고, 장강 이남은 손권이 3대에 걸쳐 기반을 마련했으니 쉽지 않고, 결국 서쪽의 파촉 땅에 근거지를 마련하여 세력을 기른 후 손권과 힘을 합쳐 조조에 대항하는 삼국 체제로 나서야 한다는 진언이다.
32.火燒新野(화소신야) : 조조는 전쟁준비를 마치고 스스로 승상이 되어 행정과 군사를 모두 장악하고 남쪽으로 진격했다. 형주의 북쪽에 자리 잡은 신야성은 첫 번째 싸움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조조군과 제갈량이 지휘하는 유비군이 마주친 첫 싸움에서 제갈량은 보기 좋게 조조군을 물리치자 조조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33. 救阿斗(구아두) : 조조군의 본대가 쳐들어오자 유비 진영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물론 후퇴하는 의도는 장차 손권 진영과 손을 잡고 반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도망치던 유비군은 당양 장판파에서 조조군에게 대패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 조자룡은 십만대군을 뚫고 들어가 유비의 아들 아두를 찾아 갑옷속에 품어 구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한다.
34.長坂橋(장판교) : 유비의 군사는 거의 전멸당했다. 그 때 장비가 혼자서 장팔사모를 꼬아 쥐고 장판교 다리위에서 "덤빌려면 덤벼라"하고 호통을 치자 그 소리가 마치 우레처럼 울려 조조의 장수들과 십만 대군이 겁을 집어먹고 추격을 중단하고 되돌아갔다. 장비가 홀로 십만 대군을 상대했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35.孔明借箭(공명차전) : 유비는 제갈량을 손권진영에 보내 동맹을 맺고 조조는 형주군을 흡수하여 십여만 대병력으로 장강 적벽에 거대한 수채를 만든다. 손권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쳐들어 가겠가고 협박한다. 이 때 제갈량이 주유에게 화살 10만개를 부탁받자 배에 집단을 가득 실은 후 밤중에 북을 치며 습격하는 척하자 , 영문도 모르는 조조 진영에서 활을 마구 쏴, 화살 10만개를 거저 얻는다.
36.一氣周瑜(일기주유) : 손권군의 총사령관 주유는 육지에서 싸우면 조조군에게 이기기 힘들겠지만 물에서 싸우면 오랫동안 장강에서 단련한 자신의 수군이 이긴다고 호언장담 했었다. 그런데 조조군의 거대한 수채를 보자 쉽게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고민하게 된다. 주위에서 여러 가지로 걱정하는 가운데 주유는 결단을 내린다.
37. 苦肉計(고육계) : 손권 군의 노장 황개는 주유에게 조조군의 거대한 수채를 공격하는 방법은 화공뿐이라고 하면서 고육계를 진언하다. 즉 주유가 작은 트집을 잡아 황개를 심하게 처벌하고 황개가 거짓 투항서를 조조 진영에 보낸다. 그러면 이를 믿게 될 테니 투항하기로 약속한 날에 불타기 쉬운 물질을 배에 가득 싣고 조조진영으로 가서 불은 지른다는 계책이다.
38. 曺操賦詩(조조부시) : 시인으로 출중한 조조는 달빛이 도도히 비치는 수채에서 크게 연회를 열고 흥에 겨워 시를 읊는다. 이 시가 그 유명한 "가막까치 둥지를 떠나...." 하는 시구다. 이때 부하 가운데 하나가 이 시가 좋은 조짐이 아니라고 진언하자 조조는 화가 나서 그를 처형한다. 조조가 지은 시는 이외에도 많이 있어 건안 문학을 꽃피웠다.
39. 赤壁大戰(적벽대전) : 고육계가 성공하여 조조진영에서는 황개의 투항을 기다리게 되고, 마침 동남풍이 불자 황개는 조조 진영으로 가 배에 불을 질러 수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리하여 조조의 수채는 거대한 불기둥에 휩싸이고 불길은 육지에도 번져 조조군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다. 이른바 주유의 거대한 승리로 기록된 적벽대전이다.
40. 華容道(화용도) : 적벽에서 대패하여 허도로 퇴각하던 조조 일행은 화용도라는 언덕에서 매복하고 있던 관우와 조우하게 된다. 예전에 관우는 허도에서 조조에게 각별한 대우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조조의 부하들이 무릎을 꿇고 동정을 구하자 못 본체 등을 돌려 그들을 통과시킴으로써 마음의 빛을 갚는다.
41. 戰長沙(전장사) : 관우는 형주의 일대를 평정하러 갔다가 황충이라는 노장과 싸우게 된다. 두사람은 용호상박의 접전을 벌이는데 급기야 장사 태수가 황충을 오해함으로써 관우에게 귀순하고 황충은 후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유비군의 맹장으로써 수많은 싸움에서 활약한다.
42. 甘露寺(감로사) : 손권은 누이동생을 유비와 정략 결혼을 시킴으로써 양쪽진영의 친선을 도모한다. 강동으로 건너가 유비는 처남이 되는 손권과 감로사 뜰에서 바윗돌을 향해 칼을 내리치며 각자 소망을 빌었다. 유비는 자신의 패업과 천하가 태평해지기를 기원하며 바윗돌을 두 조각 내었다.
43. 大宴銅雀臺(대연동작대) :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돌아온 조조는 의기소침하지 않고 화려한 동작대를 세워 연회를 열고 시를 짓고 활쏘기 대회를 열어 시상하면서 군신간에 친목을 꽤했다. 이 동작대 기공식에서 조식이 노래한 동작대부는 훌륭한 작품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44. 張松獻地圖(장송헌지도) : 당시 서촉땅은 유장이라는 인물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유약하고 덕망이 부족했다. 이에 장송을 비롯하여 법정, 맹달 등 훌륭한 인물을 찾아가 서촉을 맡아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자세한 지도를 그렸는데 이를 유비에게 바친다.
45.龐統用智(방통용지) : 유비가 서촉 땅을 차지하기 위해 방통을 군사로 삼고, 위연등 장수를 거느리고 들어간다. 마중 나온 유장이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는데 이 때 방통은 "서촉을 차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며 위연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고, 기회를 바서 유장을 죽이라고 지시한다.
46. 落鳳坡(낙봉파) : 유비의 의도를 눈치챈 유장과 유비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유비군이 낙성이라는 요충지를 차지하려고 출동한다. 그날 방통이 탄 말이 흥분하여 방통을 낙마시켜 유비는 자신이 타던 백마를 대신 타게 한다. 방통이 이 말을 타고 계곡을 지나려 할 때 유장 군의 매복병이 쏘아대는 화살에 맞아 그만 죽고 만다.
47. 取成都(취성도) : 방통이 죽고 어려움에 처하자 제갈량과 장비, 조자룡 등이 총 출동하여 서촉으로 공격해 들어가자 사태의 불리함을 느낀 유장은 유비에게 항복한다. 유비가 공명, 장비, 조자룡 등을 거느리고 , 유장의 안내를 받아 성도성에 입성함으로써 서촉을 차지한다.
48. 單刀赴會(단도부회) :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차지했던 유비가 서천땅을 점령하자 손권 진영에서는 형주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유비는 손권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고 거절하기도 힘들어 일부를 넘겨주려고 했다. 그런데 형주를 다스리는 관우가 이마저 단호히 거부하자 손권 진영의 노숙이 담판을 짓기 위해 관우와 만난다.
49. 伏皇后(복황후) : 어린 시절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에게 시집온 복황후는 온갖 고생을 다 한다. 동탁을 비롯해 이각, 곽사 등에게 시달리다가 허도로 와선 잠시 평안을 맞보았지만 조조의 위세에 눌려 지내야 했다 결국 반조조파에 친정식구들이 가담하고 이를 지원하다가 들켜 참혹한 최후를 맞는다.
50. 刮唃療毒(괄곡요독) : 형주 총사령관 관우는 허도를 공략할 작정으로 조조군이 지키는 번성을 공격한다. 관우는 이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적이 쏜 독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는다. 명의 화타가 대수술을 하는데 그는 안색 하나 찌푸리지 않고 마량과 바둑을 두면서 수술을 받는 인내심을 보여준다.
51. 白衣渡江(백의도강) : 관우의 번성 공격이 시작되자 손권 진영에서는 형주를 탈환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여몽, 육손 등 명장들이 정예병을 장사꾼으로 위장시켜 형주로 잠입시킨다. 결국 손권군이 형주를 점령하게 되고 관우는 서황에서 패하여 사방에 구원병을 청했으나 오지 않는다.
52. 關羽敗走(관우패주) : 육손,여몽의 공격을 받은 관우는 구원병마저 오지 않자 서촉을 향해 도망치다가 손권군에게 포로가 된다. 손권은 관우에게 자신과 손잡을 것을 간곡히 부탁하지만 관우는 도원결의를 예로 들면서 손권을 강하게 질타한다. 결국 아들 관평과 함께 처형당한다.
53. 神醫身死(신의사신) : 이 무렵 조조는 두통을 앓고 있었다. 명의 화타를 불러 치료를 했는데 화타가 머리 수술을 권하자 화를 내면서 "천하에 의사들은 수없이 많다."고 하며 화타를 옥에 가두고 죽이려 한다. 이때 옥리가 화타에게 친절히 대해 주어 화타는 자신의 의서를 옥리에게 주고 죽는다.
54. 奸雄數終(간웅수종) : 화타를 죽인 후 조조는 노쇠한데다가 중병이 들어 죽게 된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았던 조조는 자신의 관 속에 금은보석을 넣지 말고 철따라 입는 시복이나 넣어 달라며 운명한다. 그는 "상복을 입지 말고, 전군은 근무지를 떠나지 말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55.七步詩(칠보시) : 조조 이후의 승계를 경쟁하던 조비는 위왕이 되자 동생 조식을 불러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조식은 콩과 콩깍지를 예로 들어 그 유명한 칠보시를 지었다.
56. 曺丕廢帝(조비폐제) : 조조의 아들 조비는 위왕이 되자 곧 후한의 황제 헌제를 윽박질러 제위를 내놓게 하고 선양이라는 이름을 빌어 자신이 위 제국을 창설하여 황제가 된다. 폐위당한 헌제는 마지막으로 새 황제 조비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고, 산양공으로 강등되어 멀리 쫏겨 난다.
57. 位續大統(위속대통): 조비가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헌제를 위해 통곡하고 한나라를 이어야 한다는 제갈량 등 신하들의 주장에 못 이겨 황제 위에 오른다. 나라 이름은 촉한이라고 정했는데 이는 한나라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였다. 이후 촉한을 정통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58. 張飛遇害(장비우해) : 황제가 된 유비는 도원결의를 맺은 의형제 관우의 복수전을 결심하고 장비에게 출전 명령을 내렸다. 장비는 관우 형님의 복수전이므로 전군에 흰 상복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하들을 심하게 매질했는데 그들이 몰래 숨어 들어와 장비를 죽인다.
59. 先主征吳(선주정오) :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촉한의 병력 대부분을 이끌고 손권의 오나라로 쳐 들어간다. 선봉은 장비의 아들과 관우의 아들, 초전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 청년 장군의 활약으로 승승장구하지만 오나라의 총사령관 육손의 수비 전략에 막혀 오랫동안 대치하게 된다.
60.陸遜營燒(육손영소) : 오랜 대치기간에 유비 진영은 목책으로 담을 쌓았고, 보급선은 몇 백리에 걸쳐 늘어졌다. 오나라의 육손은 이런 유비군의 허점을 파고들어 마침내 화공작전을 세운다. 병사들에게 마른 풀과 불붙기 쉬운 인화물질을 준비시켜 유비의 영채를 불살라 대승을 거둔다.
61. 八陣圖(팔진도) : 육손군은 패주하는 유비군을 추격하며 어복포라는 곳에 당도했다. 그런데 어복포에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돌무더기에 불과하지만 마치 대군이 주둔해 있는 듯 살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었다. 제갈량이 이 곳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팔진도 즉 기문둔갑의 요새였던 것이다.
62. 白帝城(백제성) : 육손에게 대패하고 도망친 유비는 현재의 장강 상류에 있는 백제성이란 곳에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유비는 패전의 부끄러움을 보여주기 싫어 이곳에 머물렀는데 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 아들 유선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63. 七縱七擒(칠종칠금) : 유비가 죽고 촉한을 다스리게 된 제갈량은 남쪽 경계지대인 남만을 평정하여 장차 북벌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남만에 진격한 제갈량은 그 곳의 추장 맹획을 일곱번 잡아 일곱번 풀어줌으로써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항복을 받고 성도로 돌아온다.
64. 祭盧水(제노수) : 남만을 점령한 제갈량 군이 노수라는 강을 건널 때였다. 풍랑이 거세고 일기변화가 심하여 못 건너고 있는데 이는 원귀들 때문이라고 하여 제사를 지냈다. 그 당시는 제사용품으로 오랑캐의 머리를 잘라 사용했는데 제갈량은 대신에 오랑캐의 머리 형태로 음식을 만들어 썼다. 이것이 만두 유래이다.
65. 出師表(출사표) : 제갈량은 자신이 살아생전에 북벌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출사표를 바친다. 즉 북벌을 하게 된 이유와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 제왕의 자세 등을 밝힌 이 출사표는 명문장으로 현재 오장원의 제갈량 사당에 악비가 쓴 전문이 걸려있다.
66. 力斬五將(역참오장) : 북벌에 나선 제갈량은 조자룡을 앞세워 진격했다. 조자룡은 맹활약을 하여 위나라의 한덕 등 다섯 장수의 목을 베고 서전을 장식했다. 이후 조자룡은 위나라 대장군 조진과 맞섰는데 제갈량 휘하의 부대 가운데 피해를 입지 않고 용맹을 떨친 유일한 부대였다.
67.擒孟達(금맹달) : 북벌을 시작할때 원래 촉의 장수였다가 위나라에 투항 배신한 맹달을 주목했다. 당시 맹달은 국경 지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촉한으로 돌아온다면 위나라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맹달은 사마의에게 잡혀 죽고 만다.
68.揮淚斬馬謖(휘루참마속) : 맹달이 잡혀 죽어 크게 낙담한 제갈량이지만 재차 용기를 내어 북진을 거듭했다. 이때 가정이란 요충지에 마속을 선봉장으로 보냈으나 군령을 어기고 포진했다가 패하고 말았다. 마속을 아끼며 사랑한 제갈량이지만, 군법을 세우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처형했다.
69. 姜維獻書(강유헌서) : 1차 북벌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후 제갈량은 또 다시 북벌전에 나섰는데 이때 위나라의 청년 장수 강유를 궁지에 몰아넣는 계책으로 촉한으로 귀순하게 만든다. 강유는 제갈량의 제자라 해도 좋은 정도의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먼저 군사 훈련 등의 계책을 바친다.
70. 空城計(공성계) : 제갈량이 장수들을 각각의 방향으로 진격시키고 약간의 병력만 거느리고 산성에 있는데 위나라 총사령관 사마의가 대군을 이끌고 나타났다. 싸워봤자 패배는 자명한 일,, 이때 제갈량은 마치 사마의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처럼 태연히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를 물러나게 했다.
71. 上方谷(상방곡) : 상대와의 끊임없는 접전을 희망하는 제갈량을 두고 사마의가 수비 작전으로 나서자, 제갈량은 상방곡에 함정을 마련하고 결정적으로 유인하여 몰살시킬 수 있는 호기를 만난다. 그러나 때 아닌 소낙비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때 제갈량은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탄식한다.
72. 秋風五丈原(추풍오장원) : 위수강가에 평지보다 5장이 높은 고원지대에서 수비 일변도로 나가는 사마의의 진영을 바라보는 제갈량의 마음은 착잡했다. 벌써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감회는 어떠했을까? 북벌의 꿈을 접어야 하는 이 불세출의 전략가 눈에 이슬이 맺혔으리라.
73.孔明歸天(공명귀천) : 마침내 제갈량이 쓰러졌다. 운명의 시간이 된 것이다. 그는 강유를 불러 평소에 적어 두었던 병법서를 비롯해 사마의를 격파하는 전략, 병사를 훈련시키는 법 등 평생의 유작을 넘겨 주고 자신이 죽은 후에 퇴각하는 요령까지 일러준다. 이 계책으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는 고사가 나온다.
74. 政歸司馬氏(정귀사마씨) : 촉군이 퇴각하고 승전 장군이 된 사마의의 위세는 이제 위나라의 어느 누구도 막을 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한 발 물러서서 마치 권력에 뜻이 없는 듯 위장해 상대를 방심시킨 후 결정적 기회가 오자 혁명을 단행한다. 사마의를 반대하는 꾀주머니 환범은 낙양성을 탈출한다.
75. 偷渡陰平(투도음평) : 북벌의 꿈을 계승한 강유는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위나라를 공격하지만 이미 촉한의 국운은 기울고 있었고 촉한은 강유에게도 넉넉한 보급을 해주지 못했다. 결국 강유는 몇 차례의 북벌전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끝내는 위나라의 군사들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76.二士爭功(이사쟁공) : 위나라의 등애가 쳐 들어와 성도를 함락하고 촉을 멸망시킨다. 강유는 전선에 나가 있다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한다. 그는 촉을 부흥시키기 위해 등애와 대립하는 위나라 장수 종회를 설득해 종회로 하여금 등애를 체포하게 만들고 위나라 조정에 반기를 들게 한다.
77. 三國歸晉(삼국귀진) : 최후의 통일을 이룩한 것은 사마의의 손자가 세운 진나라이며 이는 황건족의 난으로 천하가 분열된지 꼭 98년만이었다. 쓰러져 간 영웅호걸들 그리고 한 세기에 가까운 난세 속에 유명한 지략과 많은 인생사의 삼국지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